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고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닙니다. 강한 자가 어디서 무너지는지, 혹은 행동하는 이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었는지를 지적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모든 명예는 실제로 경기장에 안에서 뛰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설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10년간의 창업 여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한 창업자의 솔직하고 깊이 있는 고백입니다.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우리에게도,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창업자들에게도 많은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계몽이 아닌 해결책을 찾아라
저자가 가장 뼈아프게 깨달은 교훈 중 하나는 "계몽주의 사업의 한계"였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벤처 기업의 최대 위험은 제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객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은 고객의 요구를 변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킨 것에 대한 보상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창업자들이 시장을 교육하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고객의 현재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를 "비타민이 아닌 진통제"라는 표현으로 명확히 구분합니다.
고객이 당장 아픈 부분을 해결해 주는 진통제 역할의 제품을 만들 때야 비로소 시장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리드 호프먼의 통찰도 인상적입니다.
그는 어떤 사업을 판단할 때 "이 사업이 인간의 본성 중 어떤 것을 건드리는지 혹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인지"를 중요하게 본다고 했습니다.
고객에게서 배우는 겸손함
저자의 팀원들이 했던 자기반성도 인상 깊습니다:
"현재 고객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우리가 교육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 선택이 많았다."
"계몽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제품을 쓰게 만드는 것이 먼저인데, 고객에게 초기 가치를 주지 못해 설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딱딱하고 복잡한 제품 구조.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답안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는데, 이게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이런 솔직한 반성을 통해 저자는 깨달았습니다.
"아웃바운드 채택이 더 좋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우리가 아무리 떠들든, 고객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것"이라고 말입니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창업자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시간은 창업자에게 가장 잔혹한 심판이다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룰수록, 앞쪽에서 적은 비용으로 고칠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앤드루 그로브의 교훈은 창업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저자는 "콘텐츠 사업은 첫날부터 매출이 찍히는 사업이었지만, 커리어 소셜미디어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비즈니스 모델을 붙이는 것은 모두 돈 버는 것을 뒤로 미룬 결정이었다"라고 회고합니다.
최저 가치 단계에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이 방법이 창업자와 잘 맞는지 미리 파악하고 고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스타트업에게 시간은 생명과 같습니다.
수익 창출을 미루는 모든 결정은 더 큰 리스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확장 불가능한 일들을 직접 해보면서 고객을 이해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전시와 평시를 동시에 살아가는 리더십
벤 호로위츠의 "평시 CEO와 전시 CEO" 개념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성공하는 창업자들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합니다.
평시 CEO는 "큰 그림에 역점을 두고 세부적인 결정은 직원들이 할 수 있게 권한을 위임하고, 기업문화 조성에 시간을 할애하며, 폭넓은 동의를 얻으려 노력"합니다.
반면 전시 CEO는 "가고자 하는 주된 방향에 방해가 된다면 깨알만 한 사항까지도 신경 쓰고, 위기 상황이 문화를 규정하게 하며, 합의 형성을 좋아하지 않고 의견 차이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발견한 것은 탁월한 창업자들의 독특함이었습니다.
"제프 베이조스와 마크 저커버그는 A와 B 사이의 균형이 아니라 A, B 둘 다 한다.
미래를 내다보면서도 지금을 살고, 하늘 위에서 가장 멀리 내다보다가도 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와 디테일을 챙깁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하게 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스케일 AI 창업자 알렉산더 왕의 조언을 인용하며, "남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하면, 적당한 낙관인 것이고, 남들이 과하게 의사소통한다고 하면, 적당히 소통하는 것이며, 남들이 기대치를 넘어선 성과라고 하면, 적당한 성과일 뿐"이라고 합니다.
창업자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
저자는 창업 초기 자신의 역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창업자라면, 그것도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자라면 A부터 Z까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은 누구의 일이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그 대답은 '대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피터 드러커의 세 가지 질문을 통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는 무엇을 정말 잘하는가? 나는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내는가?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을 통해 창업자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다른 일들은 적절히 위임하거나 조율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게으른 리더십' 개념도 중요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항상 있다"는 깨달음을 통해, 창업자는 자신의 강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순응하는 삶 vs 주도하는 삶
저자의 마인드셋 변화 과정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세일즈가 어려워 고민하던 중 샤워를 하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수동적(reactive)이 아니라 주도적(proactive)으로 살자.
