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의 거품이 꺼지는 순간

AI 시대, 시장은 ‘자동 프리미엄’의 근거를 묻기 시작했다

by 씨알

2026년 4월 9일 오후, X(구 트위터)에 하나의 표가 올라왔다. 2013년부터 활동해온 투자자 Lin(@Speculator_io)이 만든 "The Great Software Meltdown" — 소프트웨어 대붕괴라는 제목의 이 시각 자료는 같은 날 15만 뷰를 넘기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실 이 표의 원형은 두 달 앞선 1월 29일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버전은 85만 뷰를 기록하며 소프트웨어 투자 커뮤니티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4월 9일 업데이트는 그 연장선이었다.


표를 읽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짚는다. 일부 종목의 가격이 당일 장 마감 종가와 미세하게 다르다. 장중 실시간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개별 수치를 정밀한 원시 데이터로 인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방향성은 다르다. 같은 날 Reuters는 소프트웨어 섹터가 시장의 명확한 언더퍼포머였고, S&P 500 Software and Services Index가 연초 이후 25.5% 하락 상태임을 보도했다. 표가 포착한 흐름 자체는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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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HubSpot, Workday, Salesforce, Figma.
개발팀과 마케팅팀, 디자인팀과 인사팀이 매일같이 여는 소프트웨어들이다. 구독을 끊는 순간 업무가 흔들릴 만큼 깊이 들어와 있는 도구들이다. 그런데 시장은 지금, 이 익숙한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더 이상 자동으로 프리미엄을 주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된 ‘Software Meltdown’ 표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 표를 정밀한 원시 데이터처럼 읽어서는 곤란하다. 개별 종목 가격과 수익률, 낙폭 지표가 한 장에 혼재돼 있어 자칫 서로 다른 숫자를 같은 기준으로 오독하기 쉽다. 그럼에도 이 표가 포착한 문제의식 자체는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지금 시장이 흔드는 것은 소프트웨어라는 산업 전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이 당연하게 받아오던 프리미엄의 근거다.


그 장면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날이 2026년 4월 9일이었다. 그날 미국 증시는 오히려 올랐다. 다우, S&P500, 나스닥이 모두 상승 마감했지만, 소프트웨어주는 따로 밀렸다. 이것은 시장 전체 급락의 일부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섹터가 시장수익률을 밑도는 부진(언더퍼포먼스, 다른 업종이나 전체 시장보다 성과가 나빴다는 뜻) 을 보인 사례에 가까웠다.


왜 하필 소프트웨어였을까.
그 배경에는 다시 커진 AI 불안이 있다. 시장은 점점 더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빠르게 복제하거나 잠식할 수 있다면, 지금의 높은 구독료와 높은 기업가치를 앞으로도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가. 시장이 흔든 것은 단기 실적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당연시돼 온 사업상의 방어력과 프리미엄이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곧바로 “AI가 SaaS를 끝낸다”는 선언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기존 SaaS의 구독료와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해온 근거를 얼마나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는가.


이 질문을 조금 더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지금의 하락은 고객이 한꺼번에 떠나서 벌어진 일이라기보다 투자자의 기대가 먼저 바뀐 결과에 가깝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기업의 총유지율(gross retention, 기존 고객에게서 발생하던 매출이 얼마나 유지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은 아직 크게 무너졌다고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이미 확보해 둔 기존 고객 기반(installed base, 이미 확보해 둔 고객층과 그 고객들이 쓰고 있는 제품 기반) 은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지만, 시장은 그 안정성만으로 예전 같은 프리미엄을 주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표를 읽는 더 나은 방법이 나온다.


지금의 하락은 “소프트웨어 전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내부의 선별이다. 어떤 기업은 여전히 깊은 데이터 축적과 프로세스 내재화, 보안과 규제 대응, 조직 운영의 중심부라는 자리를 갖고 있다. 반면 어떤 기업은 많이 쓰이더라도, AI가 기능 단위로 더 빨리 대체하거나 압축할 수 있는 영역에 놓여 있다. 시장은 이제 이 둘을 같은 값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기능 하나하나가 곧 상품성이었다. 화면이 좋고, 워크플로우가 편하고, 구독 기반 반복 매출(recurring revenue, 매달 또는 매년 계속 들어오는 구독형 매출) 이 쌓이면 높은 프리미엄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AI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기능은 더 빨리 복제되고, 인터페이스는 더 빨리 평준화되며, 단순히 사용자를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성장의 서사를 지탱하기 어려워진다.


