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기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짐을 찾으러 나섰다. 짐을 찾는 곳에서 우연찮게 같은 열 복도 측에 앉으셨던 아주머니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동생분이 프랑스에 거주 중이라 놀러 온 거라 말하며 나의 여행에 대한 궁금증도 드러냈다. '이번이 두 번째 프랑스예요. 지난번에는 미성년자 때 온 것도 있고, 고작 3일밖에 머물지 못해 이번엔 국경일을 포함해 9일 정도 있으려고요. 근교 여행도 다니고요.' 쫑알쫑알 신이 나 말하는 나에 그녀는 인자하게 웃으며 한창 좋을 때라는 말을 해주셨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담고 가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다 짐을 함께 찾고 서로의 여행이 즐겁기를 빌어주며 아쉬운 이별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이번 여행의 첫 이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내부에서 빠져나와 구글 지도를 보며 지하철을 찾아 나서던 길. STAIN 표시 말만 보고 가면 된다는 블로그의 정보에 무작정 기차 모양만 보고 쭉 직진했다.
기차역으로 가던 길 촬영한 사진이다. 놀라운 것은 이때 가 저녁 여덟 시였다는 것이다. 해가 안 진다. 이게 말이 되나. 열 시 이후가 되어서야 지는 여름 유럽의 해는 여행 끝무렵에 가서야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첫날에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생소한 풍경이었다.
창 너머의 작렬하는 햇빛에 연신 감탄하며 쭉쭉 나아갔다. 많은 열차가 통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공간에 이르러 나비고(NAVIGO) 단어를 찾아 나섰다. 두리번거리다 어렵지 않게 단번에 찾을 수 있었다. 찾는 방법은 진짜 간단하다. NAVIGO라는 단어만 찾으면 된다.
¿ 나비고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ㄴ 나비고란 파리의 교통카드이다. 나비고를 구매하면 일주일 동안 그 카드로 파리의 모든 라인의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다. 나비고에는 나비고이지 와 그냥 일반 나비고가 있다. 나비고이지와 나비고의 차이는, 나비고는 베르사유 디즈니랜드 등등 더 넓은 범위를 갈 수 있는 반면 나비고이지는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유의해야 하는 것은 나비고를 구매하면 일주일, 즉 7일 이용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수요일에 구매하면 일요일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월요일에 구매해도 일요일까지 수요일에 구매해도 일요일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해서 금요일에 도착한다면 전혀 나비고를 구매할 필요가 없다. 1회 이용권인 카르네가 있으니 카르네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으로 보인다. 본인은 그 주 주말에 디즈니랜드를 갔기에 나비고 카드를 구매하였다. 가격은 보증금 5유로와 22.8유로였다. 한국돈으로는 약 3만 6천 원 돈인 셈이다.
나비고 카드를 발권받은 이후 B라인을 탑승했다. 숙소가 내가 착륙했던 샤를 드 골 공항과 같은 B라인 'Gentilly'역이라 천만다행이었다. 별다른 환승 없이 그냥 단번에 쭉 갈 수 있었다.
숙소 가던 길 찍은 차창 너머. 이때 백팩을 앞으로 꼭 끌어안고 캐리어 칸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는 캐리어에서 눈을 떼지 않기 위해 얼마나 긴장 상태였는지. 오랜 비행으로 피로가 쌓여 잠이 몰려옴에도 마음대로 잘 수 없었다. 파리 지하철이 악명 높다며 주의를 준 경험담을 다룬 글들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형용할 수 없는 이국적인 향이 코끝을 찔렀다. 정말이지 너무 진하고 생소한 타국 사람들의 향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이건 나만이 겪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여행하며 만난 한국인들은 입 모아 이곳 사람들의 향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얼마나 다를지에 대해 말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맡아보지 못할 법한 향이라 모두가 내심 놀랐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입으로 간신히 호흡하며 홀로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자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각종 상황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되었다. 갑자기 낯선 이거 나를 붙잡아 내 가방을 터는 상상. 나를 차도로 밀어버리는 상상. 위아래로 훑으며 비아냥거리는 상상. 극도로 경계 상태였던 나는 안 좋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편견이야. 너는 이 나라를 아직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잖아. 되뇌어봐도 낯섦으로부터 생성되는 두려움은 온몸을 지배했다. 하필이면 짐칸에 둔 나의 캐리어가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소란스럽게 구는 바람에 더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런 나를 안온하게 녹인 것은 저녁시간이 다 되어도 밝은 바깥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오후 다섯 시 무렵의 햇빛이었다. 이대로 파리의 밤은 보지 못하는 건가... 근데 이곳의 하늘은 정말 예쁘다. 전체적으로 색감이 굉장히 채도 높은 나라였다. 연달아 열리는 문 틈 사이 보이는 각종 역의 모습에 넋 놓고 감탄하다가도 마냥 막막했고, 그럼에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백팩을 꼭 끌어안았다. 내 귀중품... 안돼... 아무도 못 가져가... 손잡이에 단단하게 채워둔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가장 강렬히 든 생각은, "목마르다..."였다. 아주 대차게 망해버린 것이다. 숙소가 있는 동네의 유일한 마트는 오후 9시에 닫는데 숙소에 도착했을 무렵은 아홉 시가 한참 지난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날 물을 마시지 못한 것에 대한 여파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9일 동안 머물 에어비앤비였다.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정원이다. 다정한 백발의 노인이 정원 한편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을 법한 공간이었다. 숙소는 파리 외곽에 존재했다. 외곽에 잡은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이 파격적으로 저렴했고 호스트에 대한 평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묵을 장소는 왼쪽의 별채였다. 안으로 파고들어 짐을 풀 때까지도 파리의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지 않았다.
숙소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생각보다 넓고 시원시원해서 놀랐다. 아주 빈티지하고 아늑하다. 생각보다 서늘했지만 여름의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방에는 세로로 긴 창이 있어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제법 낭만적인 분위기가 자아졌다. 캐리어에서 잠옷과 세면도구만 꺼내 들어 샤워를 하고 머리 말린 후 그대로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진심으로 너무 목이 목말라서 수돗물이라도 마셔야 하나 고민했는데 마시고 탈이 나 앞으로의 여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느니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자야겠다 싶었다. (이로 인해 여행 내내 물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것은 훗날의 일이다.)
한국에서 나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연락을 넣고 찍은 사진을 하나둘 헤아려 보다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여전히 그날 자기 전의 감각이 생생하다. 새하얀 이불의 부드러움과 은근한 목재 냄새 베인 방의 향취까지. 그렇게 여행의 첫째 날은 저물었다.
아, 그리고. 엄마 아빠 미안해. 친구랑 간다는 건 거짓말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