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생일, 다시 나를 불러내는 시간

by 나린



나는 오랫동안 내 생일을 몰랐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엔 나의 탄생을 나타내는 숫자가 있었지만, 그건 나의 생일이 아니라 그저 행정적인 표식일 뿐이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불려야 비로소 생일이 되는데, 그 기억의 주인인 엄마가 없었으니

숫자들은 세상 어딘가를 희미하게 떠다니는 시간이었다.


생일을 알게 된 건 결혼하고 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집안 사촌 결혼식 날, 큰집 언니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내가 태어난 진짜 생일을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셋이 같은 날 태어났잖아. 그리고 현실이 네가 제일 먼저 태어났었는데.”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마치 잊힌 초대장이 오랜 세월을 돌아와 내 손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숫자로만 존재하던 생일이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가진 하루로 되살아났다.


하지만 생일을 챙길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지금껏 키워주신 엄마에게 미안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묘한 거리감이 생기는 것도 같고.

그래서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보냈다. 미역국과 케이크 한 조각 없이 지나가도 괜찮다고, 괜히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생일의 의미가 조금씩 바뀌었다.

아이의 생일이 다가오면 나는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사고,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매번 똑같은 말을 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들으며 문득 깨달았다.

생일은 나의 날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시작된 날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내 생일을 아무 말 없이 지나칠 때면 괜스레 마음이 허전했다.

내가 그토록 챙겨주던 그 마음을

이제는 누가 내게 건네주지 않을까 하는 서운함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일을 잃어가며

조용히 투명해지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내년 생일에는, 나는 나를 위해 축하할 것이다.

누구의 축하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나에게 초를 켜고, 작은 편지를 쓸 것이다.

“현실아, 잘 버텼다. 너라는 사람으로 살아줘서 고맙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건네는 축하야말로

가장 진심 어린 생일 선물이 아닐까.


생일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은 스스로를 다시 불러내는 의식이다.

고 지내던 나를 불러

다시 한번 세상 가운데 서게 하는 날.


그날, 나는 태어난 나를 안아줄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 생일을 내 손으로 축하하며.


“생일은 누군가의 축하가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날이다.”


그리고 먼 훗날,

오랜 시간 기다리고 계셨던 엄마에게 나의 생일 축하을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