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록
나름대로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2019년 회고록을 다시 보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한 스무 살짜리의 설렘이... 글에서 느껴져서 1년 전의 나를 귀여워해 주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당연하게도) 그런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한 사람들과는 줌 화면으로 매일매일 얼굴을 봤다. 아주 강렬한 행복은 없었어도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이 많았다. 이 글은 그런 소소한 행복을 안겨준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합니다~ 2020년 주연이의 어워드~
1. 올해의 책 - 에세이 부문
<우아한 가난>. 나는 기본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동경하지만, 글을 우아하게 쓰는 사람은 더 좋아한다... 위트 있고 유려하게 쓰인 글이 좋다. 이 에세이가 그런 글이다. 놀라울 정도로 가난해도 취향을 포기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날이 좋으면 좋아하는 친구랑 한강을 걷고, 책을 읽고 눈물도 좀 흘리고, 제철과일을 사 먹는 사람이 돼야지. 여름엔 남산이든 서울숲이든 가서 녹음을 보고, 겨울엔 꼭 친구랑 붕어빵을 먹으면서 떠들어야지. 내 성취, 내 욕심에 휩쓸려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내 안에 쌓인 게 많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작년에도 이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요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흔들리지 않는 독자적인 삶의 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좋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취향과 안목, 그리고 약간의 용기가 있다면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할 수 있다.'
2. 올해의 책 - 소설 부문
<시선으로부터.> 축하드립니다. 정세랑이라니 너무 뻔한 선택인가? 올해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사실 후보군이 많이 없었다. 책을 미루지 않고 꾸준히 읽으려면 강제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서평단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내 취향이랑은 동떨어진 책을 리뷰해야 할 때가 많았다. 2021년에는 내돈내산내취향 책을 더 많이 읽어서 올해의 책 후보를 늘려오는 걸로.
3. 올해의 영화
<더 프롬 THE PROM>. 2020년 최고의 영화 추천합니다. 르네 젤위거 주연의 <주디>랑 고민하다가 시사성을 고려해서 <더 프롬>을 골랐다. 두 영화 다 뮤지컬 영화고... 내 눈에서 눈물 500리터를 뽑아냈다... 난 그냥 여성 서사 뮤지컬 영화면 조건 반사적으로 좋아하는 인간인가부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정말 '2020년'에 나와야 하는 영화라서 골랐다. 넷플릭스 쓰는 사람들이 전부 한 번씩 봐줬으면 좋겠다. 내년, 여의치 않다면 내후년이라도 꼭 직접 브로드웨이에 가서 <더 프롬>을 봐야지. 이렇게 뉴욕에 가서 해야 할 게 하나 더 생겼다.
Life ain't no dress rehearsal
No life ain't no dress rehearsal
4. 올해의 음악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그냥 올해를 한 음악으로 정리하라면,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쓸 수가 있지? 특정 노래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에프엑스의 <Goodbye Summer>를 들으면 중학생 때 계곡 옆에서 이 노래를 질리도록 들었던 기억이 나고, <유엔빌리지>를 들으면 허버허버 쑤안라펀에 에그타르트, 밀크티를 먹었던 마카오의 2성급 호텔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를 들으면, 그때 그 청년광장의 노을이 생각난다. 왁자지껄한 청년광장에서 이상할 정도로 빨간 노을을 보면서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었던 날. 그때, 분명히 이 순간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진짜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모든 게 아름다웠어
우울한 날들은 없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았어
사랑했으니까 뭐 됐어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5. 올해의 장소
집 앞 산책길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후...
약속이 있든 없든 집안에 3일 이상 있으면 좀이 쑤시는 인간이라, 이삼일에 한 번은 꼭 나와서 탄천길을 걸었다. 헐벗었던 나무가 푸르러졌다가 다시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전부 보았고, 개천이 파래졌다가 말라붙었다가 다시 물이 찼다가 얼어붙는 것까지 다 보았다. 노래를 랜덤으로 재생시키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그냥 걸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어떤 날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서울대병원이 있는 곳까지 왕복 3시간을 걸었다. 1년 내내 소소하게 행복할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올해의 장소상을 드립니다.
6. 올해의 과일
키위. 키위. 키위.
친구들이 날 김키빌런(김치볶음밥&키위 빌런)이라고 부를 정도로 키위를 먹었다. 그냥 1년 내내 먹었다. 사실 지금도 먹고 있다. 1년 내내 키위를 깎아대서 키위 깎기 달인이 되었다. 이제 키위 품종도 구분할 수 있다. 갑자기 올해 키위가 이렇게 좋아진 이유가 뭐지? 계기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어쩌다 보니 키위를 먹고 있었다. 키위는 최고의 과일입니다 우리 영원하자.
7. 올해의 그리운 음식
홍콩에서 먹었던 콘지. 콘지 이야기 50번쯤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정말 먹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 같다. 잠실 하이엔드 중식당 같은 데서 파는... 10000원쯤 되는 콘지 말고... 피곤에 쩐 아침에 대충 옷만 걸치고 나와서 홍콩 사람들이랑 합석한 자리에서 먹는 뜨끈한 콘지가 먹고 싶다... 인테리어 좋은 데서 먹는 콘지 말고... 빌딩숲 사이에 있는 쪼끄만 가게에서, 내가 영어로 말하든 한국어로 말하든 중국어로 말하든 광둥어로만 대답해주는 아주머니가 주는... 콘지가 먹고 싶다...
