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방전
50대 초반, 아이들은 이제 다 커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집은 조용해졌고, 문득 내가 그동안 달려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니는 직장에서는 선배로 불리며 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하거나 의지하지만, 정작 내게는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 한때는 열정을 불태우며 목표를 향해 달렸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게 의미를 잃은 듯하다.
번아웃, 그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고, 익숙한 길을 따라 회사로 향한다. 책상 위에는 늘 비슷한 서류 더미, 끝없이 쏟아지는 이메일, 그리고 내가 없어도 돌아갈 것 같은 회의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예전에는 성과를 내는 게 자부심이었고,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게 힘이 됐지만, 이제는 그저 피곤함만 쌓인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버텼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주변을 보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다. 다들 묵묵히 버티며 살아가지만, 가끔은 그들의 눈빛에서도 나와 같은 공허함을 본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멍하니 앉아 있거나,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시간을 보내다 잠이 드는 날들이 늘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50대였나? 스스로에게 묻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어디선가 다시 시작할 작은 불씨를 찾고 싶다. 일에서 의미를 잃었다면, 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만들어볼까. 오랫동안 미뤄뒀던 취미를 다시 꺼내보거나, 어딘가로 훌쩍 떠나 낯선 풍경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번아웃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작일 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발짝 내디뎌본다. 이 글이 번아웃을 겪고 있는 50대 초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담아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