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다정함을 찾아서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by 꾸이꾸이

“지금 주차장에 갇혀있는데 좀 도와주세요!”


아무 집이나 열 군데는 넘게 호출 버튼을 눌렀다. 연속되는 거절, 무응답, 퉁명스러움, 세상 귀찮다는 식의 반응에 좌절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기다려보세요, 됐나요?”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그 여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얼른 돌려보았다. 하늘을 향해 만세를 부르듯 그 뻣뻣하던 차단기가 90도 각도를 그리며 올라갔다. “감사합니다~” 해방이다. 지옥 탈출이 이런 걸까. 20여 분을 어느 아파트 주차장에 갇혀있다가 드디어 구조되는 순간이었다. 약속 장소에 시간이 좀 이른 듯하여 어느 작은 아파트 그늘진 옹벽 아래 차를 세웠다. 짧은 정차 후 이제 가자는 남편의 말에 다시 차를 움직였다. 회차 공간이 넓지 않아 차단기가 열려있는 지상 주차장으로 각도를 틀어 후진해 들어갔다. 그 순간 열려있던 차단기가 갑자기 수직으로 털썩 내려오더니 ‘너희 못 나갈걸’하며 가로막았다.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어쩐다. 한때 경비실로 쓰였을 것 같은 공간은 폐자재로 가득했고 지나가는 입주민은 한 명도 없이 고요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약속 시간은 넘어가고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은 채팅창에서 왜 안 오냐고 묻기 시작했다.

주차해 둔 어느 입주민 차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죄지은 사람처럼 두서없이 설명하고 어찌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매우 느리고 여유 있는 말투는 완전 다급하고 답답한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아파트 경비는 원래 근무하지 않으며 본인은 외출 중이고 다른 입주민에게 부탁해 보라 덧붙였다. 망설이다 실례인 줄 알면서 무작위로 아무 집이나 호출했다. 다급할 이유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무반응 혹은 ‘나 지금 바빠요.’, 어느 집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뜬금없이 현관문을 대차게 열어주었다. 그걸 원하는 게 아닌데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기다려보세요, 됐나요?” 자유다. 팔월 삼복더위에 밀려오는 짜증과 약간의 억울함이 위안받았다.

이십여 분 정도의 주차장 지옥에서 이십 시간을 보낸 듯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 순간 그들에게 나의 존재란 무엇이었을까. 정오의 낮잠을 깨우는 짜증 유발자였고, 관심 둘 필요 없는 지나가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고, 도와주나 안 도와주나 인생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무가치함이었을 것이다. 관계없는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란 그런 식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저 도움만이 절실한 어느 대본 속 `지나가는 사람 1’이었을 뿐이었다. 허둥지둥, 당황함, 답답함에 응답해 준 그 여인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그 날 한낮의 시간이 그러했듯,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의 장난에 걸려들어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극적인 생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도 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아가지만, 문밖을 나감과 동시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수많은 타인의 `지나가는 사람 1’이 되고 만다. 그들은 내게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조난객을 구출하는 구조대원이 되기도 하며, 어느 날은 신의 친절한 도구가 되어 피로한 영혼에 치유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