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탈출, 손가락, 피.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천둥의 굉음,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을 여니 햇빛이 쏟아졌고, 하늘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맑았다. 젖은 슬리퍼를 신고 다시 교회 벽 앞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오래전 무언가가 있었던 듯한 희미한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현실인가, 꿈인가. 나는 여전히 그 경계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을 붙잡고 긁으며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할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뒤돌았다.


“아침부터 벽 보고 뭐 하는겨?”


“아, 안녕하세요.”


“뭘 이렇게 놀래? 철학관 영감 찾는겨?”


“네…”


“그 양반 어제저녁에 읍내 간다고 하더니, 거기서 자고 오늘 저녁에야 온다는디. 전화라도 해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누워, 나 자신을 책망했다. 머리는 잡념만을 낳고, 손은 진정제로만 향한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쫓고, 무엇을 의심하는 걸까.


그래, 번역. 그게 내가 여기 내려와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벽에 남아 있던 흔적이 자꾸만 머리를 붙잡는다. 나는 잡념을 밀어냈다. 악몽에 휘둘리지 않겠다. 불안과 공포, 그것들에 내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의 강박만 남기기로, 할머니는 교회를 보던 내가 철학관 할아버지를 찾는 걸 어떻게 알고 물어본 거지?

철학관 노인이 주님을 단순히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여겼다는 사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비웃듯 교만한 얼굴을 지었다. 사실은, 나도 그러지 않았는가. 그가 보여준 거울은 지워야 할 나의 때를 비추어줬다.

누군가 미닫이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푸른 지붕 집 할머니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표정.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번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행이어야 해.’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보상을 원하고 있을지도. 나는 위선을 숨기며 미소를 지었다.


“뭐 도와드릴까요?”



시골의 맑은 공기, 자연, 밤하늘의 밝은 별들. 평화로운 나날들, 그리고 매일 밤을 덮쳐오는 악몽. 서울에서의 삶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다른 점은 있었다.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을 피해 방에 숨어 있을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누구도 나를 가만히 쉬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노인들을 도운 지 벌써 보름은 되었을까. 하나님은 나에게 보상을 잊지 않으셨다. 매일 밤의 테러.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새 서울의 빌딩 숲에 갇혀 있었다. 오늘 역시 바닥에 묶인 듯 움직이지 못하는 두 발. 뜨거운 태양과 햇살을 반사하는 빌딩의 창문들, 멀리서 날아온 태양의 빛은 도시 바닥 피 웅덩이에 잠겼다. 서로를 밀치며 도망치는 비명과 공포들. 내 심장 박동은 거대한 시계의 시침처럼 도시를 울렸다.


나의 눈앞, 도시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남자. 야만인. 살육에 눈이 먼 유인원은 탈춤을 추듯 신나게 칼을 휘둘렀다. 그의 칼날은 도시에 가득한 인간들의 몸속을 옮겨 다녔다. 신명 나는 춤은 멈췄다. 더 이상 죽일 인간이 그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거겠지.


칼의 손잡이로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뒷모습에서 읽을 수 있는 멋쩍음. 이제, 수면 속 테러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그가 등을 돌려 나에게 다가올 차례다. 침조차 삼키지 못한 채, 지친 나는 용암처럼 폭발하려는 생각을 억눌렀다. 하지만 감정도, 생각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생각은 분노라는 산에서 솟아올랐다.


차라리 죽여. 차라리 찔러. 차라리 죽여. 왜 날 살려준 거야. 왜. 매일 밤 꿈에서 이렇게 겁쟁이처럼 나타나지 말고, 차라리 죽여.

그가 나를 향해 등을 돌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름이 가득한, 늙은 여성의 얼굴. 푸른 지붕 집의 할머니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숙인 채 익살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온다.


할머니... 오지마세요... 제발 멈춰...


뜨거운 피바다가 된 도시 속, 그의 차가운 칼등이 내 귀를 스쳤다. 손 대신 칼로 입을 가리듯, 귓속말이 들려왔다.


“일어나.”


“일어나, 총각. 일어나봐.”

푸른 지붕 집 할머니는 어느새 내 집 문마저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언젠가는 방문도 열어 나를 깨울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눈 밑이 그늘처럼 어두워진 채로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인사부터.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조롱일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총각, 어째 얼굴이 점점 더 안 좋아져? 밥은 제대로 먹는겨?”


“예.”


“시간 있지?”


“예.”


“우리 집에 고추 빻는 기계를 옮겨야 하는디, 장정 네 명은 필요하겠구먼. 하비브랑 지하드랑 자네랑 셋이서 한번 힘 좀 써보라고.”


“예.”


할머니는 등을 돌려, 빠르게 내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그제야 오늘 날씨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뜨거운 태양에 오늘은 무더운 하루가 될 것 같다. 마당 입구에 멈춰 선 할머니가 뒤를 돌아봤다.


