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의 우당탕탕 여행기
싱가포르 물가는 비쌌다. 그래서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한번씩 주춤하게 되었다. 한국 식물가가 워낙 많이 올라 체감상 미친 금액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쌌다. 게다가 중국 음식점이 많았는데,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와 엄마인지라 음식점을 고르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입맛에 잘 맞지 않는 음식들로 몇번 식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음식이 생각났다.
그렇게 저녁 시간이 되었다. 다리가 아프던 찰나, Jooz라는 오렌지 주스 자판기를 발견했다. 잠시 쉴 겸 주스 한잔씩 먹자며 근처에 앉아 마시다가 눈에 띈 음식점이 있었다. [진짜 치킨]이라는 간판이 있었고, 한국말로 픽업이 쓰여있는 걸 보니 한국 음식점인 듯 했다. 매콤한 김치찌개를 너무나 먹고 싶었다. 메뉴판을 보니 김치찌개는 없었지만, 매콤한 국물요리 부대찌개가 있었다. 또 볶음밥과 치킨이 있어서 3개 메뉴를 시키면 다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주문을 완료하고 기다렸다.
조금 독특한 비주얼이었지만, 김치가 데코되어 있었고 빨간 국물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의심하지는 않았다. 한국과 약간 다른 맛이라 해도 해외에서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부대찌개를 한 입 먹는 순간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게 대체 무슨 맛이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을 뿐.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흉내낸 음식이었다. 김치, 소세지, 파, 라면 등등의 재료가 들어간 음식이었지만 그냥 새로운 음식이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마음을 품고 치킨을 한입 먹었는데, 감칠맛은 전혀 없는 짠맛이 강한 치킨이었다. 너무 짜서 한입만 먹고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었는데, 이것 역시 출처를 알 수 없는 맛이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변에 식사하는 사람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 사람들은 정말 맛있어서 먹고 있는걸까? 의문이 들었다. 혹시라도 그들에게 이 음식이 첫 한국 음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진짜 한국의 맛이라고 여긴다면, 이제 다시는 한국 음식을 찾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이 사장님은 실제로 진짜 한국 음식을 맛본 사람이 맞는건가? 만일 맞다면 '진짜 치킨'이라는 이름을 걸고 이런 음식을 팔 생각은 못 했을거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혼자 여행하며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때였는데, 대화를 몇번 나눈 독일인 친구가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기에 근처에 평이 괜찮은 곳에 데려왔다. 2017년이었으니, 한국 음식이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였다. 음식점에 다다랐을 때 겉보기에도 깔끔하지 않은 음식점이라서 약간 불안하긴 했으나, 후기 평점이 나쁘지 않았으니 음식은 괜찮겠거니 생각했다. 친구가 매운 걸 잘 못 먹는다고 하여 맵지 않은 간장떡볶이와 다른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음식이 정말 맛없었다.
떡은 흐물흐물했고, 왜인지 양념이 제대로 배지 않아서 소스와 떡이 따로 놀았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주문한 다른 음식도 맛이 없었다. 원래 한국 음식이 이런 맛이 아닌데 여기 음식 맛이 아쉽다고 친구에게 거듭 이야기 했으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걸 먹느니, 일본 음식 스시를 먹는 게 낫겠어." 친구는 그 이후로 한국 음식을 시도해 보았을까?
물론 한국에도 해외 음식이 많지만, 제대로 그 맛이 구현된 곳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일부는 한국화되어 진짜 현지인 입맛에는 잘 맞지 않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막상 이렇게 해외에서 맛없는 한국 음식점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한국을 미식의 나라라고 자부하는 나인데, 이렇게 맛없는 음식이 외국에서 당당히 '진짜 한국 음식'으로 판매되고 있다니 속상하다. 정통을 맛보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가짜 음식을 먹고 맛없다고 말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바라건대 맛있는 한국 음식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중국이 한국의 김치를 중국의 파오차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함부로 빼앗으려는 등의 행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한국의 고유함을 사랑한다. 한국의 새로운 문화도 좋지만, 한국의 전통이 자꾸만 희미해지는 지금이 나는 어쩐지 조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