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풍경
요즘 물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지역농산물 판매장을 가도 장바구니가 자꾸만 가벼워집니다. 3일 만에 가면 대파값이 또 올라있고, 딸기나 참외는 제철 과일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비쌉니다. 생선은 안 산 지 한참 되었고요, 차라리 할인 돼지고기가 가성비로 장보기에는 만만하게 되었어요. 장보기가 겁이 나 더 싸게 파는 데를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5일장 서는 날이라 오후에 장터에 나갔습니다. 채소, 과일, 생선 물가가 예년에 비해 워낙 비싸다 보니 5일장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고 가게 되었어요. 날씨도 화창해서 장이 북적북적거릴 것을 상상하면서요.
알록달록한 파라솔과 천막을 친 난전 사이를 가다 보면 군데군데 물건 실은 트럭들이 곁에 있고, 진열한 물건들을 사고파는 풍경은 들어서기만 해도 풍성함이 느껴집니다. 애초에 무얼 사겠다는 생각 없이 와도 한두 가지는 손에 쥐고 가게 되지요.
보통은 어깨를 비껴 걸으며 장 보러 나온 다른 사람들은 무얼 사나 하고 옆에서 구경도 하고, 지금 철에는 뭐가 나왔나, 가격은 얼마나 하나 하면서 장터를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장바구니에는 생각지도 안 했던 물건들도 담기게 되고, 사려고 했던 물건은 여기저기 비교해 보느라 사지 못하다가 다시 돌아가서 사기도 하지요. 다리가 슬슬 아파오고 지쳐 올 때쯤, 장날 트럭횟집에서 회 한 접시나, 핫도그, 호떡 하나 사 먹으면 발품 판 보람과 장날의 맛이 푸근히 밀려오지요.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적습니다. 같은 자리에 전을 펴던 사람들도 줄어든 것 같고, 장 보러 나온 사람들끼리 어깨 부딪히는 일도 없네요. 들떴던 기분이 좀 차분해져 버렸습니다. 화개 한 봄이라 꽃놀이들 갔나 싶기도 하고, 오후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길게 늘어선 난전을 눈요기하면서 가다가 민물고기 트럭 앞에 섰습니다. 양동이에서 활발하게 물을 차며 우글우글거리고 있는 물고기들을 보게 됐지요. 메기였습니다. 메기란 놈이 요렇게 매끈하고 활발한 것인지,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입니다. 다른 때는 그냥 지나쳐 갔겠죠. 쳐다보고 있으니까 아저씨가 싸게 드린다고 사라고 합니다. 메기매운탕을 끓여본 적도 없는데, 하필 그 순간 메기매운탕을 좋아하는 아들 생각이 나버렸습니다.
1킬로 1만 5천 원이오. 물건 좋아요.
잡아주나요.
바로 잡아드려요.
그럼 1킬로 주세요.
물고기아저씨 손놀림이 무척 빠릅니다. 채로 건져 올려서 달아보는데 1.5킬로쯤 됩니다. 아저씨가 약간 망설이다가 그대로 손질을 해 줍니다.
펄떡이는 메기 대가리를 거꾸로 잡고 칼로 대가리 밑을 스윽 베니, 붉은 피가 흐르고 팔딱이던 꼬리가 축 처집니다. 그 모습을 보니까 괜히 샀나 싶은 갈등이 슬 생깁니다. 눈앞에서 피 흘리며 죽는 걸 보니 어쨌건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아들 먹일 것과 너의 생명 사이, 나로선 늘 어려운 이중적인 마음이 됩니다.
오늘 장사가 잘 안 됐던지 물고기아저씨 표정이 좀 무거워 보였는데, 그사이 다른 이가 와서 논고둥 가격을 물어보네요. 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메기를 받아 들고 과일점으로 갑니다. 딸기, 사과, 참외, 오렌지, 칠레포도, 배 등등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딸기를 보고 있으니까 젊은 아저씨가 바로 흥정을 해 옵니다.
한 통에 8천 원 팔던 건데, 두 통에 8천 원만 주고 가져 가요. 맛이 기막혀요.
그 바람에 덜렁 샀습니다. 좀 싸게 샀다 생각하니 다른 과일에도 눈이 갑니다. 가격을 물어보기만 해도 상인들 특유의 빠른 손놀림으로 벌써 봉지에 담아버립니다.
아기 주먹만 한 사과 한 봉지 10개 1만 원, 쪼끄마한 못난이 참외 7개 만원.
지역농산물 판매장이나 대형마트보다는 싸고 흥정과 덤이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손이 무거워 그만 사야겠습니다.
이런 게 장 보는 재미지 하며 호떡 가판대 앞을 지납니다. 옆자리 더덕 파는 아주머니가 '오늘 호떡집만 불났네' 하며 부러워합니다. 좀 젊은 아줌마는 호떡을 굽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옆에서 핫도그를 튀겨내는데, 두 사람은 서로 무뚝뚝해 보이지만 은근히 서로를 챙깁니다. 서서 일을 하니 힘들겠지요. 아저씨는 소주를 한 잔 따라서 아내에게 권하고, 그 옆의 더덕 아주머니에게도 권합니다. 그리곤 마음 놓고 본인은 두 잔 합니다. 아들과 호떡을 사 먹으며 흐뭇하게 웃었던 겨울처럼 오늘도 이 내외는 무던한 다정함이 있네요.
그래도 오늘은 장터가 쓸쓸해 보입니다.
지역사랑 상품권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사서 장보기를 하니까 장날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요새는 작년이나 겨울에 비해서 소비를 덜 하나 봅니다. 둘러봐도 상인들 앞이 썰렁합니다.
5일장 구경이 좋아서 다른 지역으로 장날 여행을 더러 했었습니다. 주로 강원도 장날을 갔어요. 정선 5일장, 태백 통리 5일장, 단양장, 평창 대화장, 영월장 등. 그중 정선장이나 통리장은 워낙 유명하지요. 먹거리, 볼거리, 사람구경 등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꼭 그 지역 특산물 두어 개쯤은 손에 들고 오게 돼요. 집에 와서도 장터의 여운이 남아 다음엔 더 멀리도 가보자고 하기도 했지요. 그때가 좋았어요.
살다가 힘이 빠질 때, 타인의 활력 속에 서 있고 싶을 때,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얻는 데는 5일 장만한 것이 없지요. 구경만으로도 잠시 나를 떠나게 됩니다.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가진 지역 5일장, 전통시장에 가면 그 지역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서 이렇게 살아도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5일장은 그런 활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물가 때문에 힘든 시기여서 장날의 사람들도 많이 힘든가 봅니다. 장 서는 날을 기다려 풍성하게 장바구니 채우며 팔 아프다 하면서도 웃고, 또 과소비했네 하며 핫도그 한 입 먹으며 웃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