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스본, 스페인 여행기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타타와 나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굶주린 배를 채우기로 했다. 타타도 나도 공복이었던 탓이었다. 타타는 알아본 음식점이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현지인 맛집이라며 나를 이끌고 온 공간이었는데, 그녀의 말처럼 그곳에서는 프랑스어만 들렸다. 인터넷에서 각종 인종차별 글을 보고 와서 그런지 잔뜩 긴장하고 경계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예상외로 웨이터는 아주 친절했다. 우린 그로부터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메뉴판은 잠시 미뤄두고 다시금 구글 지도를 켰다. 음식점 리뷰를 클릭하면 몇몇 이들은 사진을 첨부해 글을 업로드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도통 읽을 수 없는 글씨들 사이 이미지는 한 줄기 빛 같은 존재였다. 타타와 나는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들로 콕콕 집어 주문을 완료했다.
파리의 가장 좋은 점은 식전 빵과 감자튀김이 무료인 곳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점심을 먹은 곳의 식전 빵은 잇몸이 아플 만큼 딱딱했다. 그래도 공짜니 손해 본 것은 아니었다. 잠자코 기다리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타타와 나는 열심히 사진을 촬영하고 티본스테이크를 먼저 정성스럽게 잘라 입안에 넣었다.
"언니. 소스가 미쳤어. “
타타가 말했다. 그렇다. 소스가 미쳤다. 고기의 굽기도 아주 좋았으나 소스가 정말이지 너무 환상적이었다.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기대 가득 계란 베이컨 요리를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타타와 눈이 마주쳤다. 타타는 조용히 계란 요리를 내 쪽으로 밀었다.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많이 먹으라며 그녀 쪽으로 접시를 밀어주었다. 장난스럽게 실랑이 중이던 와중 상냥한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가 웃으며 입맛에 맞냐고 물었다. 우리는 기계처럼 웃으며 따봉을 날렸다. 결국 티본스테이크는 거의 다 비우고 계란 음식은 다 비우지 못한 채 가게에서 일어나 다음 장소로 향한 우리네들이었다.
밥을 먹으며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행선지를 개선문 쪽으로 정했다. 개선문에서 사방으로 뻗어지는 길거리 중 하나가 샹젤리제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에 탑승해 개선문에 도착한 우리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다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었다. 흐린 날씨인 것은 안타까웠지만 점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다인종의 사람들이 길거리를 수놓았다. 나는 정말 파리의 중심에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 쪽에서 타타는 고심 끝에 키링을 구매했다. 그 후 우리는 한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 중 하나라는 '몽쥬 약국'으로 향했다.
몽쥬 약국은 신기한 곳이었다. 일단 한국인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 중이라 제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어 물어보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몽쥬 약국이 유명한 이유는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는 비싼 제품을 좀 더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 문제점은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도 안 살 제품을 사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바로 신속항원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프랑스 out이 아니었기에 프랑스에서 신속항원을 할 필요가 없었다. 타타가 추천해준 제품과 한국에서도 즐겨 쓰는 립밤, 엄마의 선물까지 사고 나서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향한 곳은 빵집이었다. 하도 걸어 타타도 나도 지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에끌레어 하나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실은 기대가 컸다. 프랑스는 디저트의 나라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끌레어를 한 입하고 숙연해졌다. 안타깝게도 파리 첫 디저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맛나지 않았다. 커피도 마찬가지였다. 널리 알려있듯 프랑스의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아이스커피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카페 역시 아이스는 없다며 무조건 핫 커피만 가능하다 했다. 하는 수 없이 핫 커피를 시켰고 그것을 의무적으로 해치워야만 했다. 괜찮아...! 나쁘지 않았어...! 앞으로 디저트 더 맛 볼 날이 많다...! 라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전달했다. 카페에서 체력과 카페인 충전을 한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일곱 시에 바토 파리지앵을 예약해뒀기 때문이었다. 바토 파리지앵은 센강을 가로지르며 온갖 관광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승선이다. 마음 같아서는 해가 다 지고 난 뒤 야경과 함께 감상하고 싶었으나 그곳의 해는 저녁 11시가 돼서야 완전히 지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저녁을 먹기 전 탑승하기로 했다.
바토 파리지앵을 타러 가는 길에 에펠탑이 있었다. 타타와 발맞추어 걷다가 문득 에펠탑을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날씨는 구리지만. 곧 비가 올 것 같지만. 바람도 잔뜩 불어 모래 바람이 일었지만. 나와 에펠탑의 첫 만남이었다. 파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것. 에펠탑. 웅장하게 기립해 있는 그것을 잠시 멈추어 응시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이 고철 덩어리가 대체 뭐길래, 사람 기분을 참 이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유롭게 에펠탑이나 올려다볼 시간이 없었다. 바토 파리지앵을 탈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거의 뜀박질하듯 걸어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온갖 사람들 사이에 뒤섞여 거의 마지작으로 배 위에 올라탔다. 바토 파리지앵은 강을 헤엄치는 뱀장어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센강은 그로 인해 물살이 여러 갈래로 찢어졌고, 승선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는 낯선 언어가 진동이 되어 다가왔다. 양옆으로 파리 고유의 건축 양식이 펼쳐졌다.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어 머리카락이 뒤엉켰지만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바토 파리지앵의 장점은 바로 단기간에 파리의 중요 관광 명소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배를 타고 가만히 앉아 있자면 스피커에서는 지금은 어떤 곳을 지나가고 있으며, 이 공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에펠탑, 각종 미술관, 다리, 노트르담 성당 등등. 한 시간이라는 압축된 시간 안에 눈으로 도장 찍듯 장소를 볼 수 있었다. 단점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친다는 거였지만.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속전속결로 관광 명소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토 파리지앵을 타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것이냐 묻는다면 특별한 관광 명소가 아닌 센강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사람들이라 말하고 싶다. 센강 양 옆의 가장자리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어떤 이들은 모여 앉아 맥주 캔을 부딪혔고, 어떤 이들은 호화로운 선상 위에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센강 둔치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리였다. 계단식으로 무대처럼 되어 있어 그 형태가 다섯 공간으로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각기 다른 연령대와 다른 스타일의 무리가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다섯 구역의 각기 다른 사람들은 다 다른 스타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자유롭고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알까. 그들이 퇴근 후 누리는 찰나의 낭만이 누군가에게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영롱하게 반짝인다는 것을.
