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의 품격

by 나린

피노키오의 코보다 무거운 양심에 대하여


어린 시절, 나는 교회를 다녔다.

작은 상처가 나거나, 마음이 불편한 일이 생기면 곧장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오늘 하나님께 어떤 거짓말을 했나?”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어린 목소리로 회개했다.

그때의 나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진짜로 길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피노키오의 코처럼 말이다.

그래서 진실을 감추는 건,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몸 어딘가가 변할 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그 순수한 믿음의 시절이 그립다.

정직은 숨처럼 자연스러웠고,

진실은 신앙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거짓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은 진실보다 조심스러운 표현을 더 원한다는 것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우아하게 포장된 거짓을 배운다.


“괜찮아요.”

“별일 아니에요.”

“그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말들은 사실, 타인을 위한 듯하지만

어쩌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마음 한켠이 저릿하게 울린다.

‘나는 지금 누구를 속이고 있는 걸까?’

‘저 말의 끝에, 내 양심은 고요할까?’


거짓은 법으로 가려지는 문제가 아니다.

도덕의 기준으로 재단하기도 어렵다.

결국 남는 것은, 내 안의 양심이다.

그 양심이 평안하면 그 말은 선한 거짓이겠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그것은 이미 진실의 변질이다.


지금 나는 아이들의 거짓말을 보면 금세 안다.

눈빛이 흔들리고, 손이 바쁘다. 거짓말임의 티가 확 난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그 나이의 나도, 그렇게 거짓을 배우고 있었을 테니까.


어른이 된다는 건,

거짓을 잘 감추는 법을 익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거짓 기술에 속지 않으신다.

그분 앞에서 우리의 모든 거짓은

언제나 제 모양을 되찾는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래서 요즘은 거짓말을 하기 전에 한 번 멈춘다.

“이 말이 나를 살릴까, 아니면 나를 속일까.”

진실은 때로 잔인하지만, 거짓은 결국 나를 무너뜨린다.

우아한 거짓보다 투박한 진실이 낫다는 것을,

삶이 천천히 가르쳐주었다.


거짓의 기준은 법이 아니다.

도덕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마음,

그것이 진실의 기준이다.


거짓이 아무리 고운 옷을 입어도,

진실의 얼굴빛만큼은 따라올 수 없다.


— 최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