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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옥현 Oct 25. 2022

뭉티기

친구가 생각나는 맛

뭉티기. 내가 뭉티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민욱이를 통해서였다.

펄럭이는 통 넓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검정 장지갑을 꺼내 손바닥에 대고 탁탁 치면서

오늘 돈 쫌 있다. 한 잔 빨자.

술을 배운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이미 술꾼 다 된 듯, 이 시간 이후 즐거울 시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보여주듯 민욱이는 한쪽 다리를 연신 건들거리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는 어땠는가.

니 뭉티기 무 봤나?

라고 말하는 민욱이 앞에서 나는 오늘 벌어질 환상적인 상황들이, 시간들이 내 머릿속에 풀 스크린으로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시내로 진출하자.

민욱이를 따라 우리의 본거지 학교 후문 번화가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동성로 뒷골목. 민욱이는 대체 언제 이런 골목까지 진출했을까. 그렇게 허름하지도 않지만 전혀 고급스럽진 않은 그냥 평범한 식당. 간판에 뭉티기라고 적혀 있었다.

이모, 뭉티기 한 접시 하고 소주 하나 주이소.

검붉은 소고기 우둔살. 주사위처럼 뭉텅뭉텅 썬 생고기 한 접시가 나오고 고추다대기랑 찧은 생마늘에 고소한 참기름을 끼얹은 양념장. 반찬은 풋고추에 생오이, 당근이 전부다. 그리고 맑은 소고기 뭇국.

야 이거 안 굽고 그냥 묵나?

숯불도 없고 불판도 없이 나온 생고기에 놀람 반 기대 반으로 탄성을 지르고 맑은 소주 한 잔 들이키고

두툼한 고기 한 점을 양념장 듬뿍 찍어 먹는 그 맛. 소주 한 잔에 먹는 그 맛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극한의 맛이었다. 아니 이었다를 빼야 한다.  최소한의 말로 줄여야 한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면서 찰진 생고기를 두툼하게 입 안 가득히 넣어 씹는 식감. 참기름, 마늘, 고추다대기의 환상적인 조합.

니 이거 첨 무 보제?

니는 이거 언제 무 봤노? 이런 술안주를 니 혼자 알고 있었나?

나도 얼마 전에 선배가 여 델꼬 와가 첨 무 봤다. 니 생각나가 오늘 안 왔나.     


그로부터 10여 년 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수련 후 결혼, 육아, 직장생활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뭉티기가 생각이 났지만 뭉티기는 대구 지역 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소고기집에서 육사시미라고 파는 고기가 있었지만 맛도 다르고 무엇보다 양념장이 달라 예전의 그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대구에 볼 일이 생겼다.

민욱아 오랜만이제. 니 모레 머 하노? 내캉 뭉티기 한 접시 하까?

아 그래? 대구 오나? 진짜 오랜만이다. 모레 보자. 뭉티기 묵고 싶구나. 모레 OO식당에서 보자.

그 사이 대구에서는 뭉티기 집이 많이 생겼다.

결혼 직후 잠시 강릉에서 살 때 혼자 찾아왔던 민욱이가 생각났다.

경포 해변에서 회 한 접시랑 소주 한 잔 했던.

민욱이는 여전히 맘 넓고 푸근하고 믿음직하고 재밌었다.

우리는 오래된 뭉티기 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야 이 집은 이 말간 소고기 뭇국  맛이 일품이네.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아무 일 없이 만나도 항상 반가운 친구.     


나는 뭉티기를 직접 만들어 먹어 보기로 했다. 일단 도축장 근처의 정육점을 알아봐야 했다. 뭉티기는 반드시 당일 도축한 우둔살로 해야 한다. 당일 도축한 고기를 구할 수 없어 하루 이틀 지난 것을 먹어봤는데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어 붉게 변하고 경직이 일어나 식감도 질기고 맛도 없었다. 소의 등급은 오히려 낮을수록 좋다. 지방이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전으로 직장을 옮긴 나는 도축장 근처의 정육점 한 곳을 찾아냈다.

여보세요. 혹시 거기 당일 도축한 우둔살 살 수 있나요?

예 있어요. 얼마나 필요해요?

집에서 먹을 거라 500그램 정도.

네 오세요.

요즘 인터넷에는 없는 게 없다. 뭉티기 양념도 파는 곳이 있다. 중요한 재료인 고추다대기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생마늘을 찧고 다대기를  넣고 참기름을 끼얹어 양념장을 만들고 우둔살을 썰었다. 근막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그야말로 뭉텅뭉텅 썰었다.

아! 이 맛이다. 옛날 생각나는구나.  

옛날 먹었던 그 맛에 거의 흡사한 맛을 느꼈다.

건달 코스프레하던 민욱이가 생각났다. 풋, 헛웃음이 나고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늦둥이 낳고 두문불출하고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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