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파리에 온 걸 환영해

파리,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기

by 유한성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본래 2일 차부터 제제 언니와 1박 2일로 파리 근교인 스트라스부르와 콜마르를 여행할 예정이었다. 우리 둘 다 지난 파리 여행 때 근교를 여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제제 언니의 비행이 불가피하게 늦춰졌고, 본격적인 여행 초입부터 홀로 가장 큰 도시가 아닌 외곽으로 간다는 것에 큰 부담을 느낀 나는 호텔과 왕복 기차의 예약 취소를 하였다. 어차피 파리라는 도시 그 자체에 머무는 기간이 짧다 느껴졌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하루 동안만이라도 파리 도심 여행을 함께 할 동행을 구했다. 유랑에서 닿은 인연은 계기로 채팅을 이어 나간 동행과 나는 아침에는 각자 방문하고자 했던 미술관을 관람한 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일전 프랑스에 여행하러 왔을 적 루브르 박물관에 갔었기에 이번에는 오르세 미술관에 가기로 했고, 그녀는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렇게 둘째 날 아침이 밝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보고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간단하게 셀카를 찍어 보냈다. 일어나자마자 목이 찢어질 것 같이 이는 갈증에 다급하게 채비를 한 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 주변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동화 같은 숙소의 철창 사이의 문을 열고 나서면 고즈넉한 동네를 감상할 수 있었다. 파리 중심이었다면 그런 소박한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했을 테다. 이날은 유독 하늘에 구름이 잔뜩 껴 있는 날이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가방을 앞으로 메고 핸드폰 스트랩을 단단히 손목에 껴 잔뜩 긴장한 상태로 동네를 활보했다. 마트에서 어설픈 소통을 통해 500mL짜리 생수를 두 병 구매해 그중 한 병은 그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다. 나머지 한 병을 소중하게 가방에 품은 뒤 출발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근데 웬걸. 나비고 인식이 안 되는 것이다. 첫날부터 내게 왜 이러는지. 어제 분명 공항에서 3만 6천 원이라는 나름의 거금을 들여 구매한 건데 어째서 인식이 안 되는지. 우왕좌왕하며 다시 단말기에 카드를 대보기도 하고 지하철 바로 옆 역무원과 연결되는 전화기를 집어 들어 재차 통화를 시도해보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연락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러지 마요. 나 오늘 본격적인 여행 첫날이란 말이야. 바로 옆이 나비고 카드 충전하는 곳이니 사람들이 많이 오가 눈치가 보여 다시 구석에 기댄 채 여행 커뮤니티에 질문 글을 올렸다. 이게 맞나요...? 그 아래로는 친절한 답글이 달렸다. 그럴 때 종종 있어요. 그럴 때가 종종 있다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결국 체념했다. 무식하게 무작정 카드를 찍어보기로 한 것이다. 인적이 드물 때 찍고 또 찍고. 그렇게 30분 동안은 거듭 카드를 찍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기가 가득 찬 풍선 같은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갑자기 동네에 등장한 동양 여자 하나가 기계처럼 나비고를 찍어대는 광경이 현지인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제발 속으로 비웃지나 않길 바랄 뿐이었다.


이곳은 결단코 잊을 수 없는 Gentilly 역이다. 일정을 시작할 무렵 늘 눈으로 담고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서 숙소로 돌아올 때도 눈으로 사진 찍듯 담았던 곳이었다. 여행의 시작에서 비롯된 감정인 설렘과 기대. 여행의 끝 무렵 느낀 지침과 숙소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의 감정이 양일 담긴 공간이었다.


실은 파리 여행하는 동안 묵었던 숙소는 제제 언니는 이미 잡아둔 숙소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합류해 함께 숙소를 셰어 하게 된 경우였는데, 그녀가 굳이 굳이 파리 외곽으로 숙소를 정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일단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숙소 사진이 언니의 마음에 쏙 들었다 했다. 정원이 있는 숙소인 데다 내부는 빈티지풍이니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창 여행길이 열려 파리의 숙소 값이 미친 듯이 치솟고 있던 그 와중에 우리의 숙소는 아주 합리적인 가격이었다. 이곳은 하루에 인당 3만 원 후반 정도의 숙박비만 요구했다. 파리 중심지 숙소 1박 가격이 기본 20만 원 이상이었으니 합리적이다 못해 아주 이득을 보는 셈이었다. 파리 도심까지 적게는 20분, 많게는 40분 거리였으니 교통적인 면에서도 명백하게 좋은 곳임은 틀림없었다.


