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의정부고 관짝소년단 사이에서
차별을 보는 과시적 감수성에 대해
2020년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이 백인 경찰에 8분 동안 목이 눌려 "I can't breathe"라고 호소하다 숨졌다. 물리적으로 저항하지도 않았고 순순히 체포당했으며, 단지 위조 지폐 '의심'을 받았을 뿐이고, 목이 눌리는 8분 동안 주변 사람들이 그를 제발 놔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스팔트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과잉진압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는 점점 더 격해지며 전 미국을 휩쓸었다.
당시 이 영상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유의 땅" 미국에서, 2020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도저히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먼 땅에서 일어난, 나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찾아봤다. 알려고 노력했다. 짧은 여행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한국에 콕 박혀서 살아왔기에 나는 평생 흑인이 '다민족국가' 미국에서 겪는 그 절망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인스타그램을 보게 됐다. 재미교포로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에서 활동하는 가수의 인스타그램에 "네가 진정한 미국인이라면 기부를 하고 그것을 올리라"는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물론 전부 영어 댓글이었다. 소속사의 관리를 철저히 받는 아이돌인만큼 자유롭게 기부를 하고 참여를 독려하기는 어려울 텐데, 이게 SNS로 꼭 증명해야 하는 일일까-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건 관련 게시물을 올려 고인을 애도하고 이 사건에 동감하고 있음을 표명했음에도, "기부"를 하고 그것을 "인증"하지 않았다며, 실망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연예인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BLM 태그를 걸고 페이스북 프사를 검정색으로 바꾸며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 코로나를 옮긴다며 동양인을 폭행하는 일에는 동양인만 분노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유럽이 패닉에 빠지고 미국에서 발생한 흑인 대상 인종혐오 범죄에는 전세계가 한마음으로 분노해야 하는가? 왜 프랑스의 고건물이 불탄 일은 전세계가 함께 슬퍼하고 교황이 유감을 표하면서 "안티아시안클럽"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분노가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안다. 누군가 죽어간 이 사건에, 동양인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맞고 죽어나갔어도 이만큼 알려지지 않았다고 비교하고 따지고 들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소수자로서 소수자가 혐오 범죄에 느끼는 공포에 대해 더 잘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과 절망을 나 역시 느끼고 공감하지만, 동양인으로서 동일한 수준의 공포를 느낀 또다른 사건들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 사건에 대한 전세계 사람들의 반응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애도가 동양인에게도 "강요"될 뿐만 아니라, 유행처럼 추모가 번지는 모습이 나에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더욱 당황스러웠던 건, 바다 건너 흑인이 차별받은 일에는 이렇게 분노한 사람들이 눈앞의 차별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코스프레 졸업사진으로 유명한 의정부고등학교가 올해는 관짝소년단을 패러디하며 얼굴을 검게 칠했다. 이를 비판한 방송인 샘 오취리의 인스타그램에는 '한국에서 받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당장 삭제해라'는 매서운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누구보다 좋은 교육을 받고 성정한 세대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종차별적 맥락으로 사용되어온)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인지도 모르고 있다. 심지어 그것이 차별적 행동이라고 지적한 흑인 방송인에게 '네 생각이 틀렸다'고 비난한다. #BlackLiveMatter 해시태그를 걸고 게시물을 올리고, 그 누구보다 혐오에 민감한 사람들이 얼굴을 까맣게 칠하고 흑인을 따라하는 게 인종차별이라는 건 모르다니? 뭐 이런 '선택적' 차별주의자가 다 있나.
게리 스토커는 <왜 정치가 문제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 활동이 마치 소비 지상주의의 세련된 형태와 다르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너무 많다. 좀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들, 그러니까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적으로 좀 더 선명하게 내보이고, 자신들이 어떤 좋은 물건을 골랐는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소비 지상주의 말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적용해도 이렇게 정확할 수가 없다. BLM 해시태그를 과시적으로 이용하며 '본인은 인종적 감수성이 민감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으스댔던 사람들이 의정부고의 블랙페이스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건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것이 아니므로 SNS에 올리기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과시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이용하면서 진짜 차별은 볼 줄 모르는 사회에 신물이 난다.
차별은 바다 건너에 있지 않다. 지금 눈을 뜨고 바로 내 앞에 있는 것부터 똑똑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