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기
스물하나. 생소한 이름을 지닌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덮쳤다. 스무 살 당시 아무런 탈 없이 대학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으나 겨울방학이었던 2월, 고등학교 친구들과 약 2주 간의 태국여행을 앞두고 있던 내게는 반가울 리 없는 팬데믹이었다. 항공권과 숙소, 그 외 각종 스케줄을 취소하고 나니 남은 것은 공허함뿐이었다. 연유 모를 적적함을 채우기 위해 스물하나 여름 한가운데 홀로 제주도를 3주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한 달 살기를 하기엔 한 달은 너무 길어 보여 나름 절충하여 3주로 축약한 것이었다. 여름옷 여러 벌, 노트북. 선물 받은 미러리스 카메라를 지녀 그렇게 훌쩍 떠났다. 제주도에서 약 2주 동안 홀로 지내며 여실히 느낀 것은, 나는 혼자 여행하면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2주 차가 되어 친구들이 4박 5일로 내가 묵고 있는 지역에 와 함께 놀게 되었을 때 느낌은 확신이 되었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혼자 다니는 것보다 몇만 배는 더 즐거웠다. 비 오는 날에도 즐거웠고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현실도 기꺼웠다. 홀로 우중충하게 혼자 거닐던 지난 2주에 비하면.
그래서 이번에도 친구랑 같이 가려했단 말이다. 정말이다. 나는 진짜 혼자 여행하기가 싫었다. 하지만 여름방학 중 3주씩이나 여행을 위해 일정을 비울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그러면 그냥 혼자 간다고 하고 가면 되지 않느냐 싶겠지만, 혼자 여행 간다 하면 절대 허락해주지 않을 부모님을 알았다. "나 혼자 유럽 갔다 올게!"라고 했을 때 "그래! 잘 다녀와!"하고 선뜻 나의 여행을 기꺼워하실 분들이 아니란 말이다. 제주도 여행 당시에도 그랬다. 가기 전에는 친구들과 간다는 사탕 발린 말을 하고 다녀와서 약 한 달 후에야 허허실실 웃으며 털어놓았다. "나 제주도 간 거 그거 혼자 갔다 온 거였어." 엄마는 한참 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아빠는 이마를 짚고 헛웃음을 터트리셨다. 그래. 이런 식이 었다. 이들의 애정이 지나친 염려로 다가오는 느낌에 어느 순간 나름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적정하다 생각되는 선에서 합의를 본 뒤 거짓을 고했다. "엄마. 아빠. 유럽 좀 다녀올게. 걱정 마. 동기 친구랑 같이 가는 거야." 여전히 그들은 내가 대학 동기와 여행을 다녀왔다고 굳게 믿고 계신다.
그렇다고 진정으로 혼자 여행한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했듯 나는 혼자 여행하는 재미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해서 실은 부모님에게 거짓을 고하던 그 시각, 열심히 유럽 여행자들의 성지 네이버 카페 '유랑'에서 동행을 찾고 있었다.
스물 중반 여자고요, 파리, 포르투갈, 스페인을 갈 거예요. 여행을 함께할 여성 동행 구해요.
여행 수개월을 앞두고 구하기 시작한 동행이었다.
숱은 인연과 서로 일정을 묻고, 조율하고, 낙담하던 찰나. 고전 끝 드디어 끝 프랑스 동행 언니와 포르투갈/ 스페인 동행을 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프랑스 동행 언니는 제제. 포르투갈, 스페인 동행 언니는 밍밍 언니라 지칭하겠다. 여행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일정을 짜고 함께 티켓이나 패키지여행 등을 예약하며 다른 누구보다 연락이 잦았던 그녀들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프랑스 동행 언니인 제제 언니는 나보다 삼일은 더 일찍 비행을 시작했어야 했고 이틀은 더 먼저 파리에 도착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제 언니의 악몽은 여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본래 제제 언니는 나보다 더 일찍 파리에 도착해 개인 일정을 즐길 예정이었다. 내가 합류한 다음에는 함께 근교 여행을 하기 위해 파리 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 왕복표와 콜마스에서 호텔을 1박 예약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가 이용하는 항공사에서 돌연 막무가내로 비행시간을 바꾸어버리는 바람에 경유지에서 경유하여 타야 하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목도한 소식에 좌절하기도 잠시, 새벽부터 대낮까지 외항사에 연락을 취하며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보려 했다는 제제 언니에 측은심이 피어올랐다. 잠도 못 자고 꼬박 몇 시간을 일처리 늦은 그이들에 의해 애걸복걸했단다. 심리적으로 너무 고됐던 탓에 심지어 여행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그녀에 우는 소리를 내며 애원했다. 나 혼자 보내지 마... 나 진짜 안돼... 혼자 여행하는 건 내 계획에 없던 거였어... 난감하다는 듯 웃던 제제 언니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가장 가까운 날짜의 비행으로 비행 일정을 바꾸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그녀가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불행은 나보다 하루 더 늦게 도착한다는 사실이었다.
해서 하는 수 없이 계획과 달리 나는 먼저 파리에 도착했고, 언니는 나의 여행의 두 번째 날 저녁 합류하기로 된 것이었다.
파리에 먼저 가있는다던 그 친구는 잘 도착했냐는 엄마의 물음에 눈을 피했다.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연신 마음을 건드리는 모난 모서리의 감각을 무시하려 애썼다. '거긴 생각보다 덥대.' 이 정보는 이미 일주일 전 프랑스에 도착해 남부 여행을 즐기던 밍밍 언니로부터 전해 들은 정보였다. 대학 동기와 여행을 다녀온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었다. 그들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큰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여행이 끝나고도 한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가 대학 동기 친구와 여정을 함께 했다 믿고 있으니 말이다. 배신감에 치를 떨 수도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알아줬으면 한다. 나는 어엿한 성인이라는 것을. 물론 세상에는 위험천만한 것들이 넘쳐나며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인해 깨지고 상처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발 내디딜 용기조차 못 내는 상황이야 말로 내게 있어 정말 위험하며 해롭다고 생각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와 긴 여행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은 그간 발생할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질 준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발생할 모든 필연적인 사건과 그로 인해 겪게 될 감정의 여파는 오롯이 내 몫이었다. 이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발생할 나의 붕괴를 위함이었다. 부모의 품에서 안주하느니 무너지고 다시 기립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다. 내게는 그런 순간들이 필요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내게 더 마음에 드는 내가 되기 위해. 더 성장하게 될 기대가 되는 나를 위해. 그런 이유에서 나는 거짓을 고했다.
엄마, 아빠, 거짓말해서 미안해. 근데 나는 이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남김없이 사랑했어. 그리고 이 여행을 하고 온 내가 더 마음에 들어. 그러니 거짓을 고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인정해주기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