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도깨비에 대한 것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운 도깨비. 그는 나의 아버지이다. 그의 삶은 신화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기담(奇談)이 되어 가족들에게 전해진다.
할머니는 좋은 집안의 딸로 태어나 가난하고 똑똑한 남자와 결혼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돈을 불리는 재능이 있어 작은 시골 마을에 식모도 여럿 부리며 잘 살았다. 하지만 친정은 모두 세상에 이름을 내며 사는데 본인만 점처럼 작게 느껴져 늘 마음이 고독했다. 그러다 남편을 일찍 병으로 여의고 마음의 고독은 돌처럼 단단한 독이 되었다. 왜인지 모를 분노와 슬픔, 그리고 외로움이 매일 밤 술로 할머니를 위로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너무 약해 살리기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동란에 생때같은 아들을 먼 별로 보내고 태어난 아들이라 마음이 닳아 손바닥까지 투명해진 할머니는 죽어가는 아들을 치성으로 살려냈다. 정말 그 치성 때문인지 병약한 아들은 클수록 건강했고, 똑똑했고,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자식은 지키고 세상은 이겨야 된다는 일념에 강철이 된 할머니는 어딜 가서 지는 법 없는 장남이 그렇게 마음에 찼다고 한다. 그는 할머니를 휘감던 외로움과 결핍이 터져나가지 않게 막아줄 코르크 마개가 되어주었다.
그는 뛰어나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서울 친척집에 머물며 학교를 다녔다. 성품이 선했던 작은 어머니는 공부 잘한다는 큰집 장손을 귀한 손 대하듯 했고 귀찮은 일은 전부 그 집 아들과 딸이 하게 했다. 그 후로 그는 계속 공부를 잘했고,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명문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입학하고 주변의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앞으로 그가 펼쳐나갈 비단처럼 고운 미래에 모든 이의 시선이 날실과 씨실처럼 내리 꽂혔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랐다. 그가 세상에 쓰여본 적 없는 귀한 그물 같은 존재로 자라났다는 것을. 사소하고 작은 일은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자신이 할 일은 그저 대어를 낚는 것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부풀었다고 한다. “그래야지 우리 아들, 니들은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되는지 보기만 하면 돼.” 그는 곧잘 ‘그런 게 뭐가 중요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피곤하면 하루 안 갈 수 있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마음에 안 들면 회사를 나올 수 있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해’,‘돈이 뭐가 중요해’ 처음에 가족들은 선뜻 이해 가지 않는 그의 언행에 심오한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받잡아 주었다고 한다. 천성이 착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가족들은 그의 흠은 모른 척해줬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다. 그러나 인생의 대어는 그물만 가지고 낚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물을 어떻게 바다에 던지는지, 어떻게 펼치는지,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대어가 되는지 전부 알아야 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귀한 그물만 들고 바다만 바라보며 기회가 오지 않음만을 한탄했다. 명석한 머리는 세상사는 요령이 없이는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세상에 알맞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세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전복(顚覆)을 외치며 회사를 때려치웠다. 사람들은 그의 선구적인 모습에 감응하여 함께 회사를 나왔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그는 그에게 알맞은 회사를 차려버렸다.
불편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그는 이 세상에 자신을 대신 해줘야 할 대리인들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작고 사소한 일은 모두 다른 손이 처리했다. 운전은 기사가 대신했고, 머리 아픈 회계는 믿음직한 직원이 대신했다. 사업의 시작은 좋았다. 시장의 관심이 쏟아졌다. 정말 시대를 앞선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좋은 머리로 탄생한 회사는 성실한 손으로 관리되지 못한 채 결국 부채(負債)를 쌓아갔다. 그 특유의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정신이 빛을 발했다. 몸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화려한 실패의 삶이 시작됐다. 그를 따라 회사를 나왔던 사람들은 빈 월급봉투와 함께 하나둘 떠나갔다. 비단으로 옷을 지어 가마를 타고 상경해야 할 집안의 기둥은 결국 기둥을 뽑아 자신의 세상을 만들었고, 마음에 차지 않으면 허물기를 반복했다.
할머니의 주머니는 점점 헐어갔다. 자식들에게 나눠줄 돈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럴수록 할머니는 아들이 결국 가지고 오고야 말 성공에 집착했다. 그는 엄마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그의 세상을 향한 맹공은 멈출 줄 몰랐다. 적지 않았던 집안의 재산은 거의 바닥을 보였다. 그쯤 되자 슬슬 그의 마음에도 불안이 새까맣게 몰려 왔다.
‘한 번에 만회 해야 돼. 여태까지 손해 본 것쯤은 금방 회복할 수 있어.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그득그득 그를 갉아 먹었다. 불안은 그를 술 취하게 했고, 설전(舌戰)하게 했고, 매일 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주는 세상의 잡기(雜技)만 붙잡게 했다. 어머니는 결혼할 때 받은 다이아 반지까지 팔아 아빠에게 건네줘야 했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소액의 돈까지 빌려야 했다.
할머니는 자랑인 아들이 빛을 잃을까 불안했다. 그녀의 결핍을 채워주던 고맙고 소중한 아들이 오징어처럼 쭈그러드는 모습은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다. 낮에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소리 쳤지만 밤에는 소리 없이 몰려오는 걱정과 불안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그때마다 술 한잔에 그 밤을 의지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는 쭈그러들다 못해 세상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점이 되어갔고, 할머니의 새까맣게 타던 속은 하얀 재가 되어 작은 바람에도 흩어지는 한이 되었다.
