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지러운 농촌.

노인들이 사는 곳

by 박규동

쿵쿵대는 소리. 누군가 미닫이문을 두드렸다.


이불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상에 누워있든, 방에 숨어 있든 소용없다. 노인들은 결국 찾아온다. 개인적인 시간의 추구? 웃음이 나왔다. 선을 베풀고 축복을 거머쥘 기회가 문을 두드린 것 뿐이다.


문을 열자 철학관 할아버지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쑥스러운 기색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노인들이 나의 마당에 들어서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래. 다들 들어오세요. 마음대로 하세요. 여긴 내 집이지만, 당신들의 회관이나 교회랑 다를 거 없으니까.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학관 할아버지가 코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자네, 시간 좀 있는가? 우리 집 대문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말이야. 높은 데는 손도 안 닿고… 나 같은 늙은이 힘으로는 좀 어렵고 말이지.”


기회다. 선을 베풀 기회. 축복의 자격을 얻을 기회. 나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문턱 아래로 내려서며 슬리퍼를 꿰었다.


“지금 도와드릴게요. 먼저 가 계세요. 도구는 다 집에 있죠?”


할아버지가 되묻는다.


“바쁜 건 아니지?”


그 말에, 얼굴이 굳어졌다. 또 그 말.


‘바쁘지도 않으면서.’


입가의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친절한 이웃의 미소.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도와드려야죠.”


할아버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삼베 옷자락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낡은 고무신이 마당을 사박사박 울리며 멀어졌다. 그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그 뒤를 따랐다.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그의 등 뒤에 내가 쥔 주먹은 분노가 아닌 신앙의 증거였다.


그를 따라 철학관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을 입구가 보였다. 언덕 위의 이름 모를 무덤. 그 위에 꽂힌 낡은 십자가. 나의 시선이 그곳에 머무는 사이, 철학관 노인이 외쳤다.


“뭐해? 붓도 안 들고!”


그는 내게 페인트 붓을 건넸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대문을 바라보았다. 옥색인지, 하늘색인지 모를 정도로 색바랜 문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녹이 슬어 있었다. 윗부분이 손이 닿지 않는다며 도움을 청하더니, 막상 어디도 칠한 흔적이 없었다. 그는 나의 뒤편 바위에 편히 앉아 부채를 펼쳤다. 느긋하게 그늘에 기대 쉬며 나를 쳐다봤다. 빨리 시작하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 나는 페인트 통에 붓을 담갔다. 첫 붓질을 하자마자, 등 뒤로 따가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가로로 칠하면 어떡해! 세로로 칠해야지.”


그 말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 청력도 둔해지기 마련이다. 말소리가 흐릿하게 들릴 테니,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 불쾌감이 붓을 타고 흘러내려 흙바닥을 더럽혔다. 나는 붓질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바닥에 페인트 다 떨어지는데, 신문지라도 깔아야 하지 않겠어요?”


“뭐?”


“신문지요.”


“자네 집에 신문지 가진 것 좀 없어?”


“없어요.”


“신문지 하나 없어서야 참.”


무례해지기 싫었다. 그도 무례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오래된 페인트 냄새가 콧속을 찔렀다. 어지러웠다. 불량 청소년이 부는 본드보다 더 강하게, 화학 냄새가 머리를 감쌌다. 페인트의 향과 노인의 콧노래가 머릿속에 섞이고 있었다. 노인이 내뱉는 말 역시 페인트처럼 독했다.


“천지인이 하나고, 우주가 태어나는 것이 별이 태어나는 것과 같고, 별이 태어나는 것이 사람이 태어나는 것과 같으니…”


붓끝에서 떨어지는 페인트,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 그것들이 한 데 섞여 대문을 덮었다. 대문은 생각보다 컸고, 팔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그보다도 더 버거운 건 점점 짙어지는 향기, 아니, 그 냄새는 현실을 꿈처럼 흐리게 만들었다. 머릿속에 먼지처럼 부유하는 말들이 있었다. 그 말들이 노인의 목소리와 섞여 공기 중을 떠다녔다.