홍콩 당일치기로 콘지랑 에그타르트만 먹고 오고 싶다. 진심임.
8. 올해의 크리에이터
모티비. 좋아하는 일을 멋지게 해내기까지 하는 사람은 넘 멋져... 그 결과 누브랜딩킷에 뚜룽지까지 사버렸다. 호호호 내년에도 이렇게 좋은 자극을 많이 주는 영상 만들어주시길! 언젠가 같이 일도 해보고 싶다.
9. 올해의 잘한 점
1) 콘텐츠를 읽는 루틴을 만들었다. 올 초에는 커리어리에, 퍼블리에, 뉴스레터를 20개쯤 받고, 인스타그램에 트위터에 유튜브에 넷플릭스까지 거의 콘텐츠의 바닷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대로 보는 게 하나도 없겠다 싶어 기록 계정과 노션을 사용해서 정리했다. 인스타그램에 있는 인사이트 기록 계정에도 180개쯤 글이 쌓였다. 지원서를 쓸 때나 일이 안 풀릴 때 유용하게 썼다.
2) 진로의 방향성을 정했다. 앞으로 살다 보면 다른 길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흘러감도 두려워하지 않되 계획하고 살아야지.
3) 글을 많이 썼다. 회고록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들이 보는 곳이든, 나 혼자 쓰는 곳이든 내 머릿속에만 남겨두지 말고 꺼내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플랫폼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일수록 좋은 것 같다. 공개 선언 효과처럼, 나 이런거 했고 이런거 할거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게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준다. 브런치에는 조금 불성실했던 것 같아, 내년에는 최소 2주에 글 하나는 써야지. 다짐.
4) 많이 나섰다. 기회는 정말 가만히 있는다고 오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여기저기 다 손들고 이것저것 다 찔러보았다. 그러다 보니 성과(+상금)으로 돌아오는 일들도 꽤 있었고, 성과는 좋지 않더라도 배우는 게 확실히 있었다. 이렇게 찔러보고 다닌 기록도 노션에 열심히 정리해서 많은 것들에 써먹었다. WHY, WHAT, HOW 세 단계로 나누어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맡아서 무슨 일을 했고, 그 일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지' 기록하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도 열심히 나대는 사람이 되어야지.
10. 내년에 더 잘하고 싶은 점
1) 발표를 잘하고 싶다.
아니 굳이 발표가 아니어도, 남들 앞에서 무언가를 잘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 이 정도면 괜찮네 말고... 우와 잘한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수준으로...
요 근래 발표할 일이 정말 많았다. 별로 내 성에 차지 않는 발표를 하게 돼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이렇게 해야지!라고 준비해 가도 다음과 같은 일들이 발생했다.
1. 대본을 준비한 경우 - 대본을 거의 그대로 읽는다.
2. 대본을 준비하지 않고 이런 내용을 말해야지, 생각하고 간 경우 - 아무말이나 잘할 수 있으므로 오디오가 비지는 않으나 정말 아무말을 한다. 결국 같은 뜻인 말들을 여러 번 반복하거나 앞뒤 내용이 잘 안 이어지게 말한다.
내년에는 발표할 일을 더 많이 만들어서 더 잘해야지.
2) 좋은 콘텐츠를 더 많이 읽고 쓰고 싶다.
올해는 약간 콘텐츠의 양에 집중한 느낌. 저품질과 고품질을 가리지 않고 정말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영상, 좋은 글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다. 2021년에는 '좋은' 걸 많이 봐야지! 글이든 영화든 고전을 못 보는(...) 그런 재미없는거시러병이 있었는데 내년에는 고전까지 골고루 읽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 올해 리뷰를 꽤 많이 쓰면서 느꼈는데 정말 내가 관심 없는 분야면 리뷰를 무슨 초딩마냥 쓰더라,,, 글만 읽어도 아 얘 이거 리뷰를 쓰고 있긴 한데 이 주제에는 별 관심 없구나(ㅠㅠㅋㅋ)가 느껴지는... 사실 관심 없는 쪽엔 아는 것도 없으니까 그렇게 쓸 수밖에 없긴 함. 하지만. 그래도 잘하자.
3) 파이썬이랑 태블로랑 R 잘 쓰는 사람이 돼야지. 그러려고 중급 특강이랑 동아리랑 복전이랑 다 신청해놓음 이제 나만 잘하면 됨.... 잘하좍!! 1년 뒤에는 이 분야에서도 공모전이든 프로젝트든 성과를 기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이런 단어 써도 되나,,?나름대로 내가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고, 소소한 성과도 많이 만들었던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되었으면 너무너무 좋겠지만, 혹시 그러지 못하더라도
이제 좌절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이겨낸다...! 마인드로 이겨내 버릴 것.
나만의 징크스(?) 같은 게 있다. 12월 마지막 날에서 1월 첫 번째 날로 넘어가는 순간, 그 해에 제일 잘하고 싶은 걸 한다.
고2에서 고3이 되는 해에는 수학 문제를 풀었다.
고3에서 20살이 되는 해에는 술집 앞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고 그 술집의 첫 00년생으로 입장했으며...
20살에서 21살이 되는 해에는.... TV 보고... (<- 왜그랬뇽.,,,) 여행 캐리어 쌌다...
올해는 R프로그램 돌려서 그동안 계속 막혔던 트위터 키워드 크롤링하고 잘 것.
21살로 넘어가는 건 너무너무 싫었는데
이제 22살 되는 건 괜찮은 거 같애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기대돼
2020년 안녕! 2021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