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고 시끄럽고 내가 사랑하는 곳이 변했을 때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았다

by 젠니


6월 21일이었다. 신촌 CGV에 혼자 영화를 보러갔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맞춰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다. 영화 취향부터 가능한 요일과 시간, 모두의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영화관, 영화를 볼 때 무언가를 먹는지의 여부 같은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점심 메뉴 고르기보다 어렵다. 어쨌든, 그래서 혼자 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를 보러 갔다. 건장한 21세 여성이 혼자 애니메이션 보러 CGV 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톰 홀랜드와 크리스 프랫 더빙이었으니까!


이 영화!!


신촌 CGV는 무인으로 영화관을 운영해서, 팝콘 파는 곳을 제외하면 직원을 만날 일이 없다. (처음에는 아니 그러면 예매 안하고 들어와서 봐도 되는거 아냐?? 그랬는데 예매 안하면 좌석이 안 내려가더라.) 이 시국에는 직원을 만날 수 있는 절차가 하나 추가되었다. 영화관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직원이 온도를 재고 주의사항을 안내했다.


앞서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혼자' 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건 진짜 '혼자서' 영화를 본 일에 대한 글이다.


광고가 나오고 있는 영화관에 들어가 앉았다. 스크린 X관 한가운데 자리였다. 사람이 한 명도, 그러니까 단 한 명도 없길래 생각했다. 아싸, 내가 제일 먼저! 그런데 광고가 다 끝나고 금호타이어 친구들이 나와서 부산행을 패러디할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쯤되니 혹시 내가 시험 상영하는 영화관에 잘못 들어와 앉아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영화관 입구 전광판과 CGV 예매표를 몇번이나 비교했다. 그런데 진짜!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당황스러워하는 이때의 나...


지난 4월, CGV에서 '전세내기 이벤트'라고 해서 혼자서, 혹은 친구, 연인과 단둘이 영화관을 전세 낼 수 있는 이벤트를 했다. 문의가 폭주해 업무가 마비될 만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나는 그런 이벤트 신청한 적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도 남는데 영화나 볼까, 하고 들어온 것 뿐이다. 코로나 때문에 좌석 간 거리두기로 예매창에서 몇 명이 예매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어, 이게 CGV 몰래 카메라 이벤트인 줄 알았다. (조금 진심이다)


어쨌든 픽사 시네마틱 영상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고 영화관 입구도 아무도 닫아주지 않았으므로, 나 혼자 알아서 영화관 문을 닫았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아니면서 모든 게 셀프였다. 이렇게 자율적인 영화 관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어쩐지 애니메이션을 보려고 스크린X관을 빌린 부르주아가 된 기분이 들어서, 앞좌석에 발 올려볼까… 하다가 관뒀다. (앞좌석이 높아서 발이 올려지지도 않았다)


영화는 잘 보고 나왔다. 나올 때도 혼자서 영화관을 걸어나왔다. 혼자 들어가서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나오는 일. 어두운 영화관에서 갑자기 해가 쨍쨍한 일요일의 신촌 길바닥에 내던져지니 어딘가 외로워졌다. 서둘러 점심 약속 장소로 향했다. 사람이 보고 싶었다.


방해 없이, 오롯이 혼자서 커어어어어어다란 스크린을 보는 건 처음이라 1시간 40분 내내 어딘가 붕 뜬 낯선 기분이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아주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신촌이라는 공간적 특성 (주변 대학생이 주 고객인데 사이버강의, 심지어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일요일 점심, 애니메이션, 코로나19라는 몇가지 조건이 합쳐져 만들어진 특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항상 만남의 장소였다. 초등학생 때는 엄마아빠 손을 잡고 <아바타>와 <업>을 보았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 친구들과 매번 영화를 봤다. 지금의 나는 전시회를 보고 비싼 맛집과 술집을 찾아다닐 수 있지만, 중고등학생들이 만나 할일이라고는 떡볶이 먹기, 노래방 가기, 빙수 먹기, 영화 보기가 전부였다. 대학 합격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확인했다. (그래서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영화관이 떠오른다) 어둡고 북적이는 로비에서 팝콘 또는 나초를 사서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해치워 버리곤 했다. 커다란 스크린과 로비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예고편, 사람들의 말소리, 달콤한 카라멜 팝콘 냄새와 콜라 같은 것들.


팝콘도, 콜라도, 사람도 없는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니 그때의 영화관이 그립다. 어쩌면 지금의 아이들은 영화관을 나와 다르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조용히 해야하고,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앉아야만 하고, 항상 북적이지 않는 곳.


무엇이 더 좋고 다른 건 나쁘다-를 따지려는 건 아니지만, 카라멜 팝콘이 없는 영화관, 좌석을 꽉꽉 채우고 앉아 영화의 어떤 지점에서 함께 웃고 우는 사람들이 없는 영화관은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짝이고 시끄럽고 내가 사랑하는 곳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조금 슬프다.

작가의 이전글이제야 삼겹살을 제대로 보는 법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