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품을 떠나 낯 선 도시에서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은 조금은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타향살이 마음에 외로움이 담겨있다. 시골에서는 아궁이에 불 피우고 나무를 넣어서 불을 땠다. 솔가지, 잔가지, 장작 어떤 재료를 넣어도 아궁이는 아낌없는 품으로 받아주었고 타닥타닥 타는 나무는 구들이 달린 방을 데워 따뜻하게 해 주었고 마음도 따스했다. 굴뚝 따라 피어나는 하얀 연기는 어린 시절의 향수였다.
자취방을 처음 마주한 순간 작은 방은 둘이서 누우면 될 만큼의 크기였고 벽장도 없고 그저 교복하나 옷걸이에 걸어놓고 집에서 입는 허름한 옷 한 벌에 속옷정도 넣을 정도의 바구니만 놓고 지냈다. 책상도 없어서 작은 밥상을 식탁 삼아 책상 삼아 펴 놓고 숙제를 하고 공부를 했다. 부엌도 작은 연탄아궁이 하나만 있고 다른 살림살이는 그릇 몇 개 수저 젓가락 두 벌 양은냄비하나가 전부였다.
봄, 아직은 날씨가 쌀쌀해 연탄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있다. 처음 마주하 연탄은 까만색, 다 타고나면 하얀색으로 변했다. 원통형으로 생긴 연탄에 구멍이 동그랗게 뚫려있고 다 타서 불을 갈면 연탄불이 꺼져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정도의 선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까만 연탄을 옆에 준비해 놓고 윗불이 거의 탈 무렵 바닥에 있는 연탄을 꺼내고 위에 것을 아래로 넣고 그 위에 까만 연탄을 넣어주면 되는 것이다. 구멍을 맞출 대 너무 잘 맞추면 금방 타 버려 반쯤 방향을 틀어 맞추면 된다.
잠자기 전 연탄불을 갈고 불구멍을 막아 놓으면 새벽까지 연탄불을 꺼지지 않고 은근히 따뜻하게 해 준다.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연탄아궁이부터 살피고 양은냄비에 쌀을 씻어 밥을 하고 콩나물국도 하나 끓여 도시락 두 개 싸고 아침밥을 먹고 까만 연탄으로 바꿔주고 구멍을 막고 학교로 향한다. 반찬은 김치와 어묵볶음 정도가 전부이지만 흰쌀밥에 김치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시간이다. 밥을 하고 연탄불을 갈고 구멍을 최대한 막고 학교로 향한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 2교시부터 도시락을 까먹는 친구들이 많다. 절반정도는 남기고 후다닥 쉬는 시간을 이용해 허기진 배를 채운다. 본격적인 점심시간 자취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반찬이 부실하다. 친구들이 반찬을 넉넉히 준비해 와서 서로 나눠먹고 그야말로 앞 줄부터 끝줄까지 젓가락만 들고 다니면 마트나 다름없다. 왁자지껄 학교 생활 중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다.
학교 끝나고 네 시쯤 집으로 돌아오면 연탄불을 그때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잠시 쉬다 저녁밥을 다시 냄비에 하고 어묵도 볶고 불조절을 하고 다시 하루가 간다. 혹여 친구들과 놀다가 늦는 날이면 연탄불은 어김없이 기다려주지 않고 사라진다. 그럴 때는 슈퍼에 가서 번개탄을 사 와야 한다. 불을 붙이면 '치치직치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번개탄이 타오른다. 잘 붙은 번개탄을 중간에 넣고 까만 연탄에 불이 붙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린다.
까만 연탄불을 넣고 바람구멍을 최대한 열어 불이 타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윗불을 아래로 내리고 까만 연탄을 넣어 화력이 세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기곤로하나 없던 시절이라 연탄불이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쫄쫄 굶을 판이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말씀드려 아궁이를 빌려 라면하나 끓여 먹는 것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한다. 방은 냉골 연탄불이 타 오를 때까지 차가운 방에서 기다린다.
그렇게 삼 년이란 시간 동안 연탄불은 우리의 소중한 생명줄과도 같았다. 밥을 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방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어느 때는 차가웠다가 따스했다가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던 너, 그런 너의 매캐한 냄새마저도 그리운 시간이었음을 글을 통해 고백하게 된다. 연탄불아, 그때는 참 고마웠어. 몸과 마음을 늘 따스하게 채워주었던 너로 인한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