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안개의 침묵

말하지 않을게요

by 꾸이꾸이

밤새 관악산 봉우리를 안개가 점령했다.

구름이 놀던 하늘은 잿빛으로 얼어붙었고, 창 너머 보이는 것들은 온통 희뿌옇다.


공습경보 사이렌처럼 울려 퍼지는 알람시계의 신경질적 발작.

6시 45분. 한 아이가 찌푸린 얼굴로 문을 열고 나온다. 시끄러운 그 놈을 한 대 내리친다.

일순간 멈춘 발작은 5분 후 다시 재발.

다른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한 숨을 푸욱 쉬며 단말마의 발작을 끊어놓는다.

24시간 후 다시 울어 재낄 그놈은 일단 침묵.

잠을 자기나 한 걸까. 꿈 속을 들락거린 기억뿐.

차가운 냉수 한잔이 목을 타고 내려간다.

지하 3층. 아직도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차를 깨운다.

아침 일곱 시가 다 되었다구. 일어나. 가자.

두 아이가 무거운 책가방을 짊어지고 무표정하게 내려온다.

엉덩이가 무거워진 차는 지상으로 힘겨이 기어 나온다.


시월 안개가 살갗에 차갑다.

침묵.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피곤해서, 예민해서, 졸려서. 침묵 속에 너무 많은 외침이 들린다. 함부로 터지는 언어는 가족사의 대참사가 되는 경험을 기억한다. 묻지 못한 말들, 타이르지 못해 답답한 심정, 힘내라는 격려 모두 조용히 내리누른다.


두 아이는 한달 후 같은 날, 수능을 볼 것이고, 사거리를 가득 메운 저 차들은 무엇을 향해 가는 것일까. 공부하러, 돈 벌러, 모닝 미라클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시월 안개를 아랑곳하지 않는다.

안개 속에 숨어버린 태양은 아무 빛을 내지 못한다. 저기 어디쯤 아침 해가 떠 있을 텐데. 동쪽으로 뻗어나간 도로를 질주한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사람들이 땅 속으로 사라져간다. 그들이 밖으로 나올 때쯤 안개는 걷혀있을까. 터널 속을 지난다. 급하게 끼어드는 차에게도 침묵하겠다.

가로수 나무는 푸르름을 다했다. 색채 전환. 노르스름한 저 황금 빛깔이 끝내는 초록을 이길 것이다. 공중낙하를 준비하는 나뭇잎들. 가장 아름다운 비행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빛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재종학원으로 꺾어 들어가는 골목은 밤사이의 유흥으로 숙취와 잔여물이 쌓여있다. 두 아이가 내린다. 뒷모습이 쓸쓸하여 울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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