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그리스도와 헤라클레스

by 박규동

적그리스도는 억압자가 아닌 해방자의 모습으로 온다.


루시퍼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곤 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은 신의 영역이었고 제우스는 인간에게 무지가 곧 축복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메테우스는 횃불을, 에덴의 뱀은 선악과를 건넸으며 우리가 아는 이원론이 탄생했다.


그렇게 인간은 선과 악을 가르고 천사와 악마를 흑백으로 나누게 되었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신이 아닌 인간이 결정하게 되는, 오만의 바벨탑을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 신화는 3대 주신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이어지는 신화라는 특성에,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언행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의 횃불 이후 등장한 종교는 이미 선과 악이 나뉜 이후이기에 신은 절대선으로 묘사된다.


선악과를 토해낼 수는 없는 법. 우리는 선과 악이라는 흑백에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을 택해야 한다.


유물론에 자신을 가두어선 안 되는 것처럼, 영성 역시 정신적 감옥이 될 수 있다.


균형을 되찾을 메시아, 프로메테우스의 사슬을 끊는 두 얼굴의 적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영웅, 헤라클레스는 독수리에게 무한 장기기증에 빠진 프로메테우스를 구출한다.


기독교적 시각에서 루시퍼를 구출할 헤라클레스는 충분히 적그리스도처럼 보일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역할을 해낼 적그리스도, 쿠란에서 묘사되는 적그리스도 다잘은 한쪽 눈이 없다고 묘사된다.


이는 영성과 유물론 사이의 불균형을 상징한다.


이원론이라는 매트릭스에서 균형을 잃는 것은 파괴를 불러온다.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한 공산주의 혁명이나 무고한 이들을 불태운 마녀사냥 등.


헤라클레스는 기술이라는 횃불을 들고 찾아올 것이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하고 해방할지 몰라도 그 횃불이 우리의 균형을 잃게 할지 모름을 주의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이나 예수님의 말씀, 신화와 종교, 전설의 모든 예언은 상징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요한이 단순히 네로가 세상을 불태울 것이라고 하면, 로마의 몰락과 함께 그의 예언도 끝이 난다.


요한이 F15기가 하늘에 떠서 폭격한다고 말한다면 그 예언은 21세기와 그 후에나 실재할 수 있는 예언으로 죽게 된다.


하지만, 짐승의 수 666이나 붉은 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범시대적, 보편적인 진리 설파가 가능하다.


진정한 절대선은 균형뿐이며, 절대악은 불균형일 뿐이다.


흑과 백의 세상에서 붉은색이 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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