7. 나를 위한 기도.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숨을 들이마셨다.


하비브는 보건소 건물의 유리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간호사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비브는 고개를 숙이고 건물을 나섰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멈칫하는 순간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누가 부르면 어떡하지. 누가 불러세우면.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거리 끝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뒷모습이 사라질 즈음, 나는 편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잠시 뒤, 만수 할아버지와 보건소장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만수 할아버지는 마치 의욕 넘치는 의대생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자, 빨리 여기서 수술해버리자고.”


“여기서요? 여기서 수술이 돼요? 큰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할 거 하나도 없구먼. 여기 의사도 있고, 장비도 다 있어.”


나는 땀에 젖은 얼굴로 안경을 벗는 보건소장을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예, 지금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어디서 하느냐보다, 빨리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따라오시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머리를 긁었다. 그러나 양손은 이미 쓸 수 없었고, 머리카락에 피가 묻을 뿐이었다. 피 묻은 손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이 마음에 걸린 가시 같았다.


“그래요. 수술해요.”


보건소장은 간호사들과 직원들을 호출하고는 나를 안내했다. 녹슨 기계들과 낡은 가구들, 강한 소독약 냄새가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수술대 위에 손을 올렸다. ‘누워서 해야 하지 않나?’ 보건소장은 알 수 없는 하얀 가루를 내 손 위에 뿌렸다. 따갑지는 않았지만, 공포심이 피어올랐다.


“마취는요? 마취 안 해요?”


보건소장은 흠칫 놀라더니, 허둥지둥 주사기를 꺼냈다.


“예, 해야죠. 조금만 참으세요. 따끔할 거예요.”


따끔? 내 손 상태를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 덜그럭거리는 낡은 기계들, 나를 급하게 눕힐 때쯤 팔목에 꽂힌 주사기를 볼 수 있었다. 어이없음에 실소를 흘리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여름의 도시.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의 아스팔트.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는 굳어 돌아가지 않았다. 어깨를 밀치며 나를 지나쳐 달려가는 뒷모습. 낡은 운동복, 짧은 머리칼, 백인 남자. 하비브였다. 그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걸까.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혀조차 무거워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또 한 사람이 내 어깨를 세게 치고 스쳐 갔다. 하비브를 뒤쫓는 남자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에 들린 칼날이 번뜩였다. 태양 빛이 칼날에 반사된 섬광에 시야가 새하얗게 타올랐다. 나의 공포가 빚은 심장 박동이 도시 전체에 울려왔다.


쿵. 쿵. 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숨을 들이마시며 상체를 일으키려던 나는 습관적으로 얼굴을 만지려 손을 올렸다. 두 손에 감긴 붕대에 이제야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고통은 희미했다. 사고 당시의 격렬함과 비교하면, 마치 잘 흐르지 않는 물처럼 뻣뻣하고 둔한 통증. 나는 멍하게 내 방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입은 피 묻은 셔츠, 열린 방문과 변함없는 거실.


‘나는 어떻게 이곳에서 잠에서 깨어났나.’


질문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아무래도 마을 사람들이 문을 열고, 내 의식 없는 몸을 이불 위에 옮겨놓은 모양이었다. 문을 열고, 내 집에 들어와, 내 몸을 만지고, 이불 위에 눕히고, 방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겠지. 이불을 펴고, 혹은 내 물건을 치우면서. 그들은 정말 이곳에 나를 내려놓기만 했을까. 두 손의 고통보다 그들의 손이 내 집에 닿았다는 사실이 훨씬 더 소름 끼쳤다.


또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


나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발끝으로 미닫이문을 밀었다. 밖에는 만수 할아버지, 푸른 지붕 할머니, 그리고 마을의 노인들이 모여 서 있었다. 푸른 지붕 할머니는 내 시선을 피하며 땅만 바라보고 있었고, 만수 할아버지는 어색한 침묵을 깨려 입을 열었다.


“그… 할매가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는데, 자네가 자고 있어서 들었는지 모르겠네. 어때? 몸은 좀 괜찮고?”


“괜찮냐고요?”


그의 얼굴에 묘한 당혹감이 스쳤다.


“우리가 앞으로 매일, 진짜 매일 자넬 위해서 기도할 거야. 진심으로. 하나님께 손 빨리 낫게 해달라고, 한마음으로 빌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 우리 마을은… 기도하면 다 낫는다니까. 손이건, 병이건, 일이건 다. 우리 기도는 잘 통해. 그렇지 할매?”


푸른 지붕 할머니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맞지…”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기도해서 다 나을 줄 알았으면, 발가락도 부숴놓을 걸 그랬네요. 아, 그런데 기도하려면 손을 모아야 하잖아요? 전 못 하겠네요.”


양손을 그들 얼굴 앞으로 들어 보였다. 붕대 너머의 무력함을, 고의적으로 드러내며. 만수 할아버지는 상황이 험악해질까 걱정된 듯 억지웃음을 띠고 끼어들었다.