지우개로 대충 지운 달처럼 희미하게 둥근 달이 아름다웠던 밤이었다.
“네 이놈 자식 그렇게 처자식 밥도 제때 못 먹이며 살 거면 다시는 내 얼굴 볼 생각 하지 말아라.”
“어머니, 그런 사소한 일이 뭐가 중요해요. 기다려 보세요.”
그 밤 할머니는 찰랑이는 소주잔을 타고 달무리로 떠나버렸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자 간의 다툼이었다. 아버지는 익숙한 듯 어머니의 화가 누그러질 새벽녘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몇 번의 두드림에도 열리지 않았다. 아침이 되도록 문이 열리지 않자 아버지는 창문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갔고, 주인을 잃은 차가운 소주잔과 조우했다.
그는 장례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지나치게 침착하고, 이성적이었다.
“어머니는 우울증이셨어.”
한마디로 할머니의 죽음을 정리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의 탓을 하는 이도 없었다. 그저 좀 더 살피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그렇게 덤덤하게 시간은 흘렀다. 아버지는 다시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몰랐다. 그조차도 몰랐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그의 가슴 속에 송곳처럼 파고드는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는 것을, 그 조각난 가슴이 터져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맴돌고 맴돌아 끝도 없는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소용돌이는 죄책감과 후회, 원망과 슬픔, 그리움과 두려움, 그리고 찢어지는 이름 모를 고통이었다. 그것들은 너와 나의 경계 없는 한 덩이가 되어 그를 후벼팠다.
“여보, 매일 밤 꿈에 어머님이 나오셔. 매일 밤”
짙고 짙고 짙은 어둠의 끝에 남겨진 하얀 빛처럼, 슬픔의 끝과 끝과 끝에 하얗게 소진된 그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고, 병들어버렸다. 어느 날부터 꿈에만 나오던 할머니는 그가 걷는 골목 어귀에도 서 있었다.
“다시는 안 본다더니, 어머니 또 오셨네요.”
괴로움에 잠 못 이루던 그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지금 꿈속의 어머니가, 또는 골목 귀퉁이의 어머니가 진짜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술을 많이 마셔 그렇다는 사람들의 말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편케 했다. 그렇게 그는 더욱 망가졌다.
이렇게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망가진 도깨비가 탄생하게 되었다.
어느 날 도깨비는 허름한 시장 안에 있는 술집에 어린 자식을 데리고 갔다. 망가질 만큼 망가진 도깨비였지만 자식이 있었기에 낮에는 일했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 카트 트랙처럼 디귿자로 생긴 신기한 의자에 앉아 주인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닭발이니, 곱창이니를 먹는 희안한 곳이었다. 도깨비는 아들과 나란히 앉아 빈 소주 잔에 물을 따라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산은 산 강은 강이란다.”
어린 아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친구들은 와본 적 없을법한 신기한 곳에서 어른처럼 잔을 받아 앉아 있는 자신이 뿌듯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후로도 그는 저 말을 수도 없이 아들에게 했지만 도깨비의 말은 아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십 년쯤 지나 아들도 자식을 낳고서야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은 하나의 인생이 될 수 없었다. 서로 각자 덤덤하게 자신에게 펼쳐진 인생을 겪고 걸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모는 유독 자식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자신의 결핍을, 자신의 성취를 자식을 통해 극복하고 반복하고 싶어 한다. 할머니의 결핍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사실 살다 보면 결핍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쓰디쓴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신의 결핍을 채워보고자 하지만 결국 서로 당황한 채 마주보며 신혼을 피 터지게 싸우는 갑남을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두 인생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면 갈근이 등나무와 엉켜 서로를 놓아줄 수 없게 돼 버리듯 인생이 꼬이고 꼬여버리는 것이다.
도깨비가 된 아버지는 삶과 죽음, 인생과 사람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것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그 답은 자식에게 물려줄 고혈같은 한 문장이었다. 저 말을 서로 남처럼 살라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주길 바란다. 어떤 육아 전문가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양육의 목표는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인생은 자립이다. 그래야 온전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두 인생이 굳게 설 때 하나의 인생이 무너져 내리면 한쪽에서 버티며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고, 사람살이다. 너무 멀어져도 외롭고, 너무 가까워도 문제가 된다. 너와 나 사이의 적당한 거리는 서로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지만 산은 강이 있어 산이 될 수 있고 강은 산이 있어 강이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와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했고, 각자의 인생도 뿌리 깊게 내리지 못했기에 함께 무너졌다. 그랬다.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다. 굳지 못한 인생이 함께 무너져내린 것이다. 인생은 슬프게도 살아갈 때는 함께하기가 어려운데 무너질 때는 함께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운하게 나와 떨어져 멀뚱하게 서 있는 사람이 내 무너짐을 받쳐주기도 한다.
나는 소망한다. 내 인생이 뿌리를 깊게 내려, 누군가에게 적당한 곁을 내주고 서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인생이 되기를 말이다.
이것이 도깨비가 내게 준 제1의 메세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