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전집 44 [데미안]
우리는 단지 다른 영역에 속해있을 뿐
221230 감상문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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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헤르만 헤세 (더스토리)
얼마 전에 데미안을 읽었다. 아주 유명한 책이다. 세계고전문학하면 꼭 거론되는 책이며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책일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이번에 두번째로 읽었다.
첫번째로 읽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때는 말그대로 책을 "읽기만" 했다. 솔직히 내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했었지만 그저 유명한 책을 읽었다는 현학적인 뽕에 찼던 것 같다... 뭐 그래도 어떤가. 그래도 그 때 대충이라도 읽은 덕에 이번에 책을 읽을 때는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책의 줄거리 자체는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생각과 관점으로 요약한 줄거리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의 의견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
소설 데미안은 선한 사람의 영역에서 태어난 싱클레어가 악한 사람의 영역을 알고 거기에 발을 들이고 괴로워하다가 '데미안'을 만나 악한 세계 역시도 세계의 일부임을 알고, 그 이후에는 두 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며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는 사춘기 소년의 성장 소설이다.
약 250페이지의 글을 압축하고 또 압축한다면 이렇게 몇줄로 요약이 될 것이다. 데미안을 읽지 않더라도 어디가서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도 책을 읽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내용을 아는 것과 생각하면서 직접 책을 읽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처음 데미안을 읽었던 대학교 1학년 때도 나는 데미안의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할 수는 있었지만 이를 나의 삶과 결부시켜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늘 포스팅에는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라 이번에 책을 읽으며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거나 유독 눈길이 갔던 구절들을 블로그에 정리하면서 내가 왜 그 구절에 눈길이 갔는지, 내가 그 구절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를 한번 적어보도록 하겠다.
이미 책에 나와있는 내용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은 하지 않으니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가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이 포스팅이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1.
사람은 누구 앞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 그런데도 누군가가 두렵다는 건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이야.
이 구절은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하는 어린 싱클레어를 꿰뚫어 본 데미안의 한 마디이다. 싱클레어가 어째서 협박을 당했는 지는 굳이 적지 않겠다. 이 내용은 굉장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나는 데미안의 이 말이 마음에 가장 와닿았다. 그건 나 역시도 나를 다스리는 힘을 타인에게 맡긴 적이 있기 때문이랴. 어린 시절 특정 누군가를 두려워했던 경험은 더욱 더 나를 잠식했다. 그 탓에 나중에는 사람 자체를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시기가 아주 길어지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랬었다. 그런 나였기에 데미안의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의식하고 있다. 오히려 사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민폐이며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의 누군가를 두려워했던 과거를 제대로 마주보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특정 사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은 이 사실을 어릴 때 깨달은 데미안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 뿐이다.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주도권을 타인에게 넘겨주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우리가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잘해내는 누군가가 들어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거야.
이 말 역시 데미안이 했던 말이다. 데미안은 어쩜 이렇게 인간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이 말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있는 잠재력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대한 잠재력 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무의식이라는 것 역시도 있지 않은가?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어떤 사건에 대한 답을 알고있다는 것. 그 사실도 함께 말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한번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지 알 수 없을 때. 하지만 그럴 때 찬찬히 마음 깊은 곳, 우리가 인식하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속의 심연인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 알게된다는 사실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니까. 특히 그 무의식에서 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무의식에 이미 답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많은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찬찬히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다르니까. 그러니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모두가 데미안하면 떠올릴 가장 유명한 구절이다. 나 역시도 책을 읽기 전부터 이 구절은 알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새는 인간을 말한다. 세계란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 그러니 싱클레어의 경우에는 선함의 세계를 말한다. 아브락사스는 선함과 악함을 모두 받아들이는 신이다. 그러니 이 말은 싱클레어가 세상은 선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 것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려고 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세계는 선함과 악함이 혼돈된 곳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선함만 인정하고 악함은 무시하고 덮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함과 악함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이것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했던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구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어느 면에서는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느 면에서는 동의를 할 수 없다.
