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옥수수 빵

by 북두칠성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끔씩 와이프랑 집 근처 빵가게에 들른다. 매대 위에 수북이 쌓인 다양한 빵들 중에서 유독 한 줌 크기의 타원형으로 생긴 누런 옥수수 빵이 보이면 어김없이 그 빵을 계산용 트레이에 담는다. 맛이 너무 밋밋하다며 우리 가족들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옥수수 빵은 자연스럽게 내 차지다. 옥수수 빵에 대한 나의 유난스러운 집착의 비밀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잘 살아보세"라는 새마을운동 노래가 온동네에 울려 퍼졌다. 그래도 나는 직장인 아버지 덕분에 쌀과 보리가 셖인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갈 수 있어서, 급우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군것질거리에 대한 갈증은 남아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량원조를 받았다. 초등학교에는 옥수수가루와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 옥수수 빵을 보내주었다. 학교에서는 매주 한 번씩 옥수수 빵을 학생들에게 나눠줬지만, 양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두 주에 한번 꼴로 순서가 돌아왔다. 너나 할 것이 없이 모두 옥수수 빵을 배급받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 수업을 마칠 무렵이 되면, 빵이 든 종이상자가 교실 앞 탁자 위에 올려지고 모두들 숨을 죽이고 그 상자를 쳐다본다. 담임선생님은 상자 속에서 짙은 노란색에 황토색이 배인 빵을 하나씩 꺼내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선생님이 건네준 옥수수 빵은 표면이 차갑고 거칠지만, 나에겐 최고의 간식이었고 하굣길의 친구이기도 했다. 빵을 배급받지 못한 아이들은 빵을 조금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빵 가진 아이의 가방을 집에까지 대신 들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니 그 옥수수 빵의 진가가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교실 문을 나설 때 옥수수 빵은 자연스럽게 내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 숨는다. 작은 고개를 넘고 또 하나의 재를 넘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주머니에서 조금씩 아껴서 떼어먹는 그 옥수수 빵 맛은 세상 어느 맛과도 견줄 수 없는 신비한 맛 그 자체였다. 빵 부스러기가 입속으로 들어와 혀끝에 닿으면 옥수수의 고소한 맛과 우유의 담백한 풍미가 계속 입맛을 당기게 하다 보니 연신 손은 빵이 든 주머니 속으로 곧장 들어간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걸어야 되지만 주머니 속에서 빵은 동나지 않고 나오고 또 나온다. 빵 조각, 빵가루가 손에 잡히지 않을 무렵이 되면 어느새 집 근처에 도착해 있다.

몇 개월 전, 35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나도 자유인이 되었다. 바로 그다음 날 고향 땅에 묻혀 계신 아버지와 조상님들께 인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남해와 동해를 돌아 바닷바람을 쐬며 머리를 식히고 인생 2막의 첫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집에서 모처럼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자, 초등학교 때 배급받아먹었던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나 그 옥수수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제빵 도구로 빵틀, 계량용 스푼과 컵, 반죽용 채, 주걱 등을 구입하였고 빵 재료로는 옥수수가루,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우유, 약간의 소금과 백설탕도 준비했다. 레시피는 호주에 사는 한국 출신 유튜버가 소개한 영상을 따랐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빵 만들기에는 성공했지만, 초등학교 때 먹었던 추억의 그 빵 맛은 나지가 않는다.

요즘 들어 부쩍 와이프랑 큰 딸은 빵 가게에 들을 때면 나를 위해 곧잘 옥수수 빵을 사 온다. 초등학교 때 배급받았던 그 옥수수 빵은 세월이 흘러, 지금은 사랑의 빵으로 변해 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어릴 적 고갯마루 길, 그 길을 오르며 주머니 속에서 조금씩 떼어먹던 옥수수 빵 맛이 여전히 그립다.