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친구와 단둘이서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다. 그래서 미친짓을 했다. 5일 동안 여행하면서, 숙소를 매일매일 바꾸는 짓. 뭘 특별히 사지도 않았는데 자연발생하는 것마냥 늘어나는 짐을 질질 끌고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돌아다녔다. 숙소도 아주 제대로 후미진 곳만 골라잡은 덕분에, 관광객들만 바글바글한 곳부터 관광객은 단 한명도 없는 곳까지 보고 돌아왔다. 돌아버릴 것처럼 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마천루들 사이를 헤맨 5일 간의 여행이 지금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의 이유>에서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 중 하나를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홍콩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홍콩은 좁고 시끄러웠으며 습하고 요란스러웠다. 매일매일 숙소를 바꾸는 미친 짓을 하면서 이 고요를 찾을 수 없는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호텔에서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기는커녕, 내일을 여행할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기가 이렇게 그립다니.
홍콩의 첫인상은 덥고 습한 공기였고, 트램과 2층 버스와 수많은 택시로 복잡한 길거리였다. 비가 오지 않음에도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도심지 한복판에서 웃통을 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적은 월요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의 끝을 보겠다며 올라가며 인터넷에서 보지 못한 예쁜 공간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었다. 맛있는 에그타르트와 버블티를 먹으며 세련된 아이쇼핑을 할 수 있음과 동시에, 거기서 5분만 걸어가면 한약재와 바다 냄새가 나는 알록달록하고 지저분한 아파트들이 빽빽히 자리하고 있었다. 웃통을 벗고 있는 할아버지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서양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도시, 그곳이 홍콩이다.
내가 왜 홍콩을 가고 싶어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유없는 일본 여행에 대한 반항심과 중국 여행에 대한 불안감의 대안으로 홍콩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만난 이 도시가 좋았다. 홍콩 영화는 중경삼림 하나밖에 본 적 없지만, 이 작고 시끄러운 도시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에서나 봤던, 환풍기가 전부 밖으로 나와 있는 좁고 알록달록한 건물과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은빛 유리 건물이 공존하는 이 곳에서 에너지를 느꼈다. 여행 첫날 침사추이 하버뷰가 보이는 호텔에서 잠이 들며 내가 이 도시에 또 오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동진 평론가가 말했던, '지나온 적 없는 어제의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탤지어'를 도시에 적용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홍콩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세대의, 홍콩 여행에 대한 욕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우리는 어렸을 때 홍콩 영화를 보며 자란 세대가 아니고, 홍콩에서 명품 쇼핑을 즐기기에는 경제력이 부족하며 한국은 너무나도 풍족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청년들은 홍콩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나의 경우, 근원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향수'였다. 홍콩뿐만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과 유사한 맥락이다. 홍콩 영화의 번성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적도 없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세련된 도시에서 나고자라 불편한 것 또는 구시대의 유물 같아 보이는 것은 거부하면서 그 시대의 외면만 쏙 빼와 즐기고 싶은 욕심. 경험해본 적 없는 시절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곳보다 홍콩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1950년대의 타일과 낡고 때 탄 천장 선풍기가 매달려 있는 미도 카페에서 밀크티와 토스트를 먹노라면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홍콩다움'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에서 여유와 느림을 찾는 사람이라면, 홍콩은 분명히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그러나 소음으로 가득 찬 곳에서 문득 인터넷에서 보지 못한 예쁜 공간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곳에서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던 그곳이 그립다. 홍콩 말고도 꽤 많은 여행을 해봤지만, 앞으로 언제 떠날 수 있을지 한치 앞도 모르는 날이 오자 홍콩만이 이토록 그립다.이번에는 지나온 적 없는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내가 있었던 그곳에 대한 그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