우선 나는 인간은 끊임없이 선함을 추구해야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선한 마음가짐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악함을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선한 세계에도 악함은 있고, 선한 사람에게도 악함은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억누르기만 하고 무시한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선함이 있으면 악함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 여기까지는 데미안과 나의 생각이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데미안은 선함과 악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이 사실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악함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한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은 그저 악함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악함의 이유를 알아내고,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선하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악한 것을 그대로 놔두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양면성을 받아들이되,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악함을 이해하고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저 어린 사람의 현실성이 없는 발언으로 치부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인간은 자신의 안에 악함이 있어도, 그것을 인지하고 선한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
당신은 번번이 자기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소.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불을 들여다보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시오. 그래서 어떤 예감이 당신을 찾아들고 당신의 영혼 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것들에 당신의 몸을 맡기시오.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지를, 그들의 마음에 드는 지를 맨 먼저 묻지 마시오! 그런 물음이 사람을 망치는거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안전하게 걸으면서 화석이 되고 마는거요.
사춘기에는 다들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내가 남들과는 다르고 이 세상에서 붕 떠있다고, 나는 좀 별난 사람이라는 생각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 달라지기 싫다는 생각에 주위에 맞춰가려고 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질문 없이 이미 정해진 길만을 따르는 사람은 생각을 잃는다.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 볼 기회를 잃는다. 그저 타인이 만들어놓은 잣대를 그대로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런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나 역시도 내가 스스로 현상을 관찰하고 나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다. 남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남의 평가를 신경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찔린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화석과 같은 인간이 되고 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성향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고쳐질 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해두기라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반성의 글을 써 본다.
5.
당신이 죽이고 싶은 어떤 사람은 실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숨어있는 그 무언가를 미워하는 것이오. 우리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는 법이니까 말이오!
나는 이 말에도 공감이 갔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에게 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유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한명쯤은 꼭 있다. 그러나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내가 이유없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사실은 이유가 있다. 내가 그 이유를 애써 무시할 뿐. 우리가 이유없이 싫어하는 사람은 나의 단점, 나의 치부로 여기는 것들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내가 미워하는 나의 모습이 타인에게서 보인다면 우리는 그 타인을 미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건 타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보이는 나의 못난 모습을 미워하는 것이라는거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러한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렇게 정제된 언어로 그 이유를 직접 들으니 좀 더 명쾌해진 느낌이다.
6.
이 세계에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각성된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단 한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부에서 견고해져서 그 길이 어디에 닿아있건 간에 조심스레 자신의 길을 더듬어 가는 일.
사실 초반과 중반부까지만 해도 데미안은 현학적인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남들 보다 자신이 조금 더 뛰어나고 생각이 깊기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이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시혜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책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이후의 내용을 보면 그런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싱클레어는 사춘기를 겪으며 자신과 소수만이 세상의 진정한 진실을 깨달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무지한 존재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은 각성된 인간이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보통 이러한 것을 깨달은 인간들은 남들을 낮잡아보며 자신이 그들을 계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달랐다. 자신이 각성된 인간이라고 해서 이 세계를 바꾸려고 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싱클레어는 깨닫게 된다. 각성된 인간이라고 해서 타인에게 간섭할 이유나 의무는 없다. 그저 자신의 길을 더 명확히 하고 자신의 내부를 단단히 하기 위하여 인간은 각성한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준다. 인간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고, 각성한 인간이 결코 문화적으로나 인류 전체에서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7.
우리는 단지 다른 영역에 속했을 뿐이었고 , 다수의 사람들과 어떤 경계선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방식의 차이에 따라 분리되었을 뿐이다.
앞의 다른 구절들도 참 좋았지만 나는 이 구절이야 말로 데미안을 이야기해주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선과 악의 세계에서 방황을 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과 자신 사이에 차등을 두던 싱클레어가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은 이 사회에서 결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회의 일원이지만 다른 이들과 관점, 사고방식이 다를 뿐인 평범한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세상은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인간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면서 싱클레어는 비로소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이 사실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단지 현상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다. 다르다고 해서 서로를 배척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책이라서 좋았다. 생각을 많이하고, 계몽한 인간이라고 해서 결코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는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깨어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를 우등한 존재와 열등한 존재로 분리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들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표현하는 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나저나 헤르만 헤세가 이 책을 낼 때 자신의 이름 없이도 잘 팔릴까 궁금해서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냈다는 일화가 너무 웃긴 것 같다. 이런 대문호도 자신의 글에 대한 자신이 없다니... 결국엔 책이 큰 인기를 끌고 헤르만 헤세가 자기 작품임을 밝혔다는 것 역시도 웃기다. 헤르만 헤세의 다른 글도 한 번 읽어봐야할 것 같다.
옛날 감상글 백업 겸~~ 세문전 뿌수기 해야지
민음사 판본으로 안봤다고 해도 편하게 민음사로 표기하는 이유.. 세문전 몇개나 읽었는지 기록하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