“우주가 죽는 것이 별이 죽는 것과 같고, 별이 죽는 것이 인간이 죽는 것과 같으니…”


“예?”


나는 엉겁결에 소리를 냈다. 페인트의 어지러움에 반사적인 웃음이 쏟아졌다. 붓질이 삐뚤어졌다. 어느샌가 완벽히 칠하고 싶은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 대문도 아닌데.


“웃기는. 이놈아, 똑바로 칠해라. 똑바로 칠해라. 똑바로 칠해라… 우주가 커지고, 커지고, 계속 커지니 그 거대함은 오히려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지니… 별이 불을 뿜고, 불이 식고, 먼지가 되어 다시 불이 되고, 또다시 불을 뿜으며… 인간이 울기 시작하니 어머니가 죽고, 어머니의 어머니는 누구인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는 누구인고…”


“주님.”


“주님이 누구시냐?”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무덤의 십자가를 바라봤다. 대답이 없자 그는 더 크게 외쳤다.


“어딜 보는겨! 손잡이 안쪽, 대문 바닥, 머리 위 정수리까지 보이지 않는 데도 다 칠해야지! 주님이 누구시냐!”


“몰라요.”


입술을 깨물며 터져 나오는 폭소를 간신히 억눌렀다. 그는 중얼거렸다.


“주님, 하나님, 아버지, 신… 우린 양만 바치면 되지. 기도는 우리가 하고, 소원은 그 양반이 들어주는 거 아녀?”


불경한 말이었다. 그제야 웃음이 그쳤다. 정신이 돌아왔다. 어느새 대문은 온통 파랗게 덮여 있었다. 붓을 페인트 통에 툭 던지고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르신, 그런 식으로 주님 이름을 망령되게 하면 안 되죠. 교회 다니신다면서요.”


“그럼 주님이 우리 기도 안 들어주신단 말이야?”


“그런 문제가 아니라… 주님은, 기도 들어주려고 존재하는 분이 아니에요. 알잖아요.”


노인은 부채 끝으로 코를 긁었다. 뭔가 더 말하고 싶어 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위 모서리, 거기 좀 덜 칠해졌네.”


“제가 보기엔 다 됐습니다. 나머지는 어르신이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또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의 시선이 뒷덜미에 박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서울 사람들이 깍쟁이라는 말을 듣는 걸까. 하고 싶은 말도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고. 언성을 조금 높인 걸 후회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노인의 말에 나 자신이 비쳤던 걸지도 모른다. 신을 소원 들어주는 존재쯤으로 여겼던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목소리를 높였을지도.


집 마당 앞에 도착한 나는 교회를 바라봤다. 빛을 잃은 십자가와 담벼락. 지워진 낙서의 자국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투명하게 빛났다. 그 옆, 내 집 대문은 아무 색도 덧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녹이 슬고, 이미 다 벗겨진 채.


대문을 발로 밀어 열고, 평상 위로 쓰러졌다. 페인트 향에 속이 메스꺼웠다. 잠이 들었다는 말보다 기절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꿈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 누운 내 얼굴 위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밖에서 잠들면 안 돼.’


빗방울이 피부에 닿으며 속삭였다. 주님의 목소리였을까.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골의 밤은 춥고, 벌레도 많다. 하늘은 감겨 있던 나의 눈만큼 어두워졌다. 보름달은 유난히 크고 밝았다. 긴 시간을 잠으로 허비했지만,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페인트의 독기 때문일 것이다.


반은 잠이 든 채 슬리퍼를 질질 끌어 마당에 발자국을 만들며 집으로 들어왔다. 안방에 몸을 눕히자, 몸이 이불에 스며들듯 가라앉았다. 밝은 핸드폰 화면도, 작고 복잡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페인트 냄새가 코끝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저 눈을 감고 싶었다. 감긴 눈은 자연스럽게 꿈으로 이어졌다. 현실에서 감은 눈을 꿈에서 뜨게 되었다.


