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
시골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려면 광주로 나가야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집안 형편상 진학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큰 오빠 가르치느라 논을 팔아서 등록금을 내도 늘 허덕이는 살림살이였다. 농사를 지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들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은 비 오는 날을 빼고는 늘 들녘에서 살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학교 가는 것은 힘들다고 취직이나 하라고 하셨지만 시험은 꼭 치러보고 싶었다. 엄마를 졸라 시험만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버지 몰래 광주에 있는 여상에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렸다.
한 참 시간이 흐르고 학교로 결과가 도착했다.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였다는 통보와 함께 3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말하니 자취방도 얻어야 하고 생활비까지 걱정을 하였다. 겨울 시린 바람을 맞으며 엄마를 따라 리어카를 끌고 땔감을 구하러 다녔다. 동네 뒷산은 민둥산이 될 정도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나무를 해가 먼 곳까지 가야 한다. 도둑골로 가면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갈대부터 죽은 나무까지 단시간에 많은 양의 나무를 구할 수 있다. 나무를 하다 보면 한 겨울이어도 이마와 등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잠시 쉬는 틈을 타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 엄마 나 학교 보내주면 안 돼?' 자라오면서 처음 자기주장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좀 알아보마' 그렇게 리어카 가득 나무를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엄마는 뒷동네 사는 큰 이모, 앞 동네 사는 작은 이모에게 가서 의논을 했다. 다행히 중장터에 사는 이모네 막내딸이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자취방에 같이 살고 쌀과 반찬은 엄마가 내는 조건으로 진학을 허락받았다. 하얀 눈이 내리고 하얗게 덮이기를 반복하던 겨울은 그렇게 깊어갔다.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추위를 견디며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그렇게 봄으로 가까워갔다. 장학금을 받는다 해도 교복도 맞추고 가방도 사야 해서 냇가에 돌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다녀 그 돈을 마련했다.
처음으로 부모의 품에서 독립을 한다느 생각보다는 고등학교에 대한 기대감으로 3월을 기다렸다. 함께 살게 된 이종사촌은 인문계고등하교 학생이었고 1년 선배이면서 동생이었다. 작은 자취방에 연탄불을 갈아야 하는 좁은 곳이었지만 새벽이면 연탄불에 양은냄비 얹어서 밥을 하고 도시락은 두 개 쌌다. 반찬은 엄마가 보내준 김치와 시장에서 산 아부래기 볶음이 전부였지만 내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골 촌년이 광주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니니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담양, 함평, 타지에서 온 친구들도 자취를 하고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서로의 자추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떢볶이나 엄마가 해 준 반찬을 나눠먹기도 했다. 사촌동생은 인문계라 대학교 준비로 야간자율학습을 해서 늦게 오는 날이 많아 대부분 친구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상고에 다니는 나는 자격증 시험준비와 중간고사 시험을 보고 학교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다행히 학교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토요일이면 일주일 간 먹은 빈 반찬통을 챙겨 학교가 끝나면 무등터미널로 가서 화순도암 가는 버스표를 끊어 시골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광주로 진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낯이 익은 얼굴도 많다. 서로 간의 안부를 묻고 수다삼매경에 빠진다. 터덜거리며 두 시간을 달린 버스가 동네 어귀에 멈추면 치익하고 버스문이 열리고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집에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두 동생과 엄마 아버지가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포근함을 더한다. 엄마는 일요일에 싸가지고 갈 반찬을 부지런히 만들어 챙긴다. 맛있는 것 한 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솜씨를 부린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교복을 입고 동네를 들어서는 나를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하신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주말은 집청소, 밭일, 내가 하 수 있는 한 많이 도와드린다. 그렇게 시골집에서 몸도 마음도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터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자취방으로 향한다. 각자 집에서 가지고 온 김치, 멸치조림, 어묵볶음을 통째로 놓고 둘이 마주 앉아 맛만 본다는 것이 끝없이 먹고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시절, 음식이 아니라 정에 허기짐이 아니었을까?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하였고 학생으로서 자취생활을 하며 연탄불에 밥을 하고 생활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후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된 건 확실하다.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가기, 연탄불갈기, 교복 다려 입기, 일상생활에서 터득할 수 있었던 삼 년, 학교 가는 길은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서 다녔고 연탄불도 최대한 구멍을 작게 맞춰 아끼는 법도 알게 되었다. 친구로 동료로 선배로 때로는 동생으로 함께 지냈던 나의 룸메이트에게 이 기회를 빌어 안부를 전하고 싶다. 잘 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