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저는 그 단어가 싫었어요. 불행에 허덕이는 사람이 억지로 의미 부여하며 행복한 척, 자기 기만하는 것 같았거든요. 말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길가에 핀 들꽃을 봤다고 갑자기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그건 그냥 불행한 삶 속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무슨 행동을 하든 집요하게 달라붙는 ‘소확행’이란 단어는 제게 피로 그 자체였어요. 그래서인지 행복에 대한 제 생각은 단순하지만 확고했습니다.
행복 네 이놈, 절대 소소하지 말 것.
이런 저의 행복 철학은 생각보다 사소한 계기로 변했습니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구성환 님의 일상을 시청한 후였어요. 그가 보여 준 모습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집 청소하고, 운동하고, 밥 먹고, 강아지랑 산책 후엔 맛있는 안주와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었거든요. 방송을 위해 어느 정도 꾸며진 모습인 걸 감안하더라도 그는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 모습이 부러우면서도 내심 궁금했습니다.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나는 어째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는 마무리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말이 제가 그동안 간과해 오던 사실 하나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을 감지하는 센서의 민감도가 다르다는 사실을요.
제가 가진 행복 센서는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웬만큼 커다란 자극이 아닌 이상 반응하지 않는 거였어요. ‘아, 내 행복 센서를 조절해야 하는 거구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저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일상의 행복을 찾아다녔습니다. 늘 수평선을 그리던 행복 그래프에서 작게나마 튀어 오르는 지점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저는 강아지가 같이 놀자며 공을 물고 올 때 입꼬리가 올라가요. 신나서 앞발을 통통거리며 뛰어오는 모습이 너무 귀엽거든요. 가르치는 학생과 농담을 주고받을 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콧구멍을 벌렁거립니다. 체통을 지키기 위해 쉽게 웃어줄 순 없어요.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온몸이 사르르 녹는 것을 느낄 수가 있고요. 화병에 꽂아둔 노란 튤립 봉오리가 하룻밤 새 꽃을 피우면 손뼉 칩니다. 무엇보다 밥이 맛있으면 콧노래를 흥얼거려요. 진짜 맛있으면 어깨춤도 추고요. 심지어 시원한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먹을 때는 개다리춤도 춥니다. 해상도와 민감도를 높인 센서로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제 일상은 불행한 순간보다는 다행인 순간으로, 다행인 순간보단 행복한 순간으로 훨씬 많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행복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충분함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거예요. 바꿔 말하면 개인이 행복의 기준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뜻도 됩니다. 기준을 낮추란 말은 아니에요. 커다란 행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동안 작은 행복도 만끽하셨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저 질문에 선뜻 대답 못 하겠다면 행복 센서 민감도를 올리는 일에 집중해 보시면 어떨까요. 향상된 행복 센서를 가지고 일상을 감지하는 범위를 넓히다 보면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이 늘어날 거예요. 어쩌다 문득 올려다본 오늘의 하늘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순간 분명 ‘소확행’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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