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서관 답사기

by 이현


이거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나는 사서에게 어쩌면 휴면상태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오래된 도서관 회원증을 내밀며 물었다. 사서는 내 회원증을 요리조리 살펴보고 바코드를 찍어보더니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다행이다….” 나는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오랜만에 방문한 도서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동안 나는 책과 평행선을 그리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엔 수행평가용 필독 도서가 아니면, 사회에선 업무에 필요한 것이 아니면, 독서란 내겐 전무후무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바쁘게 살던 나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수많은 물음표가 찾아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나는 반년의 고민 끝에 과감히 하던 일을 중단하고, 느닷없이 찾아온 내 삶의 물음표에 대해 진지하게 답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끝없는 막막함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생 데면데면했던 책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슬기로운 백수 생활의 하루가 독서로 시작되면서 자연스레 도서관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잠들뻔한 회원증을 깨워 도서관을 들락거리던 어느 날, 우연히 한쪽 구석에 비치된 팸플릿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목요일 저녁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흥미로운 주제로 꾸며진 강좌들이 가득했다. 게다가 공짜라니! 나는 인문학 강좌를 신청하기 위해 도서관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그곳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도 공지되어 있었다. 그렇게 매일 문화 프로그램을 살펴보던 중 나는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로 ‘태몽 그림책 만들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휴직 전 과학 강사로 일하면서 막연히 과학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내 태몽은 엄마가 시장에서 커다랗고 길쭉한 오이를 사 오는 것이었고, 나는 첫 시간에 선생님께 내 태몽을 이용해 식물의 광합성과 관련된 과학 동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캐릭터와 배경을 구상하고, 내용 전개 방식에 관해 공부하고, 글과 그림 배치 등을 고민하면서 나만의 과학 동화를 만들어 나갔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직업이 강사이다 보니, 주요 내용을 핵심 요약해서 전달하는 버릇이 그림책에도 여실히 드러났는데 이것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그림책에서는 지식을 직접 말하는 방식보다 그림과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데 그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을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분께서 그럼 방귀를 통해서 표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나는 그분께 생명의 은인이라며 다소 호들갑스러운 감사 인사를 전하고, 그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기존의 스토리를 뒤집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림 실력도 글 실력도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하루에 7~8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원고를 수정하며 매력적인 이 작업에 푹 빠져 최선을 다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어느덧 8개월이 지나고 도서관에서 작은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그 공간에서는 모두 나를 작가님이라 불러 주었다. 쥐구멍이 있다면 얼굴만이라도 숨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을 마주한다는 것은 오묘한 일이었다. 기쁜 데 슬프기도 하고,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오고,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양극단의 감정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감정의 널뛰기가 가라앉고 왜 그런 감정들이 휘몰아쳤는지 찬찬히 헤아려보니, 어렴풋이 성취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행복한 성취감은 매우 자극적이고도 중독적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어 그 감정을 느끼고 싶었고, 또 느끼고 싶었다.

‘태몽 그림책 만들기’뿐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들 또한 없었더라면 꿈에 부푼 지금의 나를 찾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인문학 강좌를 시작으로 주부 독서 모임, 문학 살롱, 작가들의 북 콘서트, 캘리그래피 수업, 감독이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 영화로 배우는 영어 등 시간만 맞으면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과로하는 백수가 되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보기도 하고, 경험의 폭도 넓히면서 더 좋은 삶의 방향을 찾았다. 지금은 현실적인 문제로 복직했지만, 아직도 나는 날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본다. 최근에는 스피치 수업을 통해 모의 북 콘서트도 진행해보고 여행자의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작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주부 독서 모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글쓰기 모임도 운영 중이다.


온 우주가, 아니 도서관과 책이 문득 내 삶에 던져진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돕고 있다. 도서관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내겐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 이 좋은 도서관 이용을 나만 알고 싶은 욕심과 널리 알려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꿈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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