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삼겹살을 제대로 보는 법을 알았다

공장식 축산업과 고기를 생명으로 보는 법

by 젠니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의도치 않게 채식만 하고 있는 요즘… (가족들이 고기를 다들 좋아하지 않는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정말 열심히 읽었다. 함께 보고 읽은 다른 콘텐츠들과 엮어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참고로 집에서는 밥먹을 때 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절대.. 절대 밥먹으면서 보지 못했다. 첫번째로 내용 자체가 비위 상할 뿐만 아니라, 내 밥상 위에 고기는 없는데도 이 계란후라이가 어디서 나서 어떻게 내 밥상 위까지 올라왔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지구에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해악인 건 아닐까, 까지 고민하게 된다...



1. <고기로 태어나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541443


우리 모두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알고 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평생을 사는 돼지와 닭에 대해 알고 있다. 어렴풋하게 다큐멘터리 또는 교과서 어딘가에서 봤던 좁고 어두운 우리가 떠오를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것은 진짜 공장식 축산의 1할도 보여주지 못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책의 저자는 직접 닭고기, 돼지고기, 개고기를 만드는 축산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이 책을 펴냈다. 우리가 단순히 다큐멘터리를 보고 으… 공장식 축산은 너무 비윤리적이고 끔찍해, 하고 얼마 후 뇌리에서 지워버린 광경을 저자는 몸으로 경험했다.

내가 설명한 것만으로는 이 책의 충격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일부를 인용해본다. 이것도 가장 보기 힘든 부분이 아니다.

혹보다 흔한 문제는 눈병이었다. 눈동자 흰자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눈알이 새빨갛게 변한 돼지들이 여럿 있었다. 드물게는 눈알을 감싸고 있는 붉은 속살이 부풀어 올라 눈알을 덮은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눈 상태보다도 이것이 더 비극적인 사실일지 모르겠는데) 빨간 눈의 돼지들이 제대로 볼 수 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돈방이 좁고 다른 돼지들로 북적거려서 이들이 주변 사물을 판별해서 움직이는지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 우연히 사료통이나 수도 앞에 다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p286, 돼지고기의 경우-비육농장 중


(이 책의 의도가 그것이었겠지만) 마트에 진열된 베이컨이 아닌, 종돈장에서 태어나 키워지고 몇달도 안되어 배로 살찌워져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그 과정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지는 글로 보다보면 눈앞의 베이컨이 베이컨이 아니라 돼지로 보인다. 후술하겠지만 이것이 나에게 이 책이 준 가장 큰 배움이었다.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샤를리즈 테론이 나왔던 <몬스터>마냥 슬프고 답답하고 보기 불편하고 다시는 못 보는 영화가 될 것이다.


닭과 돼지와 개뿐만 아니라, 이 모든 걸 경험하고 적어 내려가는 저자의 변화도 인상 깊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 '고기'들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양돈장 주인과 실장과 함께 일하는 중국인 또는 태국인과 그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함께 먹은 음식, 농장 숙소의 환경에 대해 말한다. 그러니까 '축산업(고기 농장)'의 A부터 Z까지 전부 설명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2. <두번째 지구는 없다>와 함께 읽을 때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416338


<두번째 지구는 없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콘퍼런스에서는 매핑(mapping)이 강조되었다. 우리 앞에 머그잔이 있다고 하면 이 머그잔이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관계망을 그리는 것이다. 머그잔을 만드는 데 사용한 흙, 도자기를 굽는데 사용한 나무, 나무가 자란 숲… 조금씩 이렇게 관계망을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머그잔이 단순한 머그잔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와버렸다. 그 연결을 볼 수 없다면 기후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채식 또는 축산업과 연관된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난 이 책과 <고기로 태어나서>를 동시에 읽고 있었고, 축산업과 비건 관련 컨텐츠를 닥치는 대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대목을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해석한 대로 다시 써보자면 이렇다.


우리 앞에 베이컨이 있다고 하면 이 베이컨이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관계망을 그리는 것이다. 베이컨이 되기 전의 살아있는 돼지, 돼지가 자란 바퀴벌레와 똥물로 가득한 비육 농장, 비육 농장에서 한국인보다 적은 돈을 받고 일하는 태국인과 중국인… 조금씩 이렇게 관계망을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베이컨이 단순한 베이컨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하는 세상이 와버렸다. 그 연결을 볼 수 없다면 세상이 더 나아지기는 불가능하다.




