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

너구리 탈출기

by 나린


살면서 나는 별명을 거의 가져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이름이 현실이라 도덕 시간에 선생님이 농담처럼 “북한의 현실, 남한의 현실”이라 부르던 정도였다. 이름 하나로 분단 상황을 설명하던 시절, 그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별명이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유명인 덕을 톡톡히 봤다. “최진실, 최순실” 이름이 뉴스에 오르내릴 때마다 나도 덩달아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이름이 현실인 것도 피곤한데, 타인의 현실까지 짊어져야 했다.


그러다 결혼 후, 나의 현실은 조금 달라졌다.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배에 집중적으로 지방이 모여들었다. 그때 친구 신랑이 내게 새 별명을 붙였다. “너구리!”

심지어 폰에 너구리라고 저장해 두었다나.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내 뱃살이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아 괜히 우픈 별명이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너구리란 별명은 이제 놓아주고 싶다. ㅎ


별명에 관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나를 유독 아끼던 살찐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그분의 별명은 “날르는 돈까스.”

언제나 점심시간 후엔 “자, 날아볼까?” 하시며 운동장으로 학생들을 몰아내시던 귀여운 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날씬해지셨을까, 아니면 여전히 돈까스의 품격을 지키고 계실까.


이제 나는 ‘너구리’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건강한 삶을 찾아가는, 활기찬 ‘최현실’.

그게 나의 진짜 별명이고, 앞으로의 현실이기도 하니까.


읽는 당신의 별명은 무엇인가요?

혹시 나처럼 웃픈 이야기가 있다면, 오늘 하루 그 이름을 살짝 내려놓고

새로운 자신을 불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