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번던스』가 사회혁신가에게 던지는 질문
사회혁신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이 모순을 안다.
문제는 식별됐다. 데이터도 있다. 해법도 있다. 때로는 예산까지 확보돼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주택은 충분히 공급되지 않고, 청정에너지 전환은 지연되며, 지역 의료의 공백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제때, 충분한 규모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의 『어번던스(Abundance)』(2025)는 바로 그 답답함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클라인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팟캐스터로, 미국 정치와 의료·기후 정책을 가장 날카롭게 해부해온 저널리스트다. 톰슨은 The Atlantic의 스태프 라이터로, 경제와 노동, 혁신의 구조를 오랫동안 추적해온 분석가다. 두 사람 모두 진보적 관점을 가진 저자들이다. 그런데 이 책은 진보 진영을 향한 통렬한 자기비판서로 읽힌다. 출간 직후 The Atlantic, New Yorker, Boston Review가 일제히 리뷰를 실었고, "민주당 지도부가 돌려 읽은 필독서"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책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가지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짓고 발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뒤에 날카로운 진단이 따라온다.
"21세기 미국의 이야기는 선택된 희소성의 이야기다."
오늘의 부족은 자연 상태가 아니라 제도적 선택의 결과라는 선언이다. 이 두 문장이 사실상 책 전체를 관통한다.
책의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저자들은 독자를 먼저 2050년으로 데려간다.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의 중심이 되고, 의약 기술은 더 진전되며, 노동시간은 줄고, 사회 인프라는 훨씬 잘 작동하는 세계다. 그렇게 한 번 미래를 충분히 보여준 뒤, 시선을 다시 현재로 돌린다. 왜 21세기 초반의 미국은 이미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도 그것을 만들지 못했는가.
저자들의 답은 불편하다. 오늘의 결핍은 불가피한 재난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오랜 세월 주거 시설을 넉넉하게 짓기를 거부한 끝에 전국적인 주택난이 왔다. 수십 년간 경고를 받았지만 청정에너지 기간시설을 구축하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야심찬 공공 프로젝트는 설사 완공된다 해도 늘 공기를 넘기고 예산을 초과했다. 이 모든 것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제도와 정치의 누적된 선택이었다는 것. 그 인정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저자들의 진단은 정교하게 양면을 겨냥한다. 20세기에 걸쳐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에 맞서 싸웠고, 진보주의자들은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보수는 정부의 역량을 깎아냈고, 진보는 좋은 의도로 정부 위에 더 많은 절차와 규범, 심의와 조건을 덧씌워 왔다. 그 결과 남은 것은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대립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정부인가 아닌가의 문제다. 정부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사이, 정부의 역량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은 묻혀버렸다.
책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개념이 있다. 저자들이 "만능이 되려다 무능해지는 리버럴리즘(everything-bagel liberalism)" 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에브리씽 베이글은 참깨, 양귀비씨, 마늘, 양파, 소금 등 모든 토핑을 한꺼번에 얹은 뉴욕식 베이글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이것저것 몽땅 집어넣은 베이글을 만들려다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저자들은 이것을 정치적 은유로 쓴다. 하나의 사업에 너무 많은 목표, 기준, 형평성 조건, 상징적 가치를 동시에 얹으면, 사업은 자기 무게에 깔려 무너진다. 정부가 적절한 수의 목표와 기준과 규정을 추가하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목표를 너무 많이 추가하면 공공사업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다.
이 모순은 기후 문제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들은 이렇게 고발한다. 우리는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구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많은 미국인은 청정에너지 혁명에 결사반대한다. 심지어 민주당 텃밭인 리버럴 성향의 주들조차 탄소 배출 제로인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와 태양광 발전 시설 건설에 반대한다. 주거 시설은 인권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은 신규 주택 건설을 너무 까다롭게 해놓았다. 더 효과적인 의약품과 치료법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과학자들이 가장 전도유망한 연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연구·지원·규제 체제를 용인한다.
선언과 실행 사이에 이 거대한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주거 문제가 그 전형이다. 대도시에서 다가구주택 하나를 짓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용도지역 검토, 환경영향 평가, 주민 공청회, 각종 위원회 심의, 법적 이의 제기와 항소 절차가 층층이 쌓인다. 그 하나하나는 민주주의와 공공성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절차들이 합쳐졌을 때 나타나는 총효과다. 집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와 집이 실제로 지어지는 현실 사이에, 어느새 수년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끼어든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규제 자체가 아니다. 1970년대 문제를 풀기 위해 설계된 규칙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수정 없이 2024년의 도시 밀도와 그린 에너지 프로젝트를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의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23년 필라델피아 I-95 고속도로 붕괴 복구다.
유조차 화재로 고가도로 구간이 무너졌다. 통상적인 절차대로라면 복구에 수년이 걸릴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지사는 긴급 권한을 발동해 절차를 우회했다. 결과는 12일 만의 복구였다. 저자들은 이 사례 뒤에 이렇게 묻는다. 샤피로 주지사가 쓴 방식은 통상적으로라면 불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 전국 지도부도, 펜실베이니아 유권자들도 모두 그것을 환영했다. 그렇다면 평소의 절차는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예외적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 왜 평소에는 불가능한가. 이 질문은 인프라를 넘어 행정 전반으로 확장된다. 중국이 수십만 킬로미터의 고속철도를 깔고 있는 동안, 캘리포니아는 수백 킬로미터도 완공하지 못했다. 물론 이 비교에는 위험이 있다. 권위주의적 속도와 민주적 숙의의 차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묻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이 속도는, 정말로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이름을 빌린 관료적 타성인가.
저자들이 남긴 문장 가운데 가장 깊은 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정부는 단수인 척하는 복수다."