물론 파리 숙소를 구할 때 염두에 두면 좋을 점이 여럿 있긴 하다.


¿파리 숙소 구하기?


일단 파리는 구역이 1구부터 20구까지 나눠진다. 1구부터 달팽이 집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특이한 경로로 구역이 나누어지는데, 한국인들은 에펠탑 뷰를 자랑하는 7구와 15구. 샹젤리제 거리와 가까운 8구와 16구. 파리 중심지인 1구와 6구에 위치한 숙소를 선호한다고 한다. 일단 대체로 관광지와 가까우며 안전이 보장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당히 안전하면서도 숙박 비용을 아끼고 싶은 이들은 13구, 14구, 16구, 17구 주변 숙소를 찾기도 한다. 대체로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곳은 북쪽인 10구, 18구, 19구, 20구이다. 일단 이쪽으로는 갈 일이 별로 없다.


우리 숙소가 위치한 곳은 14구 조금 아래에 위치한 파리 외곽이었다. Gentilly역 근처는 묘한 고즈넉함과 아늑함의 분위기가 풍겼다. 파리에서의 모든 여행의 대개 Gentilly역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발음으로는 '장띠히'역. 개나리색의 타일. 푸른 하늘. 곡선으로 휘어진 철로. 이날의 시작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여러 번 동선을 확인한 뒤 지하철에 올라탔다.


한 번의 환승을 거쳐 내리면 정수리 위로 오르세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아이콘이 새겨진 표지판이 보인다. 뮤세 드 오르세. 그리고 Sortie. 프랑스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본 단어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de'는 '-의'를 뜻하며, 'sortie'는 '출구'를 뜻한다. 파리 여행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Sortie'만 찾으면 자연스럽게 몸이 그쪽으로 향했다.


출구 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오르세 미술관의 외관을 볼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은 과거 커다란 기차역이었던 공간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뒤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시계들이 건물 곳곳에 콕 박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리에 있는 미술관들만 다 관람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는 자타공인 예술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미술에 딱히 큰 뜻이 없었다. 미술사를 배운 적은 있으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그 시대의 사조를 떠올려 대조해볼 만큼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러니 내게 오르세 미술관 방문은 꽤 의무적인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참 익숙한 작품이 많아 반가웠다. 교과서나 미술사 책에서 쉬이 발견되는 작품이 떡하니 전시된 것을 보며 내가 정말 프랑스에 오기는 왔구나, 싶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한 결정적인 이유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고흐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색감과 텍스쳐를 가장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흐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날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이 빛나는 밤에‘가 출장(다른 나라 미술관으로)을 갔다는 것이었다. 언제 다시 파리를 올지도 모르는데 보고 싶던 작품을 관람할 수 없어 사뭇 마음이 안 좋았으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쉬운 마음을 갈무리하고 반 고흐의 다른 작품들을 눈여겨보았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반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오묘한 색으로 이루어진 그것은 나의 눈길을 한동안 머물게 하였다. 파도의 결처럼 생생한 붓 터치에 휩싸인 그는 마치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파리에 온 걸 환영해. 너의 여정을 응원해. 마주한 두 눈이 그렇게 말해오는 것 같았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한 또 다른 이유는 커다란 시계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미술관 감상을 한 뒤 어기적어기적 걸어 시계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에는 예약이 필수적으로 보이는 레스토랑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 돌려봐도 저리 돌려봐도 온통 이국적인 언어들과 이국적인 외양들뿐이었다. 여기서 사진 남기고 싶은데... 우물쭈물하며 마냥 응시만 하던 그때, 마침 반가운 고국의 언어가 귀를 파고들었다. 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친구들끼리 여행을 온 듯 보이는 여성 두 분에게 다가섰다. 혹시 사진 찍어주실 수 있나요? 제가 혼자 와서요... 저도 두 분 찍어드릴게요! 간절한 나의 요청에 그들은 흔쾌히 나의 핸드폰을 건네받아 사진을 몇 장이고 찍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두 분 역시 열심히 찍어드렸다.


