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저장고

유년시절의 기억

by 맑은샘

유년시절 어떤 아이였을까?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다. 누군가 그랬던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면 그냥 평범하게 잘 지낸 거라고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되짚어 보려 애쓰지만 어디서부터 끄집어내야 할지 고민이다. 잠을 자면서도 집중해서일까? 꿈인지 생각 중인지 집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 내려 애쓰고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것이라 했던가? 평범한 게 행복한 것이라고 어린 시절은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호랑이띠 엄마는 닭띠, 아담한 체구에 동그란 얼굴을 한 아버지는 오 형제 중 차남이었고 키가 크고 갸름한 인사의 엄마는 세 자매 중 막내딸이었다. 살던 집은 외할머니네 집으로 데릴사위로 장가를 온 아버지는 처가살이를 한 셈이다.


스무 가구가 살았던 동네는 아담한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었고 집성촌이라 한 집 건너 모두 일가친척이었다. 한 바퀴 빙 돌아도 이십 분도 안 될 거리여서 골목골목 뛰어다니며 숨바꼭질, 공구밖 정자 앞에는 늘 아이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던 시절 샘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빨래는 냇가에 가서 했다. 대야에 빨래 담아 머리에 이고 세제대신 방망이로 두들겨 때를 빼던 엄마의 일상을 따라다니며 보았던 우리였다. 다산을 하던 시절 바쁜 농번기철이면 아이들도 고사리 손 하나라도 보태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의 구조는 대문 없는 마당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맞은편 담벼락에는 엄마가 좋아하던 해당하 꽃이 심겨있었다. 초가지붕에 나무로 된 마루의 나뭇결은 그대로 살아있었고 엄마는 늘 반질반질하게 걸레로 마루를 닦았다. 토방은 흙과 돌로 되어 있었고 햇볕이 잘 들었다. 토방 아래에는 작은 농사기국 나 고구마 감자를 넣을 수 있게 파여 있어서 술래잡기할 때 숨어있기도 했다.


마루에서 방문을 열면 안방으로 들어간다. 작은 횟대가 아랫목 벽에 걸려있고 천정을 따라 대나무로 된 시렁을 걸쳐놓아 옷이 들어간 바구니를 올려놓았고 이불은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아랫목에서 마주 보는 문을 열면 광으로 연결되어 그 문을 열면 찬바람이 들어왔고 큰 항아리와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이나 떡, 꿀, 원기소, 엄마가 소중하게 아끼문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엄마 아버지 일하러 가고 나면 두 동생과 함께 오빠만 주는 원기소를 몰래 한 알씩 먹고 꿀도 한 숟가락씩 떠서 먹고 모른척했다.


아랫목 옆에 부엌으로 나가는 작은 문이 있어서 밥을 해서 상을 차리면 그 문으로 음식이 드나들었다. 문을 열면 까맣고 반질반질한 가마솥이 걸려있고 그 옆에 작은 아궁이는 은색 작은 솥이 걸려있어 밥과 국을 동시에 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엄마는 가마솥에 밥을 하기 전 보리쌀을 먼저 불려 삶아두었다. 그 보리쌀에 쌀 한 줌 섞어 밥을 안치고 닭이 낳은 달걀 두세 개 물과 함께 풀어 밥 짓는 솥에 넣어 함께 뜸을 들였다. 엄마의 가마솥에는 가지도 들어가고 감자도 들어가고 밥과 함께 뚝딱 맛있게 만든 음식이 만들어졌다. 작은 솥에는 봄이면 쑥, 달래, 냉이 넣고 된장 풀어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밥 냄새와 어우러져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두 솥 맞은편에는 작은방에 불을 때는 아궁이가 한 개 더 있어 오빠가 쓰던 작은방에도 은색 큰 솥이 걸려있었다. 주로 세수할 때 더운물을 데웠고 제사를 지낼 때 시루를 올리고 떡을 했고 찰밥등을 할 때도 유용하게 쓰였다. 명절이면 산자를 만들 때 주로 썼다. 불린 찹쌀을 방앗간에서 빻아와 시루에 말랑말랑하게 쪄서 다듬이로 작고 납작하게 밀어 오빠 방에 종이 깔고 며칠을 꼬들꼬들 말렸다. 바삭바삭 부러질 정도로 마르면 솥에 기름 넣고 보글보글 기름이 올라오면 말린 산자를 넣고 주걱과 국자로 쭉쭉 늘리면 조그맣던 산자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반복해서 튀겨내서 조청을 바르고 하얀 튀밥을 뿌려주면 달콤하고 바삭한 산자가 완성된다. 부삭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가 만든 산자가 되기를 기다리던 우리는 제비새끼처럼 입에 넣어주는 것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부엌에서 뒷문을 열면 엄마의 장독대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고 간장독, 된장독, 고추장독, 홍시 넣는 항아리, 김치항아리, 깻잎장아찌, 참외장아찌 등 다양한 저장음식들이 있었다. 추수가 끝나고 농사지은 콩을 물에 불려 가마솥에 넣고 푹 삶는 날 노르스름하게 삼아진 콩을 집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삶아진 콩은 절구로 콩콩 찧어주면 널빤지에 놓고 네모로 만들어 지푸라기고 매서 행랑채에 달아서 겨우내 곰팡이가 피었다. 정월대보름이 되기 전 달력을 보고 손 없는 날을 골라 소금을 물에 풀어 간수를 만들어 싱싱한 계란을 동동 뛰워 간을 맞췄다. 메주에 핀 곰팡이를 깨끗이 닦아 장독에 넣고 소금물을 부어주고 빨간 고추 몇 개, 솥을 넣고 매일매일 햇살이 좋은 날 뚜껑을 열어 숙성을 시켰다. 여름이 되기 전 메주는 꺼내서 치대 주면 된장이 되고 소금물은 가마솥에 끓여 항아리에 넣어 숙성해 주면 간장이 되었다. 엄마는 그 된장과 간장으로 모든 음식의 간을 내었다.


장독대 너머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밤나무 한 그루 감나무 세 그루가 집을 에워싸고 있었다. 뒤꼍을 지나 옆으로 가면 행랑채가 있었다. 소를 키우는 외양간과 변소, 큰 방이 있어 일이 없는 봄에는 누에를 키우고 새끼를 꼬거나 지푸라기로 무언가를 만드는 장소였다. 소죽을 쑤고 나면 방이 너무 뜨끈뜨끈해서 겨울에는 우리들의 놀이터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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