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고 상처를 보듬다
어릴적부터 나는 사람을 좋아했다. 거짐 댕댕이 수준으로 사람만 보면 실실거리며 다가갔다.
아무나 사탕만 주면 그저 좋다고 그런 나에게 학교라는 곳은 또다른 삶의 체험 현장이었다. 온갖 잡다한 성격의 아이들의 쏟아내는 많은 언어와 행동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해서 다가가는 만큼 상처가 컸다. 자아중심성이 강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나는 뭣도 모르는 촌년에 그지없었다. 다가가고 상처받고 다가가고 상처받고 나는 왜그럴까? 왜 이처럼 좋았다 싫었다를 반복하고 있는거지?
그렇게 왕따를 당했고 아이들을 만나기 두려워졌다. 나는 가해자를 탓하지 않는다. 그렇게 미련한 나를 쥐어 박고 싶은 심정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집요해지는 아이들을 향해 엎어치기로 반격을 한 뒤로는 아이들의 따돌림은 멈춘 상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내가 감당해야 했고 말을 해도 딱히 해결이 안되성 싶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맞이했다.
어느 날, 나를 괴롭혔던 아이에게 긴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동안의 괴롭힘에 대한 사과였다.
복잡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사과에 대한 복수심과,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을 때 느껴야 할 죄책감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당시 나는 학교도, 집도 전부 때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유 없는 반항심, 6년간 집 안팎으로 겪어내야 했던
폭압적인 어른들과 자기 멋대로인 아이들로부터 받은 공포와 두려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겨운 시간들이었다.
달랑 두 장의 편지로 그 모든 시간이 무마되기엔 내 상처는 너무 깊었다.
그런데 이 사정을 알지 못하는 주변 친구들이 나를 압박했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나를 향한 실망의 눈초리.
마치 내가 사과하는 친구를 볼모로 괴롭히는 '가해자의 자리'로
역전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아직 나는 그 사과를 수용할 마음의 시도조차 못했는데 말이다.
유야무야 모든게 사라졌다. 끝이 찜찜한 채로...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의 사과
'미안하구나! 그동안 내가 너를 많이 때렸다.' 그렇게 맘대로의 사과
늘 복수해야지를 꿈처럼 심었어야 할 나의 유년시절
두사람의 기습 사과에 대한 나의 반응
나는 그날, 사과를 받아 줄 만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그리고 그 많은 시간을 아무 꺼리낌 없이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이 내민 손을 맞잡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착한 사람이 되려면 사과를 받아 줘야 한다"고
막상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그 두 사건은 묻혔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사과를 받아주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는 것
내 상처의 깊이를 무시한 채 타인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나의 고통을 덮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
그것이 바로 상처 입은 내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선택이었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낸 사람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