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파리는, 여름이라고

파리, 리스본, 스페인 여행기

by 유한성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그 전날과 대비되게 하늘이 청명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좋은 건 오랜만이었다. 인적 드문 우리 동네는 꽤 예쁜 색감들로 이루어져 있어 햇볕에 반사될 때 유난히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꼬마 친구들이 갖고 노는 집 모형 장난감으로 이루어진 동네 같다 비유할 수 있겠다.



이윽고 둘이 된 그림자. 제제 언니의 합류로 더 기대되기 시작한 파리 여행. 우리 여정은 판테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보다 그전에,


필름카메라로 수놓은 기록_1

어제는 물에만 혈안이었던 탓에 마음 놓고 구경하지 못했던 마트 아이쇼핑을 했다. 프랑스는 9시만 돼도 숙소 근처 마트가 닫아서 너무 아쉬웠다. 한국에서는 24시간 편의점이 몇 블록 간격으로 있으니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여하튼 우리는 마트에 방문해 프랑스에서 먹고 싶었던 것들이 존재하는지 훑어봤다. 불행 중 다행, 내가 먹고 싶던 납작 복숭아는 있었고 제제 언니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초코 푸딩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 여행을 하며 인근 마켓들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무척 푸른 하늘 때문인지 더없이 설레는 시작이었다.



오전이면 역 개찰구 맞은편에 늘 계시던 과일 아저씨. 없는 날에는 오히려 서운하기까지 했더랬다. 굉장히 무심한 표정을 소유하신 분이라 선뜻 다가가 과일은 구매하지 못했지만 파리 여행 막바지 가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판테온에 도착했다! 판테온을 가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제제 언니와 뤽상부르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고, 판테온은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해서 공원을 가기 전 판테온 건물을 감상하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학기 미술사 수업에서 판테온의 돔 형식 건물이 아주 경이롭다는 것을 들은 바 있기에 그 규모가 궁금해 방문했던 것도 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만큼 컸냐고?



엄청 컸다. 이건 몇 미터 멀리에서 찍어서 판테온 건물의 꼭대기까지 사진에 다 담길 수 있었던 거지, 실제로 판테온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너무 거대해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행이 실로 재미있어지는 순간은 관광 명소 주변을 훑어볼 때다. 이를테면 판테온 건물을 뒤쪽에 있는 성당 건축 양식을 눈여겨본다거나, 돌길을 따라 거닐면 나오는 빈티지 LP 샵에서 어떤 음반을 팔고 있는지 본다거나. 한국에서는 쉬이 발견할 수 없는 아티스트의 음반을 구경하기도 하고, 이색적인 길거리를 둘러보며 내가 다른 나라로 여행 왔다는 것을 여실히 느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판테온과 그 근처에서 나름대로 시간을 가진 우리는 뤽상부르 공원으로 향하기 전 벤치에 앉아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쿠차라와 공원 근처에서 팔던 도넛을 사 가기로 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한 끼를 먹는 것도 분명 좋지만 살면서 언제 외국의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어볼 수 있겠는가. 우리에겐 오히려 이 편이 더 낭만적이게 다가왔다.



음식과 간식을 바리바리 싸든 우리는 곧장 공원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사람이 많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 어린아이들까지. 푸른 잎사귀들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여러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날아다니는 새들.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 우리는 공원 한편에 자리 잡아 끼니를 때우며 뤽상부르 공원만의 활기차고 따스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꼈다.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에 못 이긴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 그늘 아래에 앉아 도넛을 먹었다.


필름카메라로 수놓은 기록_2

이 날 새삼 느꼈던 것 같다. 파리는, 여름이라고.



공원 중앙에는 커다란 연못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꼬마들이 수면 위로 장난감 돛단배를 둥둥 띄웠다. 장난감 배에 여러 나라 국기가 수놓아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건 뤽상부르 공원만의 오래된 문화 같은 거였다. 일정 시간 동안 배를 대여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국기는 없었다. 있었어도 대여비가 너무 비싸 대여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파리 공원 한가운데에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은 특유의 문화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다음 행선지는 셰익스피어 서점이었다. 주로 여행할 때 꼭 가고 싶은 곳 몇 분 데를 점지해놓는 편인데, 셰익스피어 서점이 딱 그런 곳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냐고? 제대로 각 잡고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그의 연극은 여러 번 본 적 있고 심지어 고등학생 시절 무대를 올려보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기엔 애정이 부족했다. 그런데 왜 방문했냐고? 그의 문장을 타투로 세기고 싶다 말할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넷 18번. 하도 읊어대서 이젠 내게마저 그 글의 분위기를 물들여버린 사람. 그 사람의 선물을 사러 갔다. 마침 동선을 짜다 보니 뤽상부르 공원에서 충분히 도보로도 갈 수 있는 거리이기에 지도를 보고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서점은 마치 그가 살았던 그 시절의 향을 풍기는 것처럼 생겼다. 목조에 청록색이 주인 외관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답게 그 앞에는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서점 옆에는 셰익스피어가 즐겨 갔다는 카페도 있었다. 서점에서 책 하나 사들고 옆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그곳만의 감성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때가 되어 우리 일행이 안으로 들어갈 때가 됐다. 내부는 꼭 아주 진하면서도 산뜻한 나무향이 날 것처럼 생겼었다. 안타깝게 내부 촬영은 불가하여 사진을 찍지 못했다. 서점 안을 기웃거렸다. 다른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지만 아랑곳 않고 셰익스피어 서적이 나열되어 있는 책장을 찾아 나섰다. 먼저 안으로 들어갔던 제제 언니가 나를 불렀다. 역시 그의 서적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었다. 심사숙고하여 책들을 살펴본 나는 소넷이 프랑스어로 적혀 있는 책을 구매하였다. 책을 구매했을 때 찍어주는 스탬프가 쾅, 찍혔을 때 설레는 마음은 배가 되었다. 고작 책 한 권이었지만 온전한 마음과 특별함이 조화롭게 섞여 새로운 색을 내는 것 같았다. 내가 선물 받은 것도 아닌데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역시 아끼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