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아파트 아파트

무소유의 행복

by 하얀 나비


우리가 딴 블루베리


아파트를 구입하고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는 한국 사람 에게만 골라서 렌트를 주었다.


좋은 사람도 많았고 의사소통도 잘 되어서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세입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21층 아파트였는데 세탁기에서 물이 넘쳐 1층까지 내려갔다는 말이었다.



황급히 관리실을 찾아 젊은 매니저를 만났더니 어제 사고가 있었어서 괜찮을 거라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아리송한 말을 얼버무렸다.



영어도 짧은 데다 무슨 영문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듯했다.


관리소장한테 전화하라고 했다.



세입자들은 세 명의 여학생 자매들이었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들은 저희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한참 있다 나와 보니 물이 넘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그냥 건성으로 흘려 들었다.


빨래를 너무 많이 넣었거나 뭐든 잘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사용한 것도 아니고 세탁기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하니 내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다.



매니저가 두 명이 있었는데 젊은 매니저는 순박하고 나이 든 매니저는 평소에도 위압적이고 화가 난 얼굴이어서 말을 걸기도 어려웠다.



다음 날 나이 든 매니저를 만나서 비용이 얼마나 나오겠냐고 물었더니 “2,500불 정도? 나도 확실히는 몰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 정도라면 아주 큰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입자가 못 내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세입자에게 가격을 알려 줬다.


그들도 억울하지만 알았다고,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만난 나이 든 매니저는


두 손바닥을 아래로 펼쳐 보이며 건들건들 성의 없이 말했다.


“너무 빌딩에 피해가 커서 수리 가격을 계산할 수도 없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파트 빌딩 모든 곳에 층마다 환풍기가 켜져 있고


작업복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몇십 명은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그 회사 차들이 가득 차 있었다.



형체조차도 보이지 않고 크기조차도 알 수 없는 적을 만났다.


일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세입자를 두고 있는 보험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세입자도 보험을 들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나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세입자와 집주인 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더니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세탁기 회사를 고소하는 게 나을 거다. 세입자를 상대로는 100% 네가 질 거다”.



구입한 지 7년이 넘은 세탁기인데 그게 말이 안 됐다.



이일을 그동안 지켜보며 속상해하는 나를 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저 변호사는 법정에 가면 땀만 뻘뻘 흘릴 거야”



그 말이 얼마나 웃겼는지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나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가족을 내가 잊고 있었구나.


뭐든지 내가 혼자 해결하려고만 했는데 아들의 말 한마디에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는 세탁기 회사를 상대로 싸울 힘도 없었다



괜히 아파트를 사는 바람에 이런 고통을 겪게 되는 것 같았다,


무소유라는 말이 떠올랐다.


남편의 원망이 이어졌다.



처음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세탁기 문제가 아닌 분명 무언가 내가 모르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젊은 매니저에게 다시 찾아가 지난번에 했던 말을 물었더니 당황하며 자기는 모른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집에서 실험을 해보니


아무리 일부러 세탁기에 물이 넘치게 하려고 해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빨래를 많이 넣던 세제를 많이 넣던 어떻게 해도 물이 일정 높이가 되면 빠져나가서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어 보였다.



세입자의 말을 잘 들어봤어야 했는데 내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아파트 맨 꼭대기 층부터 방문하여 자료를 모았다.


물사고의 날짜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중 한 동양계 부부가 고맙게도 달력에 표시를 해 놓은 것을 가져와 보여 줬다.



우리 세탁기에서 사고가 나기 바로 전날에 옥상에 물탱크가 터져서 난리가 났던 것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 달력을 사진 찍었다.


그렇다면 전날 이미 물탱크 사고로 빌딩은 손상이 되어있었고 두 번째 사고도 그것과 연관이 있거나 그런 것 같았다.

이제야 젊은 매니저의 괜찮을 거라던 이야기가 이해가 되었다.

나이 든 매니저가 첫날 말했던 2500불도 우리 쪽 손상만 계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린 적극적으로 변호사도 사고 회의에도 참석했다.


결국 주민회에서 피하려고 했던 빌딩 보험을 쓰고 자기 분담금 25,000불을 우리한테 내라고 계좌에 찍혀서 청구서가 왔다.



세입자도 변호사를 산 것 같았다.



세입자한테 100% 질 거라고 했으니 이건 우리가 내야 하는 돈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 주민회에서는 돈을 내라는 말도 없고 독촉장도 오지 않았다. 그냥 계좌에만 내야 하는 돈으로 찍혀 있었다.



우리가 아파트를 살 때 도와주셨던 한국인 변호사를 다른 일로 만났는데 고맙게도 내가 마음을 놓을 조언을 해주셨다.



“돈을 받을 사람이 받으려고 움직이지 않는데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고 했다.



그래도 깨끗이 해결되지 않은 그 일은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10년 뒤 한국인 변호사 말대로 우리 계정에 있던 25,000 불이 빌딩 손해로 처리가 되어 지워졌다.


그날은 웃으며 잠들었다.



이번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세입자의 말을 경청할 것 보험을 꼭들을 것 세입자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앞마당의 석탑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그 아파트를 사고 얼마 안 됐을 때 꿈을 꾸었는데 잊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 빌딩이 옆에 있는 아파트 건물 쪽으로 30도 정도로 기울어져 있는 꿈이었다.


아 이걸 어떻게 하면 똑바로 세울 수 있을지 꿈속의 내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였는지 모르겠는데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기울어진 발딩을 세울 수 있는지를 안타깝게 물었다.



대답대신 누군가 말했다.


“석탑을 사다가 마당에 놓으라”



꿈을 깨고도 어떻게 기울어진 아파트를 똑바로 세울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했다. 그런 기술이 있을까?



그리고 남편에게 석탑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파트가 기울어져 있는지를 확인했었고


그 뒤로 잊고 있었다.



그 석탑이 앞마당에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잘 해결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시려 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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