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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에서 피자가 그리운 밤

피자가 먹고 싶어요

by 도로미

도시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니

높은 회색빛 건물들과 매케한 매연에 지치고,

톱니바퀴 같은 업무에 번아웃이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무작정 직장을 내려놓고

엄마가 사는 정읍으로 내려왔습니다.


한동안은 미친 듯이 산을 탔어요.

내장산 8봉을 넘나들고,

선운사며 용궐산까지 숨 쉬듯 걸었습니다.

자연이 주는 위로에 취해 그렇게 살았죠.


물론, 통장 잔고도 술술 줄어들었습니다.

현실은 냉정했고,

결국 다시 일을 해야 했죠.


그래서 정읍에 직장을 구하고,

내장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아파트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복잡한 걸 싫어하는 제 성향에 딱 맞았어요.

아침이면 베란다 창 너머로

웅장한 산들이 손짓하듯 다가오고,

상쾌한 공기와 햇살이 인사를 건네주었죠.


그러나,

뜻밖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음식 배달이 안 된다는 것.


너무 외진 곳이라

근처 편의점 말고는 음식점이 없었어요.

도시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모든 게 집 앞까지 왔는데,

여긴 차를 몰고 20분은 나가야 뭐라도 먹을 수 있더라고요.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는

‘자연이 주는 배부름이면 충분하지’

‘허기쯤이야 참으면 돼’

‘이참에 다이어트도 하고, 건강한 밥 해 먹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저녁마다 TV에 나오는 음식은 왜 그리 많고,

왜 그렇게 먹음직스러운지요.

특히, 피자.

치즈가 잔뜩 올라간 페퍼로니 피자...


결국 욕망과 실랑이 끝에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

인스턴트 피자를 집어 들었습니다.


오븐을 예열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맛있을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러다 결국 다음 날,

퇴근하자마자 정읍 시내 도미노피자로 갔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메뉴였지만,

너무 맛있어 보여서 시켰죠.


제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자 한 판.

왜 그렇게 행복하던지요.

배부르게 먹고 남은 조각을 포장해

퇴근길에 들고 돌아오는 길,

기분까지 포장돼 따라왔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죠.

“수연아… 넌 이걸로 다이어트 끝이야.”

스스로에게 하는 질책을

애써 무시하며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다이어트란 그런 거야.

그렇게 실패하면서, 또 하는 거지.



✍ 작가의 한마디...

“삶의 리듬을 바꿨다고 해서 배달의 욕망까지 바뀌진 않더라고요.
도시의 번아웃 끝에서 시골의 피자 한 조각으로 웃게 된 어느 날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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