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사는 곳
아무도 대답도 없었다. 말도, 움직임도, 농담도 없었다.
나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 천장 가까이 손을 뻗으며 형광등을 분리하려는 순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숨조차 죽인 채, 아무런 표정도 없이 나를 올려다보는 노인들. 그들의 눈빛은 공허했으며,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의자를 붙잡고 있는 할머니의 손은 시늉만 할 뿐,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나는 균형을 잡는 데 집중했다. 형광등을 교체한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서 내려왔다. 푸른 지붕 집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가도 되죠?”
“밥은 먹었어?”
“아니요. 볼 일이 있어서요. 일하고 먹어야죠.”
“무슨 볼일인데?”
“예? 번역일이죠. 뭐.”
“번역할 일이 그렇게 많아?”
말투는 상냥했지만, 어딘가 가시가 있었다.
‘번역할 일이 그렇게 많냐고?’
가시에 걸린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아니면… 알고 있는 걸까? 계약이 줄줄이 끊기고 있다는 걸.
“아니요. 별로 없습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려서요.”
말끝이 거칠었다. 내 말투에 내가 먼저 움찔했지만, 이미 입 밖에 나간 말이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웃었다. 따뜻하지 않은 웃음. ‘거봐, 내 말 맞지?’ 하고 말하는 것 같은 입가의 주름.
뭐가 그리 웃긴 건지.
“바쁘지도 않으면서 참. 밥이나 먹고 가.”
할머니의 농담은 나의 내장 깊은 곳 분노를 끄집어냈다. 웃음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이 웃어댔다.
‘바쁘지도 않은 건 내 탓이 아닌데.’
나를 향한 비웃음에 나만 웃지 못한 채 있었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를 놀리는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미소를 짓는 바보. 일자리를 잃은 패배자. 나는 회관 한쪽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주방에선 몇몇 할머니들이 김이 올라오는 냄비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남은 어르신들은 말을 잃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침묵은 기묘했고, 그 기묘함이 오히려 편했다. 말이 없는 게 나을 테니까. 모두를 위해.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창가 아래 앉은 만수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방충망 너머로 퍼지는 햇살은 묘하게 흐렸다.
핸드폰을 꺼내 무심하게 알림창을 훑었다. 문자도, 메일도 없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만수 할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노인들도 나를 흘끗 보긴 했지만, 눈이 마주치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이 노인은 피하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뚫고 들여다보듯이.
방 안 공기는 축축했다. 곰팡이 핀 벽지와 오래된 나무 바닥, 파스 냄새와 삶은 무가 섞인 듯한 냄새. 그것들이 한데 뭉쳐 눅눅한 숨을 만들었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형광등은 멀쩡히 켜져 있었다.
‘고장 났던 게 맞기는 했을까.’
그제야 내가 자신을 과하게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모든 시선이 나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지고, 별 뜻 없이 던진 말에도 날 선 해석을 덧씌우고. 나도 예민해지긴 싫었다. 주방 쪽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어깨에 닿을 듯 스며들었다. 묘한 냄새가 따라왔다. 질척하고 무른 무언가를 오래 끓일 때 나는, 눅진하고 묵직한 냄새. 쉽게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그저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그 말이 또다시 뇌리를 맴돌았다.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시선 속에서 나 혼자만이 다 벗겨진 채로 남겨진 느낌.
‘노인 하나당 계약 하나로 바꿀 수 있다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서웠다. 나 자신이 무섭더라도, 분명 진심이었다. 그릇 놓이는 소리,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 국물의 김이 식탁 위를 천천히 감쌌다. 아직 벽에 기댄 채 꼼짝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천천히, 굽은 허리를 잡고 밥상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철학관 할아버지가 내 쪽을 보며 외쳤다.
“얼른 와서 먹어!”
