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스본, 스페인 여행기
record of my jounery_ PARIS, PORTUGAL, SPAIN
살면서 모든 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매일 좋으리란 법도 없고. 오히려 좋은 일만 일어나면 불안하다 느끼다는 건, 결국 언젠간 좋지 않은 날이 도래한다는 걸 알기 때문 아닐까. 이 날이 마치 그랬다.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날.
느지막이 기상한 우리는 모든 채비를 마쳤다. 전날 7월의 파리 햇살에 뜨겁게 데인 우리는 경각심을 가지고 온몸에 가지고 있던 선크림을 들이부었다. 선크림 인간이 된 우리가 첫 행선지로 정한 곳은 방브 마켓이었다. 방브 마켓은 주말 오전에만 열리는 빈티지한 제품들로 가득 이루어진 벼룩시장이었다. 유럽의 벼룩시장의 특별함을 고대할 수밖에 없었다. 제제 언니와 내가 한국에서 일정을 짜다 공통적으로 가고 싶다 한 곳 중 한 곳이었다. 숙소에서 도보로 그다지 멀지 않은 트램 정류장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내내 기존 다녔던 길과는 달리 그냥 동네 풍경 하나하나에도 우리는 연신 감탄하고 흥미로워했다. 마켓이 가장 절정일 때는 오전 열한 시 무렵이라 했다. 이미 열 한 시는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해서 우리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역에서 한참 기다리며 사진을 연사 하던 우리는 다가온 트램에 올라탔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물씬 많아진 것 같았다. 뜨거운 열기에 잠시 넋을 놓고 이동하다 문득 어느 순간 이상한 것 같아 노선도를 응시했다. 짧은 탄성과 함께 말했다.
“언니 우리 반대 방향으로 탄 것 같아.”
이미 늦었는데. 더 늦게 생겼다. 큰일 났다. 언니와 나는 우왕좌왕하다 결국 그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다시 한번 확인해보아도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트램에 올라탔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초조함은 덤이었다. 막상 갔을 때 다 닫아 있으면 어쩌지? 사람들로 빼곡한 트램 안에서 불안한 정서가 부유했다. 결국 정오가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언니와 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거니는 와중 괜히 한국인을 유독 많이 마주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필수 코스에 드는 곳인가? 반가움에 괜히 미소를 지었다. 얼마 걷지 않으니 마켓의 초입에 다다랐다.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상상했던 것은 끝도 없이 길게 늘어진 마켓의 나열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다. 경보로 걸으면 5분 안에는 다 둘러볼 것 같은 크기에 난감한 색을 띄웠다. 하지만 섣불리 실망했다거나 하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나는 몰라도, 제제 언니는 이 공간을 마음에 들어 할 수도 있을 테니. 묵묵하게 마켓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빈티지한 상품들이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낡은 엽서였다. 그중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프랑스어로 작성한 듯한 편지가 아로새겨진 엽서도 있었다. 물끄러미 응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누구한테 보낸 걸까. 닿기는 했을까. 만일 닿지 않았다면, 잃어버린 언어가 안타까웠다. 내용이 어찌 됐든 하고 싶던 말을 주고받지 못했단 사실은 애석하게 다가왔다. 한동안 그곳에 시선을 둔 후 발걸음을 옮겼다.
방브 마켓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패턴이 새겨진 유리병,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 다양한 그림들과 각종 골동 물건들. 해가 정수리 위를 가려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둘러본 우리는 허기져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마땅히 생각해둔 레스토랑은 없었다. 다만 이후 행선지가 오랑주리 미술관이니 그곳 근처에서 먹기로 했다.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하는 내내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간신히 오랑주리 근처 역에서 내린 우리는 부랴부랴 역을 나섰다. 오히려 외부의 그늘 안이 더 시원하단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점심을 먹을 식당을 찾던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펼쳐진 푸른 공원이었다. 끝없이 넓은 청량한 하늘 아래 펼쳐진 광활한 공원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역 바로 앞에 샌드위치 파는 단출한 부스가 존재했다.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여기서 샌드위치를 사서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때우는 거야. 더위로 지쳤던 몸은 단숨에 기대로 벅차올랐다. 샌드위치는 그 질이 좋지는 못했지만 값이 무척이나 쌌다. 우리 돈도 아끼고 공원에서 점심도 먹고! 오히려 좋아!
그렇게 공원 한 편, 나무의 그늘에 몸을 숨긴 우리는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두고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이게 낭만이지. 이런 게 여행이지.
파리 여행 초입이던 둘째 날에 비하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맑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샌드위치를 간신히 해치운 우리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가 있던 위치에서부터 오랑주리 미술관까지 가려면 다리를 하나 건너야 했다.
보통 다리가 아니었다. 넘실거리며 흐르는 센강. 웅장한 소리를 내며 오가는 선상.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은 풍경에 정점을 찍었다. 가장 파리스러운 공간이었다. 여름의 장점은 사진이 잘 나온다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뜻밖에 마주하게 된 포토스팟에 신이 나 연신 사진을 찍으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미술관 앞에서 우리는 국제 학생증을 내밀었다. 지난번 갔던 오르세도 학생증을 내밀었지만 무료 관람이 어려웠고, 오랑주리는 무료 관람이 가능했다. 여행지에서 돈을 아낄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점심도 생각보다 더 저렴하게 먹었고 미술관 관람도 무료로 가능해졌으니 우린 잔뜩 신이 나 안으로 향했다.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향하는 이유 중 가장 주가 되는 이유는 모네의 '수련'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인상주의 미술을 가장 애정 하는 나로서는 방문하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보는 내내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웅장한 오르세보다는 오랑주리의 아늑함이 내게는 더 달가웠다. 모네의 작품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작품들의 결이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움과 선함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눈이 즐거웠다. 인상주의 화풍을 좋아하는 이유는 빛을 기록하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 실체는 불분명 하지만 멀어질수록 그 대상이 뚜렷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랑주리에서 마주한 모네의 수련 또한 그러했다. 가로로 끝없이 길게 나열된 그 그림을 가만 앉아서 한참 응시했다. 언뜻 보면 색감이 탁한 것 같다가도 전체적으로 보면 기분을 둥글게 굴려 몽글하게 만드는 색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파스텔톤의 실타래와 한 데 엉켜 뒹굴거리는 것만 같았다. 감히 닮고 싶은 색채였다.
“누군가 나를 보면 모네의 그림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오랑주리에서는 그런 욕심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