“그, 자네가 손이 불편하니까 필요한 거 있음 언제든 불러. 소리만 질러도 들려. 우리 다 근처에 있으니까. 밥도 걱정 말어. 삼시세끼 문 안에 챙겨다 줄 테니까.”


개 같은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그래요. 대신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다음부터는 남의 집 문 열기 전에, 꼭 노크 좀 해주세요.”


푸른 지붕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며, 국에 밥을 말은 그릇에 숟가락을 꽂아 문 안쪽에 내려놓았다.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고, 만수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돌아섰다.


“자, 이제 다들 가자고. 총각도 얼른 먹고, 빨리 나아야지.


사람이 다쳤을 땐 많이 먹어야 빨리 낫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니까, 너무 걱정말고...”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노인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마당에 홀로 남은 철학관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할 말 있으세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너무 뭐라 하진 말자고.”


말끝에 미안함과 당황이 섞여 있었다. 놀랍게도 이번엔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사태를 원하진 않았다. 내가 노인들을 몰아붙이는 게 공정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양손을 쓸 수 없다는 무력함이 공포로 변해왔다. 그는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영감들이 기도한다고 했잖아.”


“네. 왜요.”


“기도하면 정말 빨리 나을 거야. 하나님이 우리 마을 기도는 잘 들어주시거든. 근데, 그거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거든. 혹시 다른 영감들이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확실한 방법이요?”


“그렇지. 내가 아는 무당이 하나 있는데, 그 양반 굿 한번 하면 손이야 뭐, 바로 나아. 그뿐인 줄 알아? 자네 하는 일, 그거… 번역? 그 일도 잘 풀리고, 돈도 술술 들어올걸. 여기 마을 사람들 봐. 돈 걱정하는 사람 한 명도 없잖아.”


말문이 막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이없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참나. …됐어요. 얼른 들어가세요. 가셔서 일 보시죠.”


그가 떠나고, 나는 팔꿈치로 미닫이문을 닫았다. 거실 바닥엔 국에 말아놓은 밥이 놓여 있었다. 은빛 숟가락이 바깥의 햇빛을 반사해, 바닥에 빛무리를 그렸다. 양반다리로 앉아, 붕대 감긴 양손을 모아 숟가락을 쥐려 애썼다. 겨우겨우 밥 한 숟가락을 들어 올려 입에 넣으려 했지만, 음식은 허공에서 떨어졌다. 손목으로 그릇을 들어보려 했지만, 흔들리는 그릇이 불안해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개처럼 엎드렸다. 손목으로 그릇을 살짝 기울이며, 국과 밥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미닫이문 유리에 비친 내 모습. 개처럼 엎드려 밥을 먹는 인간. 반사된 내 형체 위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부드러운 빛 속에, 비참함이 또렷이 드러났다.


숨을 길게 내쉰 뒤, 솟아오르는 분노에 벽에 머리를 박았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으로 돌아가 자리에 누웠다.


낮잠을 잘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쓸 수 없는 양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천장을 바라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시금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와 팔꿈치로 불을 켰다. 어느새 문 안쪽에 저녁 식사가 놓여 있었다. 배는 고팠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혹시라도 마당에 있는 노인들이, 내가 개처럼 엎드려 밥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되진 않을까. 문에 비친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히 그 광경이 그려질 것이다. 비웃든 동정하든 상관없지만, 그들이 원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밥은 그 자리에 놔둔 채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발끝으로 핸드폰을 켰다. 누구 하나 나를 찾지 않았다. 바라왔던 고요함이었다. 칼부림 사건 이후, 매일 밤 기도하며 바라던 삶이 바로 이것이었다, 고작 이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어차피 지금은 답장할 손도 없으니, 연락이 오지 않아 다행인 걸까. 이렇게 합리화하는 나 자신이 처량했다.


부상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더 무기력했다. TV 앞으로 기어가 전원을 켰지만, 채널을 돌리는 것조차 버거웠다. 결국 TV에서 흘러나오는 잡음만이 방을 채웠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살아 있는 시체처럼. 잠이 올 리 없었다. 발로 꺼낸 진정제를 겨드랑이에 낀 채 입으로 뚜껑을 열었다. 바닥에 사료처럼 진정제가 흩어졌다. 새처럼 고개를 숙여 하나씩 쪼아먹었다. 그게 오늘의 마지막 행동이었다. 억지로 잠이 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이 떠졌다. 새벽 두 시. 처음엔 TV의 볼륨이 갑자기 커졌나 착각했다. 내가 노인들을 과소평가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노인들의 기도 소리.


“하나님 아버지…”


문을 열고 나가 시끄럽다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니까. 발과 팔꿈치로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일조차 벅찼다. 나는 다시 바닥의 모이처럼 흩어진 약 중 하나를 주워 먹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기도 소리는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누군가는 졸고, 교대 근무를 하듯 다른 누군가는 다시 이어받아 기도를 했다.


당사자인 내가 원치 않는 기도였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현실과 수면의 경계의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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