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선택의 기로에서

길거리 캐스팅

by 하얀 나비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서울로 올라온 뒤에 학교 생활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성적이 1등은 아니었지만 상위권에 있었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방에서 자고 일어나고 생활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한동안 작은엄마가 아들과 함께 집에 머물며 우리의 밥을 차려주셨다.


작은엄마가 아들과 집을 얻어 나가시고 새엄마의 언니가 아들과 우리 집에 머물며 밥을 해주셨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으셨을지도 모를 새엄마의 언니는 매일 김치 한 가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싸주셨다.


새엄마의 언니도 사정이 넉넉지 않았기에 그것도 사실 고마웠다.


어느 날은 아예 도시락도 없이 학교에 갔다.



어느 날 이모의 아들이 예비군 훈련이 취소되어서 도시락이 필요 없어졌다며 나에게 주셨다.


그 안에는 너무 맛있는 고기랑 말린 해물볶음 반찬이 들어있었다.



그 도시락을 보고 나니 내가 아직도 새엄마의 그늘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생모를 편들었다는 벌을 아직도 받는 것 같았다.



오빠가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서 나에게 버스표 살 돈을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겐 여윳돈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하셨다.


내가 실업계 학교를 지원해서다.


성적이 좋은데 너무 아깝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그냥 실업계를 가겠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안된다고 부모님을 꼭 모셔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평소에도 나에게 잘해주셨다.


선생님의 어떤 작업을 도와드린 후

선생님은 두어 명의 친구들과 나를 데리고

빵집에 가서 도넛을 사주시기도 했다.



몇 번이나 연락을 해서 새엄마가 바쁜 시골에서 힘들게 서울에 오셨다.



새엄마와 대화를 끝내고 나오시는 선생님의 눈가가 붉어 보였다.


“잘 알겠습니다



그 말로 모든 대화가 끝났다.


결국 선생님은 새엄마를 설득하지 못하셨다.



나는 그럴걸 이미 알고 있었다.


오빠가 대학을 가야 하는 게 부모님에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 했다.


마음 한구석엔 대학에 가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그건 내게 사치였다.


그렇게 나의 진로는 결정되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집하고 멀어서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어느 날 동대문에서 버스를 갈아타려고


걷는데 어떤 남자가 갑자기 길옆 가게에서 뛰쳐나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학생 혹시 어디 소속된 데가 있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고 “소속? 그게 뭐지?”



눈만 깜빡이고 있을 때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누구누구 감독이라고 쓰여있었다.


바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그는 내가 주인공 급으로 보인다며 카메라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길옆 다방에 들어가 설명을 해주셨다.


주스를 시켰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러 가지 영화나 연극 같은 가능성을 말해줬다.


그 당시 유명했던 남자 배우를 이름 대며 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길 나와서 길 건너 스튜디오 간판을 가리키며 생각해 보고 거기로 오라고 했다.




매일 관심 없이 지나쳤던 간판에는 TBC 방송이라고 쓰여있었고 무슨 스튜디오라고 쓰여있었다.



계약이 되면 돈도 먼저 바로 주고 앞으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제안이 설레면서 또 한편으론 두려웠다.



딱 한편만 찍어서 나중에 딸에게 엄마가 이랬었다고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작은엄마 가족이랑 밥을 먹을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오빠가 불같이 화를 내며



“그 딴일 하면 호적에서 아주 파버릴 거야" 하고 말했다.


나는 그저 말없이 밥을 입으로 밀어 넣었다.



언제부턴가 오빠가 나의 보호자 역할을 했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렇게 또 한 번 나의 길이 쉽게 결정되었다.



오빠는 삼 년 동안 대학시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합격자 발표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애간장이 타셨다.


오빠는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를 하였다.


새엄마와 아버지의 꿈도 사라진 듯 보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개월 앞두고 미도파 백화점 옆 빌딩에 있는 회사로 취직이 되었다.


처음엔 무역파트로 들어갔지만 얼마 후 임원의 비서 겸 경리일로 자리가 바뀌었다.



딱히 일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나는 사무실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떤 날은 하얀 교복을 입고 회사에 가기도 했었다.



내 앞에 부산지점과 연결된 전화 테이블이 있어서 가끔


남자 직원들이 그곳에 기대어 서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귀여운 막내 동생 같아서


마음을 열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친척 위주로 운영되는 회사가 맘에 안 들고 비전도 없어 보인다며



“때려치우고 장가나 갈까?”



하고 연세대학교를 나왔다는 잘생긴 직원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말동무를 하러 와서 한참씩 농담도하고 속에 있는 마음도 살짝 보여줬다.


그 회사는 명동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높은 층에 있었지만 월급은 초라했다.



교통비랑 밥값을 빼면 별로 남는 게 없었지만 회전문을 돌아 그 빌딩에 들어가 엘리베이터걸이 문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회전문을 돌아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새로운 일들이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마음에 맞는 친구 여덟 명이 있었다


우리는 가끔 함께 모여 매운 비빔냉면에 튀김을 시켜 먹고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대학에 가거나 직장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


친구 한 명이 배우 폴 뉴먼을 닮았다는 대학생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 친구 여덟 명 그쪽 친구 여덟 명이랑 미팅 한번 하면 어떨까?”



우리는 재밌겠다며 날짜까지 잡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약속한 날 갑자기


시골에 내려가야만 했다.



얼마 뒤 친구들을 다시 만나자 그들은 그날의 미팅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저 듣기만 했는데도 어떤 친구가 어땠는지 그려졌다.


모두가 처음 경험해 보는 미팅이었고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다행스럽게도 그쪽에서도 한 명이 빠져서 짝이 맞았다고 했다.



미팅을 주선했던 친구가 그때 참석하지 못했던 나와 그 친구의


만남을 다시 마련했다.


우린 모두 동갑내기였다



그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쑥스러웠고 처음 해보는 미팅이라 긴장되었다


그러나 몇 번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조용히 마음을 접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건


그가 그 학급의 반장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삼성생명의 임원이셨고 어머니는 미스코리아 보다도 더 아름다우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내 앞날이 보였다


우리의 복잡한 가족사와 가난, 그의 단정하고 풍요로운 집안 그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미안하지만 결혼할 사람이 따로 있다고 거짓으로 말하여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 후 몇 번 소개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만나 보기도 했지만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중에는 돌아가신 코리아나 호텔 사장도 있었다.

사랑하던 여자가 유학을 떠나면서 결별을

하는 바람에 힘들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국 나의 가족사도 나의 가난도 나의 상처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고 오직 나만 바라봐 준 4살 위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은 내게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는데


그게 내게도 찾아왔다.



작은 엄마 아들이 짊어졌던 연좌제는 형태만 다를 뿐 복잡한 가족사와 가난이란 이름으로 내 삶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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