나 역시 주변 노인들과 허리를 굽혀 몸을 밥상 앞으로 끌어당겼다. 어깨와 팔꿈치에 닿는 옆자리 노인들의 주름진 살결이 묘하게 간지럽고 불쾌했다. 이미 속이 좋지 않았다. 노인들은 밥상 위 찌개와 반찬의 뚜껑을 열었다. 뜨겁게 피어오르는 김 사이로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번졌다. 역하다는 본능과 예의의 저울질은 입맛을 잊게했다.
그들의 음식을 향한 거부감을 숨겨야 했다. 눈앞에 놓인 반찬들을 살폈다. 육회처럼 보이는 고기, 하지만 고기라 하기엔 너무 허옇고 물기가 많았다. 젓갈은 익숙한 냄새보다 더 묵직하고 끈적한 냄새를 풍겼다. 회갈색의 찌개 안에선 무슨 고기인지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입에 넣기 두려웠다. 노인들은 밥상을 둘러싸고 바쁘게 음식을 먹어치웠다. 다시 육회로 고개를 돌렸다. 쩝쩝거리는 소리뿐인 고요함을 깨기 위해 나는 입을 열었다.
“이건 무슨 고기예요? 육회 같아 보이는데…”
푸른 지붕 집 할머니가 입에 음식을 가득 머금은 채 짧게 대꾸했다.
“닭이여.”
“닭도 회로 먹나 보네요.”
“싫으면 안 먹어도 돼.”
할머니는 내 눈앞에서 닭 회가 담긴 그릇을 번쩍 들어 거두었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몫이 늘어난 것이 기쁜 듯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용기를 내어 찌개에 숟가락을 담갔다. 된장의 향 같기도 하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맛과 감촉이 입안을 감쌌다. 진득하고 눅진한 향, 찌개라기엔 너무 달았다. 맛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찌개를 맛보자마자 노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숟가락을 찌개에 담갔다. 정체 모를 고깃덩어리들이 입으로 옮겨졌다. 개구리 다리인지, 모양조차 알 수 없는 음식들 사이로 기괴한 냄새가 공기를 채웠다. 김치와 흰밥 몇 숟갈로 겨우 입을 채웠다.
어색한 침묵 속, 노인들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벽을 향해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밥상에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만수 할아버지가 조용히 물었다.
“입에 안 맞나?”
“아니요.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배가 안 고프다니?”
“평소에 아침을 잘 안 먹어서요.”
변명처럼 흘러나온 말에, 저리는 다리를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했다. 만수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벌써 12시가 넘었으니, 아침이라 하긴 어렵지 않나?”
변명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그릇을 치우시며 질문을 하나씩 남은 상에 남겼다. 마치 새들이 둥지를 돌아다니듯, 밥상과 주방을 오가며 쉴 새 없이.
“결혼은 안 했나?”
대답할 틈도 없이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애는 언제 가질 거냐?”
“아이를 가져야 어른이지.”
노인들은 나를 이리저리 밀어댔다.
“여자친구는 있고?”
“없어요.”
“왜 없는데? 몸도 멀쩡하고, 직업도 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그들의 질문은 썩어버린 음식 냄새처럼 공기 중에 스며들어 내 마음을 눌렀다. 혹시 내가 음식을 남겨서 화가 난 걸까, 은근히 나를 몰아세우는 걸까. 그런 생각조차 내 피해망상일 수 있다고 되뇌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등을 기대어 조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벽에 기대앉은 노인들의 모습을 훑던 내 시선이 주방 한쪽 선반 위의 오래된 액자에 멈췄다. 희미하게 바랜 사진. 그 속의 수십 명 가운데,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마와 눈썹, 마른 어깨… 왠지 익숙했다.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와는 친하셨어요?”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만수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TV 전원을 켰다. 영어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는 귀가 아플 정도로 볼륨을 올렸다. 영어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던 그는 뉴스 화면에 시선을 붙잡힌 듯 집중했다. 내가 뭐 불쾌한 질문이라도 했나?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철학관 할아버지는 어느 틈에 사라졌고, 밥상 주위에 있던 다른 노인들도 자취를 감췄다. 고추밭 할머니만이 굳은살 박인 손가락을 뜯으며 대답했다.