파리와 아직 친해지지 못한 한때 남긴 최초의 기록.


오르세 미술관을 조금 더 둘러보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밖의 하늘은 더 어두워져 있었다. 지난번 파리 왔을 때랑 다를 게 없네.라고 생각했다. 지난번 파리는 겨울에 왔기 때문에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웠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르세 미술관의 외관을 아무리 열심히 촬영해보아도 날씨 덕에 그 분위기가 도통 담기지 않았다. 날씨 요정이 다른 나라를 갔나. 결국 카메라를 끄고 버스 타러 갔다.


구글 지도를 이용해 버스 탑승해야 할 곳을 확인한 뒤 그곳으로 가면 버스 정류장에 한국처럼 스크린을 설치해둬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을 알 수 있다. 새삼 시설이 많이 윤택해졌다 느꼈다. 예전에 왔었을 때는 의무적으로 투어리스트를 위한 팸플릿을 손에 하나씩 쥐고 다니고 노선도를 종이로 들고 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센강 너머의 오르세 미술관을 눈에 담으며, 러닝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기다리다 보면 버스는 도착한다. 나비고를 찍어 탑승하고 운행 경로를 확인하고 목적지에서 내리면 된다. So easy! 파리의 버스는 인상적이었다. 지하철보다 좋았다. 기존 프랑스 대중교통에 대한 인식이 마냥 좋지마는 않아서 그런지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앉는 자리가 적은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장애인들의 원활한 탑승을 하려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배치되었다는 점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왜 이렇게 앉을자리가 없냐며 속으로 하소연하던 과거가 수치스러울 따름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루브르까지는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두 세 정거장을 가서 하차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박적으로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며 유리로 된 피라미드를 찾아 나섰다. 이동하던 중 마주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잠시 감상하고, 붉은 드레스를 입고 스냅 촬영하는 여성을 신기하게 지켜보고,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을 보며 옅게 웃음 지었다. 유럽풍의 건물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그런지 전부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날씨가 구려도 파리는 파리구나. 나 정말 파리에 왔구나.


아직 루브르 박물관 내부를 관람 중이라며,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냐는 동행의 부탁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 응답했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는 줄이 굉장히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알기로 루브르 박물관은 별도의 예약을 필수로 해야만 입장할 수 있었다. 독특한 피라미드 외관을 배경 삼아 사진 촬영하는 이들을 응시하다 나도 핸드폰을 꺼내 들어 셀카를 여러 장 찍었다. 하지만 욕구는 충족되지 않았다. 전신이 다 나온 사진을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었다. 분수대 옆에 걸터앉아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고 점점 더 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응시했다. 그때 마침 누군가가 나를 불러왔다. 흑발의 외국인이었다. 그는 내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전신 촬영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의 사진 촬영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그는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지닌 사람이었다. 남자치고 하이톤의 음성을 지닌 그는 홍홍홍 웃으며 어디서 왔냐 넉살스럽게 물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대답했다. 그는 호주에서 왔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했다. 나와 같은 처지였다. 루브르 박물관 옆에서 별안간 외국인이랑 손발 다 써가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그는 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좋은 여행 되라는 말과 함께 떠났다. 기분 좋게 그가 찍어준 사진을 보았다. 비율이 4등신처럼 나왔다.


머지않아 하루 동안 함께 여행하기로 한 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몰타에서 어학연수 중 여름 방학 동안 유럽 여행을 다니는 중이라 했다. 여전히 몰타에서 어학연수 중일 테니 '타타'라 부르겠다. 타타는 루브르 박물관 앞을 떠나기 전 내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나의 전신사진도 찍어주었다. 타타가 찍어준 사진은 8등신처럼 나왔다. 그전에 찍어준 사진과 대조해보며 감탄하자 타타는 말했다. "전신사진은 한국인이 제일 잘 찍는 것 같아." 동의한다. 하지만 괜찮다. 그는 참 좋은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