이 변화는 가격 체계에서도 드러난다. 과거에는 기업용 소프트웨어가 주로 사용자 계정 수(seat, 소프트웨어를 쓰는 사람 수 또는 라이선스 수) 를 기준으로 값을 매겼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실제 사용량(usage,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썼는지), 업무 흐름(workflow,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순서와 방식), 그리고 성과(outcome, 소프트웨어를 써서 실제로 얻은 결과) 를 기준으로 가격을 매기는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접근권 자체보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일을 대신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무너지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자동 프리미엄이다.
“한 번 들어가면 잘 안 바뀐다”, “매출은 반복되고 한계비용은 낮다”, “성장은 늦춰져도 결국 회복된다”는 오래된 가정이 더 이상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장은 이제 묻는다. 이 회사는 단지 기능을 파는가, 아니면 고객의 데이터와 의사결정, 운영 프로세스 안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가. 다시 말해, 고객 업무 안에서의 대체 불가능성(지위의 깊이, 단순히 쓰이는 수준이 아니라 업무와 데이터 속에 깊이 들어가 쉽게 빼기 어려운 상태) 을 갖고 있는가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질문은 투자자에게도, 창업자에게도 똑같이 중요하다.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섹터 전체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구조적 방어력을 가진 기업을 가려내는 눈이다. 자금은 점점 더 AI 자체를 떠받치는 기반 기술과,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 그리고 고객의 핵심 업무에 깊이 박힌 소프트웨어로 향한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다. 어떤 소프트웨어는 회사의 핵심 데이터가 쌓이고 기준이 되는 시스템 오브 레코드(system of record, 회사의 핵심 정보가 저장되고 관리되는 중심 시스템) 이다. ERP나 회계 시스템, 핵심 고객관리 시스템이 여기에 가깝다. 반면 어떤 소프트웨어는 단순 기록을 넘어 실제 업무를 움직이고 처리하는 시스템 오브 액션(system of action, 실제 작업을 실행하고 끝내는 시스템) 에 가깝다. 앞으로 더 강한 프리미엄은 이 두 영역 중에서도 특히 고객 운영의 중심을 움켜쥔 쪽에 붙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위험한 영역도 있다. 특정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SaaS(vertical SaaS, 특정 산업이나 업종에 맞춰 만든 전문 소프트웨어) 라고 해도, 그 안에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유 데이터 자산(proprietary data, 경쟁사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자사만의 데이터) 이 없다면 생각보다 약할 수 있다. 여러 업종에서 공통으로 쓰는 범용 수평 툴(horizontal tool, 특정 업종이 아니라 여러 업종에서 널리 쓰는 일반 도구) 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핵심 업무를 깊게 장악하지 못한 얇은 워크플로우 레이어(thin workflow layer, 중요한 업무 흐름을 붙잡지 못한 얕은 기능성 소프트웨어) 는 AI에 의해 가격 압박을 받기 쉽다.


창업자에게는 교훈이 더 직접적이다.
이제 “SaaS 모델이면 된다”는 말은 전략이 아니다. 앞으로 프리미엄을 받는 제품은 단순히 화면이 좋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을 대신해주고, 더 빠르게 가치를 입증하며, 고객의 운영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강해지는 제품이다. 그리고 시장은 그런 기업이 단지 성장만 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 구간으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함께 본다. 즉, 수익 전환(profitability inflection, 성장 중심 단계에서 실제 이익을 내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 의 가시성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지금 시장이 하는 일은 파괴가 아니라 분류다.
모든 SaaS가 같은 값으로 평가받던 시대가 끝나고 있을 뿐이다.

AI 이후의 시장은 기능의 개수보다, 그 소프트웨어가 고객의 데이터와 업무 흐름 속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를 본다. 성장률의 크기보다 수익의 질을, 유명한 브랜드보다 실제로 대체하기 어려운 자리를 더 중요하게 본다. 당신이 매달 결제하는 그 소프트웨어는 내일도 아마 계속 쓰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묻고 있다. 그 소프트웨어가 정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시스템인지, 아니면 아직은 비싸게 팔리고 있는 기능 묶음인지.


지금 녹고 있는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그 둘을 구분하지 않던 시대의 프리미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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