“그 양반이 워낙 내성적이라… 잘 몰라. 딱히 친한 사람도 없었지. 난 다 먹었으니, 소화할 겸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구먼.”
자리에서 일어나자, 저려오던 다리와 뻐근했던 등이 마침내 고통에서 풀려났다. 땀과 음식 냄새, 김이 뒤엉켜 눅눅하게 들러붙던 회관의 공기를 뚫고, 문을 열었다.
맑은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햇살은 강했지만, 그 바람은 시원했고, 나는 풀려난 죄수처럼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해방감이었다. 식사의 끝일 뿐이었지만, 어서 도망치고 싶었다.
노인들에게 인사도 없이 담배를 물고 집으로 향했다. 무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결국 온종일 마주치는 작은 마을이니. 벌레들과 새들이 태양 아래 소란스럽게 울고 있었다. 자연의 소리에 왠지 몸이 가렵고 눈가가 찡그려졌다. 집 앞 교회 담벼락에 다다르자 걸음이 멈췄다.
‘분명히 그림이 있었는데… 무슨 그림이었지?’
무엇인가 지워진 흔적이 있었다. 비 내리던 날 번개의 섬광이 교회의 담벼락을 비추던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번개의 빛이 잠시 기억을 밝혔고, 그 기억은 천둥처럼 나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 놀람도 오래가진 못했다.
기억은 금세 어두워졌고, 남은 것은 지워낸 듯 흐릿한 이미지뿐이었다. 그림은 흐릿한 흔적만 남긴 채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집 마당에 들어선 나는 평상부터 바라보았다. 밥도 먹었으니 감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이나 잘까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또다시 누군가에게 끌려가 회관에 앉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런 상상이 먼저 앞섰다.
평상을 내려다보던 나는 문도 잠그지 않고 살짝 열린 미닫이문을 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 공간, 내 집 차가운 거실 바닥에 누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방 안으로 들어가, 솜이불 속에 몸을 숨겼다. 회관에서 들었던 비웃음들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이어폰으로 막을 수 없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습관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음악을 고르다 보니, 마음에 드는 음악이 없었다. 잡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차를 팔아야 하나? 내가 아끼는 차를 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럴 리가 없잖아. 잠시 일이 안 풀리는 것뿐이다. 일이 많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지. 그런데도 머릿속엔 자꾸 그 말이 맴돌았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그 말이, 지금의 내 불안을 건드린 걸까. 그 말속에 숨은 저주라도 있는 걸까. 앞으로도 일거리가 없을 거라고? 정말? 나는 다시 핸드폰을 들어 메일함을 열었다. 새 메일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핸드폰을 들어 메일함을 열었다. 지워버린 사이비 교단의 이메일.
그걸 복구했다.
망설이지도 않고, ‘답장’ 버튼을 눌렀다. 숨이 깊게 나왔다.
하나님이 날 시험하시는 게 분명하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진실한 아들이라면, 어찌 저를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믿음을 증명하길 원하십니까.
하지만, 아버지.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하는 이를 시험하지 않습니다.
주님, 저의 새 출발을 허락해주십시오.
잃어버린 영화 번역 계약 하나만이라도, 다시 저에게 허락해주신다면 이곳에서, 이 마을에서, 저는 조금은 덜 비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억울하게 빼앗긴 기회를 돌려주십시오. 당신의 이름을 훔치는 사탄들의 유혹을 뿌리친 저에게, 단 한 번만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천천히 눈을 떴다. 방 안 천장에 하나님이라도 있다는 듯이 나는 천장을 노려보았다. 기도의 마지막 문장이 속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진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했나?
아니.
나는 나 자신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내가 살기 위해. 내가 끝까지 버티기 위해. 내가 손에 쥘 무언가를 위해. 그래.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신다면, 내가 그 시험을 통과해 보이겠다. 하나님이 나에게 선을 베풀라 명하신다면, 기꺼이 선을 베풀겠다. 결국, 주님의 시험을 통과하고, 축복을 내 두 손으로 얻어내고 말 것이다.
쿵쿵대는 소리.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