“빨리 안 오고 뭐 하는겨?”


갑니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

할머니의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이미 일할 준비를 마친 외국인 노동자 둘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비슷한 옷차림의 하비브와 지하드. 그들은 익숙하다는 듯 나에게 두꺼운 장갑을 건넸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이미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평상에 편히 앉은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창고 앞 거대한 기계를 가리켰다.


“저 더럽게 큰 것이 창고로 가는 길을 막고 있으니까, 마당 구석에 한번 이쁘게 놔보라고.”

작은 경차만 한 크기의 기계를 보며, 이걸 정말 옮기라는 건가 싶었다. 어떻게든 효율적인 방법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하비브와 지하드는 이미 기계의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결국은 무식하게 들어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어색한 한국말로 “하나, 둘”을 외치며 준비했다. 셋. 우리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나는 마당의 어디에 기계를 내려놔야 할지 고개를 돌려 두리번거렸다. 무게가 양손을 타고 허리까지 내려앉았다. 장갑을 껴도 손가락의 피부가 벗겨질 듯 고통스러웠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 몸은, 악몽의 식은땀에서 노동의 진땀으로 이어졌다.


하비브가 중심을 잃었다. 셋이서 중심을 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계를 내려놓았다. 쿵, 기계가 마당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비브는 손목을 감싸며 통증을 호소했다. 할머니가 달려와 다짜고짜 하비브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런 병신 같은 놈이. 남자가 이거 하나 못 들어? 평소에 많이 처먹기는 겁나게 처먹고 기계 다 박살 내려고 하냐!”


할머니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하는 말과 태도는 늘 불쾌했다.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 그만 하세요.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다 돈 받고 일하는 건데 뭐.”


“돈이면 욕하고 때려도 돼요?”


할머니는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살아온 세월에 비해 타인을 대하는 예의를 배우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기계를 마당 한가운데 둘 수는 없었다. 나는 하비브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계속 들 수 있겠어요?”


“네.”


러시아 혹은 동유럽 어딘가에서 온 듯한 무슬림 백인 남성 둘. 나는 그들이 이 낯선 땅에서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았으면 했다. 물론 내가 남을 걱정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다시 “하나, 둘.”


기계를 다시 들어 마당 구석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손목과 어깨, 허리가 기계의 무게에 깔려 신음했다. 우리는 기계를 잠시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천천히 허리를 숙이는 순간, 할머니의 벼락같은 호통이 들려왔다.


“야! 거기다 두면 대문을 어떻게 열라고 거기다 두는겨!”

할머니는 우리가 기계를 이곳에 두려 한다고 착각했다. 하비브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그는 익숙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매일 밤 악몽에서 내가 갖는 눈빛. 붉어진 눈, 가빠지는 호흡. 그는 지금 공황 상태에 가까웠다.


“하비브, 여기 봐요. 진정하고, 셋에 같이 내려놔요. 알겠죠?”


하비브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그대로 기계로 전달되었다. 기계는 흔들리고 나는 애써 그의 눈을 보며 반복했다.


“하비브. 여기 봐요. 천천히, 셋에. 같이.”


그러나 그는 기계를 놓쳤다.

쇳덩이는 그대로 마당 위 내 손가락 위로 떨어졌다.

강철의 모서리가 나의 양손을 짓눌렀다.

감각이 끊겼다.


지하드가 재빠르게 달려와 기계를 살짝 들어주었고, 나는 간신히 손을 빼낼 수 있었다. 이빨로 장갑을 벗고, 손을 바라봤다. 몇몇 손가락은 맨눈으로 보기에도 부서져 있었다. 피부는 으깨져 피를 쏟아냈다. 그제야 고통이 밀려왔다. 뇌까지 덮치는 거대한 파도처럼. 고통은 자연스레 본능적인 눈물로 변해갔다. 팔뚝으로 눈물을 닦고, 부서진 손을 바라보았다. 걸레짝이 되어버린 나의 양손.


할머니는 대문을 박차고 나가 소리를 질렀다.


“만수 할배! 여기 큰일났어! 빨리 차 가지고 여기 앞에 대라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


“옆집 총각이 손을 다쳤다니까! 뭐 묻지 말고 차부터 대줘! 읍내 보건소부터 가야겠어!”

저리고, 뜨겁고, 따갑고, 얼얼한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옥이 담긴 듯한 고통이 손가락에 퍼지고 있었다. 그때, 하비브를 봤다. 내 손을 바라보는 얼어붙은 눈과 떨리는 몸. 그의 바지 한쪽이 젖어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온몸에 묻은 공포와 죄책감, 나는 차라리 시골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볕이 유난히 뜨거웠다.

푸른 트럭이 대문 앞에 섰다. 운전석엔 만수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빨리 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비브를 이곳에 남겨둘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이 하비브를 벌하도록 놔둘 수 없었다.


