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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ul 15. 2023

명함을 받았다!

새로운 경험을 더 길게 기억하고자

일상의 자극들을 글에 담아내는 이 작업을 이번 매거진에 참여하는 나의 또 다른 정체성으로 삼기로 했다. 일기이지만 조금은 자랑 노트에 가깝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자랑하기에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담으려 한다.

참고로 고등학교 때 나는 동거동락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잘도 늘어놓았기에 그 애들은 내가 오늘 있잖아, 하고 운을 띄우면 오, 오늘의 티엠아이는 뭐야, 하고 기꺼이 들어주곤 했다. 이젠 6개월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친구들에게 매일 카톡을 할 수는 없으니, 잊어가는 게 태반이었나.



글을 쓸 때 무언가를 조사하지 않는 태도의 불성실함을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어떤 글을 쓸 때는 그 누구보다 사전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을까?



미술관에서 자원봉사로 일을 한다. 한 회차마다 교통비를 만 원씩 받으니 부모님과 나는 이것을 '돈 벌어오는 일 하기'라고 칭한다. 아 돈 벌러 가기 싫다- 이런 말들로.



일하는 미술관에 사람이 없으면 미술관 공간이 주는 본연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책을 읽든, 도슨트 준비를 하든, 다른 선생님과 대화를 하든.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점은 낯선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은 건축가 선생님이 오셨다. 전시는 1, 2층을 십 분 내로 보신 것 같다. 인포에는 나와 다른 선생님이 계셨는데, 1층 전시 보시고는 가까이 오셔서 아까 강연에서 뵌 것 같아요, 하고 말을 거셨다. 그리고 학생들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선뜻 그렇다고 답했다.

내가 있는 미술관은 사람이 자주 찾아올 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에, 연세가 있는 진짜 미술 애호가분들이 자주 오시고, 또 자주 말을 거시곤 한다. 그분들과 스몰톡을 하며 아, 이런 어른도 있구나, 느끼는 게 매주 토요일 나의 또 다른 일과다. 그러다 보니 오늘도 음, 어떤 분이시려나 하고 선뜻 답했다. 저는 학생이에요. 같이 있던 선생님은, 저는 사회인입니다.

그리고 학예사 선생님이 저는 학예실로 올라가 볼게요, 하자마자 그분이 선생님을 덥석 불렀다. 내 전시 좀 보러 와요, 하고. 오, 또 새로운 유형의 어른이다, 생각했다.

나에게 먼저 뉴스에 붙은 작품 사진을 보여주시며 엄청 대단한 작품이야, 하셨다. 오 정말요? 하고 보니 가로길이가 3미터는 거뜬하게 넘는 대형 수묵 산수화였다. 진심으로 멋있었다. 내가 흥미롭게 보고 있으니 학예사 선생님께도 한 번 봐봐요, 하셨다. 우리 둘이 와 시간 나면 꼭 보러 갈게요, 하니 고마워요, 하고 2층으로 올라가신 분.



2층 전시는 진짜 후딱 보셨다. 그러더니 또 내려오셔서 학생 전공이 뭐예요, 하시던데. 미술사라 답하니 주섬주섬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주셨다. 오, 어른에게 명함 받는 거 완전 처음.

가죽 지갑에 뭔가가 담겨 있는데 다들 삐죽이 튀어나와 꼬깃꼬깃하길래 명함도 구겨져있으려나 했다. 그런데 명함은 빳빳했다.


명함은 전시로의 초대권이었을까. 잊지 않고 꼭 오라는 그런? 뭐가 됐든 시간이 나면 꼭 찾아가 봐야지. 일방적인 영업을 당한 느낌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음은 내가 전시를 기획하지 않아서인지, 나를 향한 존중이 느껴지는 명함 건넴 때문인지, 이런 어른들에게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무언가를 드려야 했나, 하고 또 드릴 명함이 없는 나는 무엇으로 나를 압축해서 드러내나 싶고. 하지만 이 주절거림의 본질은 내가 명함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에 있다. 솔직히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참 문장 하나를 길게도 쓰네.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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