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 홀리 아일랜드 (Holy Island)
린디스판의 성스러운 섬(Holy Island of Lindisfarne)은 잉글랜드 북동부, 에든버러와 뉴캐슬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섬은 둑길을 통해 본토와 연결되어 있는데 조수 간만의 차에 의해 하루에 딱 두 번 바다가 열린다. 여행에서 살아 돌아오고 싶다면 조수표를 잘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왜 홀리 아일랜드인가?
잉글랜드에서 이곳을 성지로 불리게 된 이유는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가 여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635년, 노섬브리아 왕 오스왈드는 현재 스코틀랜드 남서쪽 해안에 있는 아이오나 섬의 수도원에서 아이단이라는 아일랜드 수도사를 자신의 왕국 주교로 임명했다. 오스왈드는 아이단과 그의 동료들에게 수도원을 세울 수 있도록 작은 조수 섬인 린디스판을 주었다. 수도사 성 에이단(Saint Aidan)이 이곳에 도착하면서 기독교의 뿌리가 내려진 것이다. 그 후 목사, 선견자, 치유자로 잘 알려진 성 커스버트(Saint Cuthbert)에 의해 기독교가 계승되었다. 린디스판의 수도원장인 커스버트는 수도사들의 생활 방식을 아일랜드가 아닌 로마의 종교 관습에 맞춰 개혁했다. 커스버트에 관한 흥미로운 점은 687년 3월 20일,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11년 후였다. 수도사들이 그의 무덤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그의 시신이 부패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수도사들은 커스버트의 순수함과 성스러움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기적은 성 커스버트의 숭배로 이어졌다. 수도원은 권력과 부를 축적하며 왕과 귀족들로부터 토지뿐만 아나라 금전과 귀중품도 기증받았다. 그 결과 710년에서 725년경 40개의 색깔로 화려하게 디자인된 린디스판 복음서는 오늘날 초기 중세 미술의 걸작이 되었다. 793년 바이킹의 공격으로 초기 수도원은 버려졌지만 나중에 수도원으로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 폐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볼 수 있다. 이렇게 수도원의 광대한 유적과 박물관, 그리고 인근 세인트 메리 교회와 린디스판 성 덕분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성지이자 순례지로 남아 있다.
린디스판 성(Lindisfarne Castle)은 왕이 살던 궁전이 아니라 중요한 군사기지 역할을 했던 요새였다.
린디스판 성을 설명하자면 15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헨리 8세는 1537년 린디스판 수도원의 해체를 명령했고, 그 영지는 왕실 소유가 된다. 그러면서 1543년, 스코틀랜드 원정을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군사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항구 주변에 흙과 목재로 요새를 건설하고 한때 21문의 대포를 설치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1603년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가 되면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는 통합하게 된다. 이러면서 튜더 양식의 포병 요새와 에드워드 왕조 시대의 전원 저택이 놀랍도록 융합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저택에는 네 개의 공용실, 아홉 개의 침실, 그리고 욕실 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린디스판은 올챙이 모양의 섬이다.
린디스판에는 160명이 조금 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올챙이 모양의 섬으로 알려진 린디스판의 '머리' 부분인 남서쪽에 유일한 마을이 있다. 주민들에게 있어 조수 간만의 차는 일상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쇼핑부터 가정 및 사업 배달, 중등 교육부터 일상적인 의료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조수 간만의 영향을 받고 있다. 린디스판에는 약 40개의 객실만 예약할 수 있다. 따라서 숙박을 원한다면 사전에 예약할 것을 권장한다.
육지로 다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바다 중간에서 차를 멈췄다. 차 모니터에 찍힌 내비게이션에선 내 위치 주위로 파란 바닷가가 표시되었다. 세상에 내가 바다 한 중앙에 있다니. 마치 3천 년 전 홍해를 가로질렀던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처럼 그저 그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물결 자국을 남긴 모래 위로 발을 내딛고 섰다. 바다벌레나 조개들이 막 땅으로 기어가면서 만든 구멍과 실모양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무엇보다도 짭조름한 바람이 내가 밟은 땅이 육지가 아니라 바다라고 되새겨주는 듯했다. 둑길이 생기기 천 삼백 년 전 수도사들은 이 길을 맨발로 다녔을까.
문득 수도원을 돌다가 바닥에 새겨진 문구가 생각났다.
Unburden yourself of what represents darkness
and
take up that which represents light
<어둠을 상징하는 것을 벗어버리고 빛을 상징하는 것을 취하십시오>
차디찬 모래 안으로 발톱을 묻은 채 고개를 돌려 저 끝을 바라보면 바다 위로 울렁거리는 고깃배들이 보인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경계가 없는 이곳에 서 있으니 개미 같은 내가 우주를 만든 창조주와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탁 트인다. 아마도 손에 꽉 쥐고 있던 어둠을 던져 버리고 싶은 것 또한 빛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은 나에게 무엇이 어둠이고 무엇이 빛인지를 재촉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차분하게 일깨워주는 듯했다. 이 또한 이 거대한 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신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저 멀리서 여유 있게 누워있는 하얀 물개 두 마리가 보였다. 이곳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듯 짧은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나도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주었다. 홀리 아일랜드가 주는 경이로움은 끝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