“하비브랑 같이 갈게요.”


“그놈은 왜? 됐고 얼른 가자고!”


“하비브랑 같이 간다고요.”


“맘대로 혀. 빨리 타.”


트럭 뒷좌석. 공포에 떨고 있는 하비브 옆에 앉은 나는 속삭였다.


“괜찮아요. 저만 믿어요. 다 괜찮을 거예요.”

트럭 창 너머, 떠나가는 트럭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룸미러에 비쳤다. 그 표정엔 걱정도, 미안함도 없었다. 오직 분노만이 가득했다. 팔꿈치로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다. 오랜만에 벗어난 마을.


양손은 부서졌지만, 창밖에서 불어오는 여름 바람은 뜻밖에 상쾌했다. 트럭의 뒷자리는 덜컹거리고 불편했다. 부서진 손끝에서 심장 박동처럼 뜨거운 맥이 뛰었다. 하비브의 어지러움을 담은 눈은 나의 손에 고정되어있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애써 미소를 지었다.


운전석의 만수 할아버지는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빠르게 달리는 트럭, 연기와 재가 뒷좌석까지 날아들었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더 깊이 뺄 수밖에 없었다. 산을 휘감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반복되었고, 그 위에서 시골 마을 전경이 손바닥처럼 펼쳐졌다. 내가 이제 저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감각은, 이상하게 멀고 낯설었다.


양손에서 흐르는 피는 발등과 발목을 적셨다. 영감님의 차에 피를 흘려선 안 될 것 같았다. 자세를 고쳐 앉아 피가 신발을 넘지 않도록 애썼다.

군대에서 맡았던 냄새가, 긴 세월을 돌아 코로 되돌아왔다.

폭발한 지뢰의 화약 냄새, 만수 할아버지의 담배에서 떨어진 불씨가 시트를 태우는 향. 허둥대던 병사들의 소리와 절단된 발목을 부여잡고 울던 병사의 비명, 만수 할아버지가 퍼붓는 욕설과 핸들을 두드리는 손이 만드는 소음. 산산조각이 났던 발목, 산산이 조각 난 나의 손. 폭발에도 잔인할 정도로 푸르기만 했던 산과 그 위에 뿌려진 붉은 피. 창밖의 푸른 산을 배경으로 붉은 피가 흐르는 나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폭발이 있던 그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옆자리의 하비브는 당황한 채 내 손을 바라보고 있다.

그날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다를 것이다. 만수 할아버지가 룸미러로 나를 훔쳐보며 물었다.


“괜찮은겨?”


괜찮겠냐고. 망가진 손의 모습에 구역질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산길에서 전방을 주시하지 않고 내 손을 돌아보는 것 역시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는 흥분한 듯 일본말 섞인 욕을 내뱉으며 운전대를 쾅쾅 내리쳤다.

산에서 내려와 트럭이 포장도로를 밟았다. 읍내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간판이 떨어져 나간 가게들, 닫힌 철문, 폐건물들뿐이었다. 간신히 역할을 다하는 건 몇몇 공공기관뿐. 트럭이 보건소 앞에 섰고, 할아버지는 나를 두고 혼자 차에서 내려 급하게 달려갔다. 나의 망가진 두 손으로 차의 문을 열 수 없었다. 먼저 내린 하비브는 문을 열어줬다. 그가 나를 부축했다. 그의 부축을 농담으로 거부하며 웃어보았다.


“다리가 부러진 건 아니니까요.”

낡은 건물 안, 버스 터미널에서나 볼 법한 딱딱한 초록 의자에 앉았다. 복도 건너편에서는 만수 할아버지가 보건소장과 다투듯 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보건소장의 당혹스러운 표정은 생생했다.


간호사와 접수창구의 눈치를 살핀 뒤, 나는 하비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비브,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내 바지 뒷주머니에 지갑 좀 꺼내 줄래요?”


하비브는 내 허리춤에서 지갑을 조심스레 꺼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안에 현금이 있어요. 시골에서 쓸 일이 없어서 꽤 있을 거예요. 잘 들어요. 우리가 온 도로 반대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정류장이 나올 거예요. 거기서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요. 그리고 서울행 티켓을 끊고 떠나요. 부탁이에요.”


하비브는 지갑을 손에 든 채,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봤다. 눈이 흔들렸다. 나는 어깨로 그를 가볍게 치고, 시선을 붙잡았다.


“다른 데 보지 말고, 나를 봐요. 내가 말한 대로 해요. 지금 아니면 늦어요. 현금은 다 가져가요. 지갑은 다시 내 주머니에.”


그의 손끝이 떨렸다. 천천히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지갑은 대충 다시 내 뒷주머니에 끼워 넣었다. 그는 일어나 천천히 복도 쪽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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