정부는 하나의 의지를 가진 단일 행위자가 아니다. 서로 충돌하는 부서, 법원, 기관, 지방정부, 절차가 얽힌 복수체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면 된다"는 말은 절반짜리 답이다. 어느 정부가, 어떤 병목을 뚫고, 어떤 속도로 움직이는가를 묻지 않으면 선언은 공염불이 된다.
이 지점에서 책은 국가의 역할을 재정의한다. 저자들이 바라는 국가는 단순히 돈을 더 쓰는 국가도, 무작정 규제를 푸는 국가도 아니다. 어디에서 일이 막히는지를 추적하고, 그 병목을 제거하도록 제도와 절차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다. 저자들은 이것을 "병목 탐정으로서의 정부" 라고 부른다.
이 개념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례가 책에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페니실린의 화학적 특성과 생산 과정에서 부딪히는 난관들을 규명하고 장애물 넘기를 순탄한 길로 전환했다. 2020년 코로나 위기에서는 신속한 백신 개발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규명하고 이를 제거했다. 두 사례 모두에서 정부는 국가 최고의 문제 해결사 역할을 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새로운 기업가적 국가란 바로 이것이다. 돈을 뿌리거나 규제를 없애는 존재가 아니라, 혁신과 보급이 어디서 막히는지를 찾아 설계를 바꾸는 존재.
이 책이 도시정책을 넘어 과학기술정책 비판서로도 읽히는 이유는 '발명(Invent)' 챕터 때문이다.
저자들은 NIH 같은 공공 연구비 시스템이 점점 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연구를 선호하면서, 고위험·고잠재력 연구를 제도의 바깥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이 연구보다 제안서와 행정 절차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구조 속에서, 혁신은 탄생 자체보다 지속이 더 어려워진다.
카탈린 커리코의 사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mRNA 기술의 선구자이자 코로나 백신의 과학적 토대를 만든 인물. 그러나 그녀의 경력은 순탄하지 않았다.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고, 연구비를 잃었고, 강등되었다. 1985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녀가 이주 시기를 몇 년만 더 늦췄다면, H-1B 비자 발급 상한선으로 인해 미국에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mRNA 연구도 지연되어 전혀 다른 결과가 빚어졌을지 모른다. 그녀를 위협한 것은 아이디어의 결함이 아니었다. 제도가 그 아이디어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부족했던 것은 천재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끝까지 지탱해 줄 제도의 인내였다.
문제는 돈의 규모가 아니라 돈이 흐르는 방식이다. 과학 파트의 결론도 규제 철폐가 아니다. 과학을 더 잘 작동시키는 행정의 재설계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사회혁신 생태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난 10여 년간 임팩트 측정, ESG, 사회적 가치 계량, 소셜벤처 육성 등 변화의 필요를 설명하는 언어를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다. 왜 바뀌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증명하는 일에는 많은 역량을 축적했다. 그러나 정작 그 변화가 현장에서 구현되는 속도와 규모를 점검하는 데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파일럿은 반복되지만 확산은 더디다. 좋은 모델은 많지만 제도 안으로 안착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린다. 자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금이 흐를 통로가 막혀 있고, 정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책이 작동하는 경로가 끊겨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셜벤처의 임팩트가 확산되지 않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보급의 설계가 없어서인가. 사회적 금융이 현장에 닿지 못하는 이유는 자금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자금이 흐를 경로가 끊겨 있기 때문인가. 중간지원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역량 부족인가, 아니면 제도가 끊임없이 새로운 행정적 마찰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인가.
『어번던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불편하지만 정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변화의 당위는 누구보다 잘 말해왔다. 그러나 그 변화가 실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막고 있는 병목까지 충분히 응시해 왔는가. 가치의 선언에서 만족하는 혁신과, 현실을 실제로 지어내는 혁신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책은 강력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그것을 알고 읽는 것이 더 풍부한 독서다.
Boston Review는 저자들이 규제와 절차를 지나치게 중심 원인으로 놓으면서, 금리·토지가격·건설노동 시장·민간 투자 유인·독점 구조 같은 시장 요인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급이 늘어도 그것이 곧바로 취약계층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New Yorker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2050년 풍요로운 미래상이 인상적이지만, 더 전통적인 자유주의 정치가 던져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고. 그 미래가 과연 브롱크스에도 도달하는가.
사회혁신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렇다. 임팩트는 총량이 아니라 도달이다.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 것이 목표다. 풍요가 총량의 확대에 머물지 않고 분배 정의로 이어지려면, 권력과 자본, 접근성과 배분의 질문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 『어번던스』는 공급과 실행을 복권시키는 데는 매우 강한 책이다. 그러나 그 빈칸은 사회혁신가들이 채워야 할 바로 그 자리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저자들은 결론부에서 이렇게 묻는다. 주거 시설이 충분치 않다면 더 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청정에너지가 충분치 않다면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한 이 질문들에서 수많은 소중한 질문들이 꽃핀다. 답을 완성해서 제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질문의 지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누가 해야 하는가"를 물어왔다. 이 책은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 도대체 어디에서 막히고 있는가.
풍요는 더 많이 소비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저자들의 표현대로, 풍요는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이다. 막힘의 시대에 다시 정의된 자유다. 이동할 자유, 치료받을 자유, 그리고 실제로 짓고 만들어낼 자유. 그 자유가 가로막히는 지점마다 병목이 있다. 그리고 그 병목을 식별하고, 설계를 바꾸고, 실행의 경로를 다시 여는 일. 그것이 사회혁신이 다음 10년 동안 해야 할 가장 어렵고 가장 현실적인 일이다.
당위는 이미 충분히 말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당신의 조직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지점을 바꾸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