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의 바다에서 끓이는 봄

4조 면 동그라미가 몇 개?????

by 하얀 나비
어제 귀가길 풍경

● 고통의 부재가 곧 행복이다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이 반복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삶에 파도가 없다는 것은 지금 내가 평온의 바다 위에 있다는 뜻이니. 거창한 즐거움이 없어도, 쓰라린 고통이 없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행복이다.


친척의 지인이 4조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쥐고도 분노로 밤잠을 설친다는 전화 통화 중의 소식은, 파도 없는 내 바다가 얼마나 축복인지 일깨워준다.


돈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고통 없는 나의 무탈한 하루야말로 진정한 만수르의 삶이 아니겠는가.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밀가루에 아무리 많은 설탕을 쏟아부어도, 그것은 결국 달콤한 밀가루 반죽일 뿐 고기가 될 수는 없다.


본질을 가리려는 과한 꾸밈은 잠시 입맛을 속일 뿐이다. 나 자신이 아닌 것으로 살려 애쓰는 것은 설탕을 들이붓는 일과 같으니, 우리는 그저 생긴 대로의 담백한 맛을 긍정해야 한다.


핏줄이라는 본질이 배신이라는 설탕으로 뒤덮여 법정의 쓴맛으로 변해버린 그들의 비극을 보며, 나는 내 삶의 담백한 된장국 한 그릇에 감사한다.


기쁨과 슬픔의 총량 법칙


어제보다 더마신 커피의 각성이 내일의 에너지를 미리 빌려온 것이듯, 어제의 요란했던 즐거움은 오늘의 무거운 눈꺼풀로 돌아온다.


감정에도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다. 그러니 오늘의 고요함과 피로를 기꺼이 받아들이자. 이는 어제 내가 누린 기쁨에 대한 정직한 대가이다.


수조 원의 유산을 두고 벌이는 다툼 역시, 과거에 누린 과한 풍요에 대해 치러야 할 가혹한 이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립을 택한 마음에게


생명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가둔 코코의 고독을 본다. 홀로 사색하고 자신을 가두는 시간은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폭풍을 잠재우기 위한 숭고한 투쟁이다.


가족이라는 끈으로 이어진 우리는 가족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하지 않다면 오롯이 행복할 수가 없다.


자식에게 상실감을 느낀 4조를 손에쥔 팔십의 노모 또한 지금은 아무도 모르게 그 고독의 동굴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고 계신 것이리라.



비워내야 다다르는 자유


걱정의 무게에 짓눌리지 마라. 가족 구성원이 넷이 둘이 되고, 둘이 마침내 홀로 남겨지는 시간은 상실이 아니라 '정리'의 과정이다. 타인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 대한 집착마저 놓아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4조 원을 움켜쥐려는 손을 놓을 때 노모는 비로소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팔십 평생 꿈꾸던 진짜 자유를 만날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날의 위로


오늘 아침 쏟아지는 햇살 속에 찬란하게 춤추는 것은 어이없게도 어둠 속에 숨어있던 먼지들이다. 환한 빛이 모든 치부를 드러낼 때, 차라리 모든 것을 씻어내고 감춰주는 비 오는 날의 우울함이 더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집안 먼지 청소를 끝낸 오늘 내 주방에는 환한 햇살과 함께 구수한 냉이 냄새가 차오른다.


한국 마켓에서 사 온 냉이 한 봉지가 된장국이 되어 온 집안에 봄과 고향을 실어 나른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4조 원의 자산가가 아니어도, 이 향기 하나로 나는 이미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된다.


내겐 딴 세상 이야기 같은 소란스러운 분노는 그들의 몫으로 문밖에 두고, 나는 오늘 냉이 향기 가득한 평온의 바다에서 비로소 안온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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