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은 끝났다 (최종화)

눈가에 그려진 오선지

by 하얀 나비

다음 날 아침, 할슈타트의 안개는 어제보다 더 짙게 호수를 덮고 있었다. 지훈이 호텔 로비로 내려왔을 때, 수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는 누렇게 바랜 자수보 조각과 짧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훈 씨, 당신은 이제 '악보에 없는 선율'을 연주할 준비가 되었어요. 제가 묶어드린 손수건 매듭은 풀었지만, 당신 가슴속의 매듭은 잊지 마세요. 저는 다시 저만의 풍경을 찾아 떠납니다.”


수진은 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빈의 안개가 잠시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나타났던 것처럼.
지훈은 그녀가 남긴 자수보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 손등 위에는 할슈타트가 남긴 옅은 흉터가 훈장처럼 박혀 있었다. 완벽했던 그의 피아노를 치는 손에 생긴 최초의 '불완전한 아름다움'이었다.


밴쿠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훈은 몇 번이고 그 자수보를 꺼내 보았다. 30년의 세월 동안 익숙해졌던 아내 혜란의 얼굴이 구름 너머로 겹쳐 보였다.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수진과의 찰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자신에 대한 위로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뜨거운 리허설이었음을.


밴쿠버 공항 입구, 익숙한 남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서 있는 혜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지훈의 상처 난 손등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아무 말 없이 그의 가방을 건네받았다. 그녀는 떠날 때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다르게 느껴졌다.


"다녀왔어."


"응. 저녁은 된장찌개 끓여놨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건조한 대화였지만, 지훈은 그 대화 속에 숨겨진 30년의 견고한 화음(和音)을 들었다. 집에 돌아와 거실 피아노 앞에 앉은 지훈은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 수진과 함께 찾았던 그 미완성 곡의 첫마디를 눌렀다.


선율은 예전처럼 날카롭지 않았다. 조금은 투박하고, 조금은 엇박자가 나더라도 삶의 향기가 배어 나오는 '진짜 사람의 소리'였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혜란이 김이 서린 안경을 벗어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다가왔다.


지훈은 연주를 멈추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안경이 벗겨진 그녀의 눈가에는 30년 세월이 촘촘하게 새겨놓은 잔주름이 보였다.
수진의 화려한 자수보 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깊은, 지훈과 함께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인생의 무늬'였다.
지훈은 혜란의 얼굴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었다.


"여보, 당신 눈가의 이 주름... 꼭 오선지 같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은 사실 여기서 계속 흐르고 있었어."


떠나기 전 서툰 농담보다 훨씬 뜻이 깊은 울림이었다. 혜란은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낮은 온도가 기분 좋게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수진과 마치지 못했던 연주를 이젠 혜란과 마칠 준비가 되었다. 지훈은 혜란의 손을 잡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혜란아, 내 인생의 리허설은 이제 끝난 것 같아. 이제부턴 당신이랑, 이 서툰 본 공연을 진짜로 즐기며 살고 싶어."


지훈의 손가락이 다시 건반 위를 흘렀다. 수진이 남긴 자수보의 매듭처럼, 밴쿠버의 빗줄기처럼, 그리고 혜란의 웃음소리처럼... 악보에는 없는 진짜 인생의 선율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부족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피아니스트를 배우로 쓰는데 지출이 많았고 해외원정 촬영까지 하다 보니 베드신은 감히 엄두도 못 내는 예산 관계로 이렇게 끝내게 되었습니다.

아쉬워하는 분들이 혹시 계시다면 다음 소설에는 출연료가 착한 분들을 배우로 협작하여 찐한 소설을 만들어볼까 구상중 입니다. 혹시 출연을 원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예쁜 여자 배우가 필요합니다. 가마 발레파킹이나 장작패는일을 하시는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저는 제작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출연료는 촬영이 모두 끝난 후 수표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배달 사고는 저희가 책임지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어제 2화가 너무 재미없다고 작가님 중 한 분이 퇴장하시는 사태가 발생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제 잘못 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시고 꼭 돌아오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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