3. 넷플릭스 - <익스플레인 : 세계를 해설하다 - 고기의 미래>과 함께 볼 때


어떻게 보면 2에서 한 얘기를 또 반복하는 격인데, 쓰이는 언어가 명확하면 조금 더 다르게 읽히니 이 콘텐츠도 소개한다. (일단 익스플레인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좋아한다. 20분짜리라 밥 먹으면서 혹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보기 좋다)


이 영상은 20분 안에 기업식 축산업이 우리와 고기 사이의 거리를 얼마나 가깝고도 멀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아니 다시 말하면 우리와 고기 사이의 거리는 가깝게 하고, 우리와 닭, 돼지 사이의 거리는 멀게 만들었다. 공장식 축산업이 발전하며 닭들은 6달에 걸쳐 자라던 걸 3주만에 자라게 되었고, 고기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사람들이 이제 편안하게 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굽고 볶고 썰어 먹게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현실과 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동물을 먹을 때 누구를 먹는지 모르고 먹게 된 것이다. 고기가 원래 동물과 비슷하면 먹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니즈를 반영해, 최종 유통되는 고기는 더더욱 가공된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돼지를 pig라고 부른다. 돼지고기는 pig가 아니라 pork라고 칭한다. 우리의 입에 들어가는 고기가 생명과 멀어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기로 태어나서>는 이 고기가 살아서 움직이던 닭이라는 충격적 사실을 눈앞에 들이댄 셈이다)


이 영상은 고기의 미래를 보여주며 끝난다. 도축장이 아닌 실험실에서 세포로 만들어진, 혹은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고기. 곤충, 콩으로 고기 맛을 내려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을 조명한다. (이 영상을 다 보고 나서 지금이라도 비욘드미트 주식을 사야하나 고민하고 상장된 대체육 기업을 구글링해보았다…)




4. 유튜브 - <Vox : The next pandemic could come from factory farms>와 함께 볼 때

https://youtu.be/hwuujiHvduc


앞서 설명한 익스플레인 다큐멘터리는 내가 직접 넷플릭스에서 찾아서 본 영상이라면, 이 영상은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구독 피드를 새로고침했을 때 떴다. (Vox도 정말 영상을 잘 만든다. 자막 띄워놓으면 내용도 쉽다. 10분도 안되서 간단하게 영어공부 양심 채우기에 최고인 채널) 때문에 상술한 3가지 콘텐츠와는 다른 결로 공장식 축산업을 논한다.


공장식 축산업을 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 즉 CAFO라고 한다. 이 영상은 어쩌면 다음 전염병은 CAFO에서 등장할 수 있음을 9분에 걸쳐 설명한다. 그러니까, CAFO가 동물들이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이제 안된다는 것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너무 열심히 봐서 동물… 동물권...에 몰입해 있던 나에게 또다른 시야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래, 생각해보니까 질병과 다툼이라는 건 많은 것들이 좁은 곳에 모여있을 때 생기는구나.



5. 오디오클립 - <[공존] human : 한은현 - 비건에 대하여>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355/clips/8#clip


Xyzorba라는 뉴스레터를 구독한다. IT업계 트렌드 인공지능 애플 시총 AI신호등 네이버 장보기 출시 따위로 가득한 삭막한 내 메일함에 유일하게 감성적인 뉴스레터다. 그 뉴스테러를 하시는 분이 만든 오디오클립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쯤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아니 그래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다면서, 이제 고기를 안 먹겠다는 건지, 비건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인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솔직히 고기를 그만 먹을 자신은 없다. 정말정말 솔직히, 맛있으니까. 방금도 내일 아침으로 엄마가 만들어놓은 미역국에 들어간 소고기를 보며 이 소고기가 어디서 왔을지 생각했지만. 계란후라이를 보면 <고기로 태어나서>에서 읽은 산란계 농장이 떠오르지만, 어쨌든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다. (아직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돼지고기는 만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삼겹살을 보면 책 속의 돼지가 떠오를지도.) 하지만 이 오디오클립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조금씩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니까, 화요일과 목요일은 채식을 하는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고기를 완전히 먹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 입에 들어가는 고기가 어디에서 왔을 것이며 얼마나 이 세상에 숨쉬고 있었을지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던 생명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고기를 먹는 주제에 내가 먹는 고기가 행복하게 살다 죽었으면 좋겠다-하는 꼴이지만!!) 그리고 고기를 대체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 롯데리아에 가면 미라클 버거를 먹고, 마켓컬리에서 15000원에 파는 비욘드미트를 시켜 먹어보고. 채식 옵션이 있는 곳이라면 되도록 그런 메뉴를 시키는 식으로.


이 오디오클립에서 한은현 씨가 설명하는 많은 것들이 이 글에서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고 고민해온 것들과 겹쳐진다. 조근조근 설명하시는 많은 부분들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게 나라면, 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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