상대가 찬 공을 허겁지겁 따라갈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코트 건너편으로 공을 쳐 보내자."
이 생각을 하고 나니 "한참 전에 명함을 받은 사람에게 오랜만에 연락하거나 소개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연락할 때도 일말의 주저함이나 거리낌이 사라졌다"라고 합니다.
최악의 상황이라 해봐야 거절 회신이 오거나 회신조차 안 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는 창업자에게 필수적인 마인드셋입니다.
시장이 알아서 와서 문을 두드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창업자가 먼저 나서서 기회를 만들고, 관계를 구축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투자와 주주 관계의 현실적 이해
투자를 받은 창업자라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투자금에 의존하면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회사가 생존하려면 투자를 받아야만 해"라고 생각하니 주주의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고, 표정 변화 하나에도 눈치를 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한 투자자의 조언이 특히 와닿습니다:
"하루빨리 월간 BEP를 넘겨라. 그다음엔 연간 BEP를 넘겨라.
투자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흑자 구조로 회사가 돌아가면 너도 훨씬 편한 마음으로 주주들을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주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기대치 관리라고 강조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핵심은 '기대 관리(expectation management)'"라고 하며, 두 가지 문장을 더 자주 사용했어야 했다고 후회합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저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와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도와주세요."
기대치 게임의 원리
저자가 인용한 기대치에 관한 통찰 또한 인상적입니다:
"행복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당신이 가진 '것(현실)'과 '기대하는 것(기대치)'이다.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따라서 가진 것을 늘리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을 쏟으면서 기대치를 관리하는 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히 "우리가 훨씬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닌 기대치"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창업자들은 성과를 올리는 것만큼 기대치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공동창업과 동업자에 대한 깊은 통찰
저자는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동업자 관계에 대해 성찰합니다.
이 둘이 처음 만난 지 무려 17년 만에야 동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만나자마자 아무리 대화가 잘 통하고 투자에 대해 깊은 교감을 나눴다 할지라도, '동업자'라는 관계에 이르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
그만큼 서로를 지켜보고 내린 신중한 결정이었던 셈입니다."
찰리 멍거의 커리어 조언도 의미 깊습니다:
"존경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과만 일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동업자의 중요한 요건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점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둘 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가"라는 통찰이 핵심입니다.
멍거가 말하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어제보다 조금 더 현명해지려고 노력하며 하루를 보내는" 동업자 관계야말로 진정한 파트너십입니다.
블리츠스케일링과 기회의 창
저자가 '블리츠스케일링'을 통해 배운 교훈도 중요합니다.
리드 호프먼의 말을 인용하며 "네트워크 효과 기반 서비스들은 1위 기업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구조"라고 하고, 빌 게이츠의 추천사도 인상적입니다:
"행동이 필요한 기회의 창은 대단히 좁고 빨리 닫힙니다.
단 몇 개월만 망설여도 도망가는 자와 쫓는 자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창업자들이 기회를 포착했을 때 과감하게 베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타이밍을 놓치면 영영 기회를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이 결승선을 정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슈독(Shoe Dog)'을 인용합니다.
"달리기는 고통스럽고 위험한 운동입니다. 보상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확실하게 받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트랙이나 도로를 달릴 때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이런 노력을 충분히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오직 달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일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결승선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당신만이 결승선을 정할 수 있습니다."
'달리기'를 '창업'으로 바꿔서 읽어보라는 저자의 제안은 창업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습니다.
창업은 외부의 기준이 아닌, 오직 창업자 자신만이 정할 수 있는 여정입니다.
경기장에서 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솔직함과 용기였습니다.
실패와 좌절, 후회와 아쉬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는 점입니다.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한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의 조언도 깊이 새겨둘 만합니다:
"창업자는 능동적이고 주기적으로 폐업을 고민해야 하며, 이는 결코 비겁한 일이 아니다.
진정 강조하고 싶은 사항은, 실패나 사업을 멈추는 것은 능동적으로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도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모든 창업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저희에게도 이 책은 소중한 지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말처럼, "모든 명예는 실제로 경기장 안에서 뛰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 경기장 안에서 뛰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