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그런 사소들은

파리, 리스본, 스페인 여행기

by 유한성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다리만 건너면 노트르담 성당이 있어 그곳도 들리기로 했다. 열다섯, 아주 추웠던 겨울 유럽 여행을 왔을 때와는 퍽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대성당. 그땐 온전했던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화재로 많이 훼손되어 재건을 하는 중이었다. 우두커니 반쯤 유실된 건물 앞에 서니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음 한 구석의 무언가가 그을린 냄새를 내며 타버린 것 같았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득 찼다. 과거의 것이 너무도 한순간에 훼손될 때면 항상 이런 마음이었다. 늘 소중하게 대해도 불의의 사건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본모습을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아까운 마음을 품게 할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숨기며 여러 장 사진을 찍은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먼 훗날 내가 더 멋있게 돌아오는 그때 너도 부디 더 멋져졌으면 한다고. 우리 더 멋있게 다시 만나자고.


기나긴 걸음에 지친 우린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로 향했다. 뼛속부터 한국인인 우리들은 이 나라의 사람들이 그렇게 경멸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이는 못 살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에서 당당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요구할 수 있는 곳은 스타벅스뿐이었다. 잔뜩 지친 상태로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머지않아 커피가 나왔고, 놀람도 잠시 웃음이 터졌다.



'맛있게 드세요. ' 좋은 하루 되세요.'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이 왔길래 컵에 한글을 아무렇지도 않게 적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을까. 외딴 나라에서 마주한 한국어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 한글을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써주어서 그런지 더더욱.



허겁지겁 커피를 해치우고 제제 언니가 가보고 싶다 했던 '마린몽타구'로 향했다. 이곳은 일종의 편집샵이었는데, 특색 있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컵이나 펜시 제품들을 사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인테리어와 소품들이 잘 어우러져 꼭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제제 언니는 이런 공간을 참 잘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데에서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는데 편집샵에 관심이 많은 언니 덕분에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마레지구에 들렸다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로지 걸어서 하는 여행은 생각보다 고되어 다리에 마비가 오기 직전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마레지구에 도착한 우리들은 무얼 할까 고민하다 내가 오기 전 봐 두었던 디저트 가게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냥 맵에 저장되어 있어서 갔는데, 루이 15세의 셰프가 차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디저트 가게, 바바 오 럼 (baba au rhum) 원조, 밀푀유 (mille-feuilles) 맛집이라는 건 오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먹었더니, 최고의 맛집이었대요. 하긴, 줄이 그렇게 서있었는데 유명하지 않을 리가.



여하튼 그곳에서 작은 케이크 하나와 에끌레어를 산 우리는 근처에서 납작 복숭아와 파리에 왔으면 꼭 먹어줘야 한다는(이것도 제제 언니가 알려줘서 알았다) 블랙베리를 값싼 가격에 구매한 뒤 숙소로 향했다. 과일은 더없이 신선했고 디저트는 전날 먹었던 것은 마치 편의점에서 파는 빵처럼 느껴지게 만들 만큼 고급졌고 맛있었다. 마레 지구에 가면 꼭 다시 사 먹자고 다짐할 만큼 환상적인 맛이었다.


10시가 지나서야 해는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내일부터 조금 더 늦게 집에서 나서기로 했다. 어차피 해는 길고, 좀 더 다양한 시간대를 누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유독 유럽 여름은 참 생기 넘친다. 유례없는 더위에 걷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아름답게 빛났기에 다시 한번 유럽을 간다면 여름에 갈 거라 다짐할 만큼.


발끝이 닿았던 모든 곳이 기꺼웠던 날이었다. 꼭 가야지 하고 콕콕 점찍어두어 방문했던 관광지보다 더 좋았던 것은 그곳으로 향하던 길목이었다. 횡단보도. 발코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꽃줄기. 테라스에 앉아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태어나 처음 건너보는 횡단보도가 아닌데도, 처음 보는 꽃이 아닌데도,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생경했고 특별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그래. 그런 사소들은 여행을 더 아름답게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