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엄마가 같이 따라가서 봐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가보세요?"
애들 유학 보냈다고 했다가 이런 말 진짜 많이 들었다. 말만 들은 게 아니라 그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도 종종 봤다. 아니 보임을 당했다. 가장 세게 당한 건 가족한테서라는 아이러니. 초등학생 아이가 장기간 유학 간 거라면 따라갔을지도 모르겠다(애들 초등학생일 때 계산기 두드려보고 포기한 일이지만). 어쨌든 뭐 정신적으로는 아직 당연히 미성숙하겠지만 몸은 클 만큼 큰 중학생 시절에 애들을 보낸 거라 일단 1차원적인 걱정은 별로 없었다. 먹을 줄 알고, 씻을 줄 알고, 잘 줄 알고(?), 시간 맞춰 뭘 해야 할지는 알 테니까.
중3 올라가면서 유학 간 아들은 마음이 좀 여린 편이라 그게 좀 걱정이었다(게다가 12월생). 초반엔 고생을 좀 했다. 유학 가자마자 학기마다 돌아가며 12~18인실 기숙사를 사용했는데 그 안에서 별별일을 다 겪었다. 방에서 한 두 명 빼고는 전부 현지인 아이들. 한창 혈기왕성한 중학생 남자애들이 얼마나 심심할까. 어떤 애는 노래 부르고 어떤 애는 뛰고 어떤 애들은 시비 걸고 싸우고. 불이 꺼진 틈을 타서 아들 침대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붓고 도망간 애도 있고 샤워하는데 샤워커튼 걷고 도망가는 일은 다반사. 다행인 건 현지 아이들은 금요일 수업 마치고 대부분 집에 돌아갔다 일요일에 돌아온다. 그래서 아들은 그 아이들이 떠나고 조용해지는 주말을 아주 좋아했다.
한 번은 아들 폰에 있는 동영상을 보니 동양인 유학생과 뉴질랜드 금발 학생 이렇게 1:1 매치 영상이 있었다. 기숙사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두 아이를 빙 둘러쌌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아주 기대하고 있다는 듯 딱 봐도 신난 표정으로.
"아니, 애들 싸우는데 안 말려?"
"왜 말려~ 이 재밌는 걸"
영상 속 유학생도 이미 몇 달을 거기서 살았기 때문에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죽기 살기로 금발 남학생의 허벅지만 일정한 리듬으로 계속 걷어찼다. 금발 남자애는 본인이 먼저 시비를 걸고 약간의 깝죽거림을 보였나 본데 본 게임에 들어서니 맥을 못 췄다. 결국 금발아이가 아임 쏘리하며 끝났다고 한다. 아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을 겪으면서 그 세월을 보냈겠지. 반면 이제는 고2가 돼서 아주 평화로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방도 1인실 아니면 2인실. 뉴질랜드 자국민의 대학 진학률은 20~30% 라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고3으로 갈수록 기숙사에는 그 많던 개구쟁이 현지 아이들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아들은 이렇게 벌써 3년 차에 접어들어 이젠 일주일에 통화도 한 번 할까 말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죠 하며 씩 웃어넘기는 아들. 하루에 두 번씩 전화 오던 때도 있었는데. 어차피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지만 막상 닥치고 나니 이제 내가 아이 인생에 많이 개입할 기회는 별로 없겠구나 싶다. 반면에 올해 떠난 중2 딸은 아직은 개입을 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학교 갔다 홈스테이 돌아와서 저녁 먹고 가족들과 시간 보내고 자기 전까지 숙제하고 좀 놀고. 한 마디로 얘는 바쁘다. 그래서 내가 붙잡고 영통 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바쁜 게 낫다. 올여름에 한국에 다녀간 딸은 한동안 한국이 그리워서 울적해했는데 3학기 시작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엄마, 바쁜 게 나은 거 같아. 딴생각이 안 나."라고 한다.
얘기가 많이 샜는데 그래도 애들 보내놓고 한 번 가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을 올해로 정했었다. 어차피 현지에 실장님이 계시니까 유학 보내자마자 가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았고(물론 가도 좋지만) 아들이 자리 잡고 그 생활에 적응하고 편안해졌을 때 가보면 좋겠다 생각했다. 부부가 둘 다 가긴 좀 그렇고 일단 남편부터. 그래서 지난달에 여름휴가 삼아 남편이 혼자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게다가 운 좋게 뉴질랜드 일정 끝날 무렵에 호주 출장이 잡혀 아이들과 며칠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덕분에 난 나대로 혼자만의 긴 휴가를 받았다. 사실 이것도 만만치 않게 좋았지만.
남편은 두 아이의 학교를 차례로 방문했고 유학생 담당 선생님들과 아이의 생활, 학업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실장님도 언제나 함께 해주셨다. 그리고 아이들 학교도 둘러보았는데 특히 아들과 함께 둘러본 기숙사 영상이 나는 제일 좋았다. 여기서 먹고 자고 씻고 하는구나. 엄마가 이래라저래라 안 해도 여기서 네 할 일 스스로 하고 있겠구나.
나는 내년에 가 볼 생각이다. 아들 졸업식에 맞춰서. 벌써 에어비앤비로 마음에 드는 숙소 예약까지 마쳤다. 숙소 예약하면 반은 한 거니까 기분은 낼모레 출발할 것만 같다. 지금 남편이 뉴질랜드 다녀온 얘기는 글로 쓰기가 어렵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겪고 직접 느껴야 쓸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다. 내년엔 다르겠지.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몇 번을 갈아탈 거고, 도착해서 한국에서 가져간 무언가를 꺼내 밥을 차릴 거고, 아이들과 같이 먹고 자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