꿈속의 나는 대문을 칠하고 있었다. 낮의 모습이 반복되는 듯했다. 노인의 콧노래가 등 뒤에서 흘러왔다.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팔은 내 뜻과 상관없이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대문을 열기 전까지는.


칠하던 대문이 열렸다. 그가 나타났다. 칼을 든 채, 내 앞에 섰다. 나를 엄습한 거대한 공포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붓칠하듯 지워냈다. 현실의 이불 속에 떨고 있을 손발이, 꿈에서는 굳어버렸다. 나는 붓을 떨어뜨렸다. 그 남자는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서울에서의 그날처럼. 나는 눈물을 참아냈다. 그 남자라는 공포 앞에 나는, 최소한 눈물은 숨고 싶었다. 그가 나를 지나치고 나의 등 뒤에선 고통의 절규가 들려왔다. 살을 가르며 칼이 움직이는 소리. 그 속에서 노인이 울부짖었다.


그의 절규는 나의 목덜미에 닿았다.


목덜미에 닿은 따뜻한 액체, 분명 피일 것이다. 노인이 숨을 거둔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깊은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나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숨이 거칠었다. 손은 떨렸고, 땀으로 젖어 있었다. 방 한쪽, 진정제가 든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기어가듯 가방을 열어 알약을 꺼냈다. 물도 없이 삼켰다. 몇 알이든 상관없다. 다시 잠드는 게 두려웠다.


차가운 거실로 나왔다. 닫힌 거실 미닫이문을 마주하고 앉아, 벽에 기대었다. 진정제에 잠은 몰려오고, 꿈으로 돌아가기엔 무서웠다. 새벽의 시골은 냉기마저 스며들었다. 추위를 견디며 팔짱을 끼고 앉은 채, 나는 나 자신을 원망했다.


‘서울을 떠나면 괜찮을 거라 믿었는데.’


악몽은 여전히 나를 따라왔다.


‘며칠 지났다고, 벌써 좋아지길 바랐던 걸까.’


두 가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다투었다. 진정제는 더 무거운 졸음을 불러왔고 고개는 자꾸 떨어졌다.


‘차라리 눕자. 악몽을 꾸더라도.’


그때였다.


미닫이문 너머 어둠 속에서, 그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노인들의 눈물 섞인 절규. 꿈속에서 들었던 그것. 공포와 고통에 빠진 자의 신음. 빗소리에 섞여 흐릿했지만, 분명 실재했다. 천천히 문을 열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담벼락 너머, 교회 쪽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 몸을 낮춘 채 마당을 지났다. 담벼락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교회 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나는 담벼락을 돌아 교회의 문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문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혹시 누가 다친 건 아닐까. 아니면 숨어야 하나? 갑작스러운 섬광이 시야를 뒤덮었다. 번개였다. 본능적으로 교회 벽 뒤로 몸을 숨겼다. 팔꿈치가 벽에 부딪혀 까졌지만,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벽에 시선이 박혔다. 낮에는 지워져 있던 벽화. 십자가에 매달린 남자의 그림. 그러나 그 얼굴은 검은 락카로 칠해져 있었다. 그림 속 그의 얼굴엔 입가의 미소만이 남아 있었다. 누가 고통 속에서 웃을 수 있는가? 나는 손끝으로 그 웃음을 닦아내고 싶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그 밤, 내가 담벼락 너머로 보았던 검은색의 무언가. 그게 바로 이 남자의 얼굴을 덮은 검은 칠이었을까.


교회 벽을 짚으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한쪽 눈만 조금 비칠 정도로 창안을 바라보았다. 바닥이 붉게 젖어 있었다. 피. 그 위에 무릎 꿇고 엎드린 노인들이 울고 있었다. 방언이었다. 이전에 들었던 그 소리.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방언은 기도가 아닌 절규였다.


원망스러운 하늘은 다시 섬광을 던졌다. 단 1초도 안 되는 빛 속에서, 철학관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를 노려봤다. 심장이 아팠다.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정확히 보고 있다는 확신. 움츠러든 나는 어디로든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곧 따라온 천둥의 굉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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