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데리고 살기

by 나린

엄마 수술이 있는 날.

다치셨는 연락을 받은 지 두 달만이다.

갈비뼈 세 개가 부러진 지 오래인데 아물 기색이 없다. 그래서 결국 수술을 하신다.

걱정보다 한숨이 먼저다.

다시 병원 생활이시구나. 병원비며, 간병비에, 먹는 일까지 자주 있던 일임에도 매번 또? 가 먼저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이기적인 모습이 되었다. 병원 가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고, 싫은 인상도 쓰고, 나도 힘들단 소리도 이제는 한다. 예전엔 절대 생각지도 못한 일들, 말을 이제는 한다.

진짜 힘드니까..

해시태그 글쓰기를 하던 때 쓴 글이다.

오늘 그때 써 두었던 글 첫 장이 생각나서 용기 내서 글쓰기를 한다. 너무도 바쁜 하루였음에도 불구하고.


첫 아이를 출산하고 친정 엄마가 끓여 주는 미역국의 맛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슬픈 생각에 사로 잡혀서가 아닌 그냥 진짜로 그 맛이 궁금했다.

그런데 오늘은 슬픈 생각이 앞선다. 나는 나의 생일날 끓인 미역국 한번 조차 먹어 보질 못했는데.. 내가 감당할 엄마 부양의 몫은 왜 이다지 큰 건지..

사는 게 바쁘셨던 분. 재혼을 하시고 전처가 낳은 딸 둘에 본인의 딸, 아들까지 일찍기 세상을 등진 남편을 대신해 이를 악물고 사셨으리라 생각하니 그래 해야지. 이게 머라고. 또 내게 미션이 주어졌구나..라는 다짐을 한다. 버릇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생각의 골은 깊어진다. 친 자식도 버리는 세상에 길러 주신 감사함만 생각하기로 몇 번을 다짐하건만 다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게 현실이다.


병원을 들어서서 수술을 앞둔 엄마가 계신 병실을 걸어가는 동안 오늘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며 사진도 찍어지고.. 나는 엄마보다 훨씬 낫구나 하는 위로를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병원이 주는 느낌과 향은 정말이지 싫다는 생각과 동시에 간호사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가져진다. 엄마 수술이 시간에 맞춰 진행이 되길 바랬는데, 오늘따라 수술 환자가 많아 지연되니 또 나의 감정 저울질이 시작이 된다. 아무 잘못 없는 나에게 아무도 들리지 않을 욕 짓거리가 나올 것 같아 습관처럼 동요 하나를 부른다. 내가 치료가 필요 것이다.

작은 체구에 야위신 모습으로 병실 젊은 환자분과 간호사님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렇게 반가운 마음이 앞서다가도 미안해하시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짜증이 나는 건.. 그래 좀 잘해주지. 나도 받아 보지도 못한 이런 챙김을 친 자식도 아닌 내가 왜! 왜 항상 나의 몫인가 싶다. 그러다 어느새 오십이 넘어가는 내 나이를 생각하니 이제는 어쩜 같이 나이 들어가는데, 친구가 아파도 도움을 주는 난데. 나쁜 마음 버리기를 애써 한다.

수술실로 엄마를 들여보내고 공동 간병인이 계신다는 병실로 짐을 옮기고, 볕이 드는 창가에 뉘실 침대를 정리했다. 5인실 침대 하나가 비어 있다. 창가 자리라 다행이다 했더니, 볕이 많이 들고 바람 들어오는 게 싫으신 게 침대가 비어 있는 이유였다.

그래 걱정하지 말자. 볕이 들고 햇볕이 들어야 생각도 밝아지지.


일정을 마무리하고 저녁이 다 된 시간 다시 찾은 병실엔 엄마 나이 또래 친구분들이 많다. 거동이 불편하시고, 아픈 게 공통 사이니 아마 다들 신세한탄? 들로 넋두리하며 시간들을 보내셨겠지. 수술이 잘 되었는지 변비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변비약을 사다 드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주차비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잠시 머물다 나왔다.

바쁜 일정이 있었던 것도 이유고. 공동 간병인들 계시니 챙겨 주시겠지 한다. 간다는 소리에 엄마는 내 속을 모르는 소리를 하신다. '간병인보다 네가 훨씬 나은데..' 그래 내가 훨씬 잘하지.

행여나 등이 배길까 침대보 두께를 챙기고, 행여나 다리 저릴까 수시로 주무르고, 감기라도 들까 환기 자주 시켜드리고, 입맛에 맞는 음식 챙겨 드리고, 환자라도 냄새날까 자주 씻겨 드리고, 곱게 단장해 드리고. ' 엄마, 그건 나도 살만할 때야...'


병실을 나오니 복도에 식사 그릇들이 보인다. 얼른 회복해서 엄마 좋아하는 '남이 해 주는 밥' 드셔야지. 죽도 싫어하시는데..


또 올게요.

엄마 울지 마..'

다들 엄마가 울면 생각 나는 단어, 장면들이 '엄마도 외할머니 보고 싶어 우는 거야' 그러는 이들이 많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도 아프니까 엄마가 보고 싶으시겠지. 살아온 지난 아픔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시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기분이 어떤 건지 사실 공감이 되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인 내가, 딸인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우는 거야..'이건 내가 자식에게 해 주고픈 답이다.

나는 진짜 내가 참 많이 가여울 때가 있다. 다행히도 아주 가끔!

해시태그 글 쓰기 마지막 장 썼던 글이다.

그래 다 지켜보고 계시겠지.. 배 아파 출산한 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쁜 딸을 두고 눈을 감으셨으니.. 얼굴도 이름 석자조차도 모르는 '손'씨 성을 가진 고운 우리 엄마.

생이 마감되는 그날 하늘 가서 꼭... 보고 싶다.

사무치게 그리웠노라 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