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인연의 온도

by 나린


나이가 들수록 인연이란 단어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쉽게 어울리고 금세 마음을 열었다. 웃는 얼굴 하나로 친구가 되고, 우연한 만남을 운명이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모든 만남이 깊어질 필요는 없고, 모든 인연이 오래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사람은 저마다 다른 결을 지닌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을 여는 일이 조심스러워진다. 나를 너무 쉽게 내보이면, 어느 순간 그 틈으로 낯선 바람이 스며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내 평온을 흔들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인연을 맺기 전에 한 걸음 물러서서 묻는다. 이 사람과의 만남이 내 삶에 어떤 결을 남길까.


세상에는 스쳐 지나가야 할 인연이 있다. 잠시 머물다 서로에게 의미를 남기고 떠나는 인연. 그런 이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으려 한다. 떠나야 할 사람을 붙드는 일은, 결국 나를 더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은 억지로 잡지 않아도 남는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함께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더 그리운 인연이 그런 사람이다.


이제 나는 함께보다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무리 속에 끼어드는 일보다 내 결과 맞는 이들과 조용히 호흡을 맞추는 일이 편하다. 어떤 모임에서는 목소리가 커야 존재가 드러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자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쪽을 택한다. 깊이 있는 대화가 오가는 작은 모임,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존중으로 감싸주는 관계가 좋다.


진정한 인연은 수다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사람, 내 결이 흔들릴 때 지켜봐 주는 사람, 그가 내게 남은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다. 인연이란 결국, 나를 지키며 맺을 줄 아는 지혜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연의 거리를 재본다. 너무 멀면 마음이 닿지 않고,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니까. 그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오래도록 이어지는 관계,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인연의 온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