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기억에 대해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우연히 ‘인생 첫 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머릿속 깊은 서랍에 넣어둔 기억 하나를 꺼내오며 답했다. 내 첫 기억은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었다고.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막 걷기 시작한 무렵이었으니 아마 두세 살 정도였을 것이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리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알루미늄 새시 문이 열린다. 열린 문틈으로 환한 빛이 쏟아지며 눈앞이 밝아졌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나는 문 앞에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냅다 뛰어간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맞닥뜨린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맙소사! 인생 첫 기억이 장애물, 당황스러움, 좌절이라니. 아무리 어렸을 때라도 시작부터 제대로 꼬였다는 느낌을 받았었는지, 나를 막아선 기억 속 콘크리트 벽의 차갑고 거친 감촉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인천의 한 공장단지 근처 다세대 주택이다. 그곳엔 빨간 벽돌과 대비되는 파란색 대문이 있었다. 대문을 지나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더 꺾으면 길게 뻗은 통로를 따라 작은 문들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문들 너머에 있는 하나의 작은 공간에서 성장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우리 가족은 그 주택에서 조금 떨어진 아랫동네 빌라로 이사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등하교를 위해 그 주택 앞을 지나다녀야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어릴 적 나를 막아섰던 콘크리트 벽에 대해 생각했다. 꽤 오랫동안 그 벽의 높이가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린 나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살지 않는 그곳에 불쑥 발을 들였다가 만약 누군가와 마주친다면, 나에게 무슨 일로 온 거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적절한 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며 애써 그곳을 외면해야 했다.
그렇게 삼사 년 정도 지났을까? 유난히 키가 훌쩍 컸던 어느 해 여름, 하교 후 집으로 향하던 나는 충동적으로 그 주택의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기승을 부리던 한낮의 더위가 이성의 끈을 끊었는지 아니면 그동안 쌓아온 호기심이 느닷없이 용기에 불을 지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은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파란 대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눈앞에 길게 뻗은 통로와 일렬로 배열된 문들이 보였다. 하지만 콘크리트 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내친김에 어릴 적 기억을 재현해 보기로 했다. 나는 한 번 더 주위를 살핀 후, 맞은편 통로 끝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서서 기억을 더듬으며 몸을 움직였다. ‘문을 나온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뛰어야지.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나를 막아선 커다란 콘크리트 벽의 정체를. 그것은 좁은 통로의 시작점에 있는 유달리 높은 턱이었다. 한 칸의 계단보다는 조금 더 높은 턱. 아이에겐 다소 높지만, 어른은 큰 무리 없이 지나다닐 수 있는 턱. 쇠창살 모양의 파란 대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올라야 할 턱. 아기 때는 키가 작았으니까 이 턱이 높게 느껴졌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거라니. 나를 가로막고 생애 첫 좌절을 안겨준 장애물의 높이가 겨우 이거라니. 나는 그 턱을 가볍게 성큼 뛰어오른 뒤, 지체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더 이상 콘크리트 벽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 기억을 앞선 질문을 받을 때까지 아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30대에 들어서자 느닷없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찾아왔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살다 보니 어쩌다가’ 하게 된 일이었고, 내가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 든 것이다. 게다가 밀려드는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일상 덕분에 현대인의 고질병 ‘번 아웃’이 슬그머니 나에게도 찾아왔다. 아무런 의욕도, 재미도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반년 정도를 고민한 끝에 나는 하던 일을 중단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물음표가 되어버린 내 인생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선택한 방법은 독서였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에는 필독 도서 외에 따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더더욱 책과 멀어졌다. 하지만 책 속에 답이 있다는 오래된 고정관념이 나를 독서의 세계로 이끌었다. 나는 일 년 동안 무작정 책을 읽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책을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다. 그 마음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나는 내 생각들을 하나둘씩 글로 정리했다. 그렇게 기록이 쌓여갈수록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글 쓰는 일’ 임이 명확해졌다. 무얼 쓸지 고민하고, 문장을 디자인해 나가는 일이 재밌었다. 그렇게 짧은 분량이라도 한 편의 글을 완성하면 성취감이 몰려왔다. 나는 성취감이 주는 도파민에 취해 글 쓰는 일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흥미와는 별개로 글을 쓰는 일은 전혀 만만치 않았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적확한 단어를 선택하여 논리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쓰다 멈추기를 반복. 이렇게 못할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 내 글을 보며 한숨 쉬는 일도 잦아졌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역시 작가는 신이 주신 재능인가?’, ‘하고 싶은 일 말고 잘하는 일을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표현과 읽는 사람이 빵 터질 수 있는 웃기는 문장, 담백하지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좋아하지만 어려운 일. 무엇보다 당장 코앞에 닥친 현실 문제는 해결해 주지 않는 일. 그렇게 번뇌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는 인생 첫 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문득 머릿속을 울리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성장’.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쉽게 넘어 다닐 수 있는 턱으로 바뀐 이유. 그렇다. 내가 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생애 첫 기억과 지금의 상황에 대해 곱씹어 보았다.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하고 습작을 시작한 것이 일 년이 안 됐다. 모든 일에는 숙련 기간이 있고, 작가의 꿈을 이루기엔 일 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이 일을 계속할지 말지 지금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는 결론을 내리자,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글만 쓰며 살아가려면 아직 성장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갔다. 소중했던 휴식기의 끝은 내가 생각했던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다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글 쓰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일하는 시간을 줄였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면 좀 힘들겠지만, 현실에 치여 꿈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희망이 있었다. 아직은 내가 너무 작아 현실과 꿈의 괴리라는 커다란 콘크리트 벽을 마주하고 있지만, 조금씩 성장하다 보면 그 벽도 별것 아닌 계단이 된다는 것을 생애 첫 기억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는 일이 아무렇지 않았다. 왜냐면 현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고 이 일을 조금씩 하다 보면 나는 또 성장할 테니까. 그리고 그 거대한 콘크리트 벽은 언젠가 가볍게 뛰어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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