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짠 시나리오 안에서 벌어진 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 생각에서 비롯된 상처다. 내가 만든 프레임, 내가 짠 시나리오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알면서도 어김없이 마음은 흔들리고, 감정은 상처로 남는다.
우리는 흔히 시기, 경멸, 분노 같은 감정을 정원의 잡초처럼 본다. 뽑아내야 하고, 없애야 할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큰 오해일지도 모른다. 니체나 공자 같은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다르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귀 기울이고 질문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삶을 방해하는 적이 아니라, 오히려 풍요를 돕는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는 조언 속에서 산다. 나 역시 누군가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틀에 박힌 위로와 교과서적인 답을 건네고 있을지 모른다. 정작 나는 그 틀을 깨는 법조차 모른 채 말이다.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카벙클. 새끼 거북이가 알 속에서 두 달을 버틴 뒤,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생겨나는 작은 이빨이다. 삶의 벽을 깨고 나오기 위한 본능적 도구다. 우리 삶에도 이런 카벙클이 필요하다. 편견과 상식, 분노와 시기, 흉내와 부러움의 껍질을 깨는 작은 이빨 말이다.
세상이 강요하는 보편적 관점과 타협하며 살아가되, 동시에 내 안의 카벙클로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한다. 그렇게 나온 하루는 어쩌면 서툴고 상처투성이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상처조차 무뎌져 또 다른 나를 세우는 발판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카벙클을 믿는다. 일어나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다스릴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나를 이끄는 셀프 리더십이 될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린다.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카벙클이 되어 내 안의 틀을 깨고 나오게 하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