그렇다고 숨도 못 쉴 만큼 벅차거나 설레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스크린 밖의 사람 같았다. 그저 관람객 그 자체. 이상한 일이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졌다는 것에 감복해야 하는 거 아닌가. 힘들게 여행 왔으면 전부 소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떨떠름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알았다. 나는 때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한 이야기이다. 나의 경험은 늘 비슷한 재질이었다. 무언가 느낀다 해서 즉각적으로 감상평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경험할 그 당시에는 나는 마비 상태나 마찬가지다. 가만히 침착하게 상황을 응시하고 머릿속에 담아낸다. 그러면 놀랍게도 반드시 그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솟아나는 시기가 존재한다. 몇 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심지어 몇 년이 걸리더라도. 그건 결국 나의 산물이 되어 새로운 형태로 태어나 빛을 냈다. 그러니까 눈에 담자. 많이 담자. 그렇게 생각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파리 풍경을 그러쥐려 애썼다.
바토 파리지앵에서 내린 타타와 나는 대단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저녁을 먹기 위해 이동을 해야 했다. 타타는 16유로에 애피타이저, 본식, 디저트까지 나오는 레스토랑을 안다며 나를 이끌었다.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지만 중앙홀에 테이블이 남아있어 그곳에 자리할 수 있었다. 창가 자리가 비워져 있어 혹시 그곳에 앉아도 되냐 물었고, 그 자리는 이미 예약이 되어 있어 어렵지만 손님이 시간 안에 나타나지 않으면 자리를 바꿔준다기에 얌전히 기다렸다. 시간이 되어도 예약 손님이 나타나지 않자 우리는 꽤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창가 자리로 옮길 수 있었다.
메뉴를 보며 고심 끝에 우리는 애피타이저로 토마토 리코타 샐러드, 에스까르고(달팽이 요리), 본식으로는 소고기 스테이크, 디저트로는 크림 브륄레를 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몰랐던 것이다. 파리는 느림의 미학이 통하는 나라라는 것을.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숙소에 돌아가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의 초조함이 타타의 여행의 일부를 망칠 새라 안 좋은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레스토랑의 내부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이색적이었고, 어두워져 가로등이 켜진 창밖은 내게 괜찮다는 듯 빛을 내고 있었다.
이윽고 음식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토마토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에스까르고의 맛에 흡족했다. 샐러드는 입맛이 돌게 할 만큼 무척 신선하고 맛있었으며, 태어나 처음 접한 달팽이 요리인 에스까르고는 생각보다 짰지만 빵과 함께 먹으면 딱 정당한 간이 알맞았다. 본식인 소고기 스테이크는 껌의 두께만큼 얇게 썰어먹어야만 씹힐 정도로 질겼지만 불쾌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음식의 맛이 어떻냐며 다가와 묻는 웨이터에게 최고라며 엄지를 세워주곤 그가 떠났을 때 고개 숙여 사실은 너무 질기다며 웃었던 기억까지. 비눗방울이 되어 공기 중에 터지던 감정들이 몽롱하게 여전히 존재한다.
나름 흡족한 저녁 식사를 하고 각자 숙소로 향하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왔다. 타타는 함께 화이트 에펠(새벽 한 시에 에펠탑이 새하얀 조명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 싶어 했지만, 숙소가 외곽인 것도 있고 본래 계획한 귀가 시간보다 늦어져 초조해진 탓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모하게 새벽까지 도시에 남기에 너무 여행 초반이기도 했다.
해는 이미 져버렸고 날은 서늘해졌다. 카디건을 여미고 타타에게 무사 귀환하기를 바라는 이별의 말과 함께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낯선 언어가 남발하는 지하 공간 속에서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머릿속으로 연신 되뇌었다. 오늘 있던 모든 일들. 만난 사람들. 먹은 것들. 이윽고 숙소 근처 역에서 내려 발걸음을 빨리했다. 완전히 깜깜해진 밤은 처음 봤다. 길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게 날 더 무섭게 만들었다. 다행히 숙소까지 아무런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어깨를 무겁게 했던 보부상 가방을 내려두고 숙소 한 켠의 1인 소파에 가만 앉아 멍을 때렸다.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 더 늦기 전에 샤워를 하고, 내일을 위한 채비를 하고, 침대 위에 몸을 뉘어 갤러리를 정리했다. 그러길 한참. 아주 깊어진 밤. 누군가 숙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눈 마주치자마자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지쳐 보이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이윽고 나의 파리 동행, 제제 언니와 조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